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마트폰을 꽤 늦게 샀다. 하나, 둘 스마트폰을 살 때도 별 관심이 없었다. 전화와 문자로 휴대전화의 기능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컴퓨터가 있는데 왜 굳이 스마트폰이 필요할까?) 하지만 단체 카톡방을 써야 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결국 스마트폰을 샀다. 그게 벌써 7-8년 전 이야기인가? 그런 과거가 무색하게 지금은 스마트폰 없이는 한시도 못 사는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SNS를 확인하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은 검색하고 달력에 일정을 기록하고 쇼핑도 했다가 식단관리 앱, 배달앱, 일기 앱 등 온갖 앱들을 이용하니 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스마트폰을 달고 산다. 스마트폰은 나를 부지런하고 똑똑하게 만들어줬다. 궁금한 것은 바로 찾아보고 이동할 때는 최단 거리로 움직이고 언제, 어디서나 모든 리뷰를 섭렵한 뒤 현명한 소비를 했다. 하지만 큰 것을 빼앗아갔다. 바로 심심함이다.
스마트폰은 내 여유 시간을 모조리 가져갔다. 아니, 내가 스마트폰에게 내 모든 시간을 받쳤다. 스마트폰과 함께라면 시간의 공백은 없었다. 소파에 누워 네모난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것이 넘쳐났다. 링크를 타고 넘어가는 세상은 끝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심심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자리 잡은 일상에서 자연스레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은 사라졌다.
아이를 기르면서 나는 아이가 지루해하는 것도 못 견뎌했다. 늘 무언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틀어주고 책을 읽어주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줬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보여줬다. 그러던 어느 날, 밀린 집안일로 무척 바빴다. 아이는 심심해 보였다. 이것만 하고 놀아줘야지, 저것만 하고 텔레비전 틀어줘야 하지 하던 게 꽤 길어졌다. 심심함에 지친 아이는 집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가지고 놀지 않던 장난감까지 꺼내보고 함께 담았다 쏟아냈다를 반복하며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랬다. 우리에게는 심심함이 필요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나는 늘 심심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그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새로움을 찾아 헤맸다. 동네 뒤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기도 했고 온갖 역할을 흉내 내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었다. 커서도 심심하다는 이유로 책을 읽고 이것저것 배우고 새로운 곳을 여행했다. 심심함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마중물이었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면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느라 미뤘을 일들을 기꺼이 행동으로 옮기게 해 준 것이 바로 심심함이었다. 새로움의 순간은 아무 때나 찾아오지 않는다. 한없이 더디게 흘러가는 지루한 시간은 모험을 시작할 동기와 용기를 선사한다.
흔히 집중력이 좋다, 나쁘다 말하지만 몰입은 고정된 능력이 아니다. 물론 집중에도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의 대상이다. 내가 흥미 있고 좋아하는 대상이 있어야 진정한 몰입의 순간이 이어질 수 있다. 재미난 것, 즐거운 것을 탐색하기 위한 바탕이 바로 심심함이다. 심심함에 지쳐 무엇을 해볼까 움직이는 그 순간이 필요하다. 창조적인 순간은 바로 이 시간의 공백을 타고 온다.
그러니 심심함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잠시 내려두고 자신에게, 아이들에게 심심한 순간을 만들어주자. 심심한 내가 찾아낼 탁월한 순간들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