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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hadi Nov 26. 2023

돌고 돌아

인생 참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계획은 언제나 계획일 뿐. 엄청난 변수들이 곳곳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갑자기 찾아온 겨울에 포장도 뜯지 못한 가을 옷부터 초등학교 졸업앨범 속 장래희망과는 몇 억 광년쯤 떨어진 오늘까지. 한 치 앞도 몰라 인생이 재미있는 거라고 하는데 이런 반전은 정말 사양하고 싶다. 이게 다 코딩을 안 배웠기 때문일까? 내 인생의 프로그래밍을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까.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물 흐르는 대로 살다 보니 평범하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고, 자유가 지상 최대 덕목이라고 외쳤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선녀옷을 잃어버린 것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나이쯤 되면 멋진(통장과 마음에 여유가 넘치는)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시간만 간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더라.


'아니, 또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시나. 입에 풀칠하고, 등 따시고, 미래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다면 그래도 잘 살고 있는 거 아니니?' 바른 소리만 하는 그가 떠든다. '너는 인생을 교과서로 배웠구나.' 나도 지지 않고 받아친다. '살아보렴. 교과서가 괜히 교과서겠니.'


그래. 한없이 가라앉아서 좋을 게 없다. 바닥을 쳤으니 다시 생각을 고쳐 먹어보자.


훌륭한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내 꿈과 영 딴판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아직 한창이잖아. 속단하기는 이르지. 무엇이든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


아이들을 자란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점점 더 내 손이 덜 가게 될 것이고, 언젠가 몸과 마음 모두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이 시기도 잠깐이야. 곧 자유가 넘쳐흘러 외롭다고 징징댈걸?


멋진 어른이라... 통장과 마음에 여유가 넘치는 어른이 멋진 어른이라면 그건 좀 힘들 수도 있겠다. 통장의 여유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여유도 원체 성급하고 치졸하게 태어난 터라 어려울 것 같다. 목표 수정이 필요하다. 어른의 정의를 다시 세워보자. 혼자서도 우뚝 설 수 있는 사람. 이 정도라면 나도 언젠가 멋진 어른이 될 수 있겠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의 기습공격을 받아내느라 투덜거렸지만 차근차근 곱씹어 보니 돌고 돌아도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세상이 칭송하는 일류작가만 작가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나의 세계를 무엇으로든 표현하고 있다면 자화자찬 작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작은 구슬들을 꿰어 내 이름 석자 박힌 책 한 권 가질 수 있다면 그게 작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꿈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룰 수 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너무 속단하지 말고, 성급하게 멈추어 서지 말자. 목적지만 명확하다면 뱅뱅 돌아도 언젠가 그곳에 다다르게 되어 있다. 인생은 길고 말 그대로 한 치앞도 모르니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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