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다.

by pahadi
그나마 남은 내 청춘과 바꾼 한마디 "엄마"


엄마가 되었다. 미혼이나 딩크를 생각해 본 적 없는 나에게 엄마가 되는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결혼도 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그다음 내게 주어진 과업은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정해진 계획표처럼 큰 고민이나 생각 없이 임신을 했다. 10 달이라는 기간 동안 내 배가 점점 불러와도 엄마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니,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출산이라는 엄청난 고통 끝에 어느 날 갑자기 내 눈 앞에 앙앙 울어대는 아기가 있었다. 나는 정말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기쁨보다 나를 먼저 반긴 건 두려움과 당황스러움.


결혼하면 대부분 아이를 낳으니까. 모두가 하는 일이라 엄마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아니, 서울대에 들어가는 게 쉬우면 다 들어가게? 응당 어려운 일은 소수의 사람만 해내는 것이 아니더냐. 그런데 엄마가 되는 일은 내 예상과 너무 달랐다. 정말 이 세상에 모든 엄마들이 이 일을 겪어냈고 해내고 있단 말이야? 수많은 인생 선배님들은 왜 이렇게 엄청난 일을 말해주지 않은 것일까. 학교에서 왜 이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지난 내 삶은 다 버려야 되는 것이었다.


엄마지만 나로 살고 싶던 바람은 천천히 무너졌다.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기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기를 온전히 사랑하는데도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부족한 모성애를 탓했다. 엄마답지 못한 내 모습에 실망하고 자책했다. 임신 기간에는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모성애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가 불러오는 만큼 나의 모성애도 커져갈 것이라고. 하지만 만삭이 되어도 여전히 나만 아는 철부지였다. 아이를 낳으면 달라질 거야. 하지만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내 아기가 맞는지 낯설기만 했다. 울어대는 아기 앞에서 내가 더 힘들다고 더 크게 울어댔다. 모성애가 부족한 나는 나쁜 엄마라고 스스로를 비난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모성애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막 만난 아기를 지난 30여 년 동안 함께 한 나보다 갑자기 더 사랑할 수 없었다. 내가 나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밤새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한 숨도 못 자도 아이의 환한 웃음 하나로 모든 피로가 녹아내리던 시간들. 아픈 아기를 간호하느라 애간장이 다 녹으며 눈물로 지새우던 시간들. 뒤집고 기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시간들. 갓 나온 첫니를 뽐내며 웃는 아기보다 내가 더 크게 웃던 시간들. 작은 손으로 내 목을 꼭 끌어안아주며 온기를 나누던 시간들. 그 웃음과 눈물로 수놓은 시간들 속에서 나의 사랑은 바다처럼 넓고 산처럼 단단해지고 있다.


시간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어느새 아기를 걷고 말하고 혼자 밥을 먹는다. 나도 조금은 능숙한 엄마가 되었고 누구보다 나의 아기를 사랑한다. 후회되는 것은 하나뿐이다. 조금 더 천천히 기다려줄 걸. 내게 필요했던 건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우리 앞에 수많은 기다림과 시간들이 남아있다. 조급해할 건 하나도 없다. 밥도 뜸이 들어야 맛있는 것을 인생이라고 다를까. 천천히 재촉하지 말고 지금을 음미하자.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 테니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아기는 어른이 될 것이고 우리의 사랑은 더 단단해질 것이고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금을 즐기며 기다리는 일뿐.

이전 04화우린 특별한 사이가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