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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이유

by pahadi Mar 11. 2025

쓰고 싶지만 선뜻 쓸 수 없는, 도저히 타자기 앞에 앉을 수 없는 날이면 무작정 책을 읽는다. 회피에 가까운 독서를 하고 나면 그래도 뭐라도 했다는 합리화가 된다. 잭과 콩나무처럼 겁도 없이 자라는 불안감이 조금은 수그러든다. 그렇게 이번 주에만 다섯 권의 책을 읽고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이렇게 그냥 쓰면 되는 것을. 그게 왜 이렇게 힘든지.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


불혹을 앞둔 나이에 나의 꿈은 작가다. 작가는 글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다. 계속 써야 인정도 받을 텐데 첫 단추부터 머뭇거리고 있으니 인생 어느 시절에라도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막막하다. 그래도 잊지는 않고 있으니 언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얄팍한 기대를 놓지 못한다.


짧은 글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읽고 생각하고 읽고 생각한다.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글쓰기만큼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 또 있을까. 그렇게 애쓰고나도 잘 썼는지, 못 썼는지 도통 모르겠다. 쓰겠다는 의지는 그렇게 마른 낙엽처럼 바스러진다. 나는 왜 하필 글쓰기에 꽂혔을까. 이 시간에 차라리 운동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면 건강해기라도 했을 텐데. 이 시간에 차라리 재테크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러면 통장잔고가 이리 형편없지 않았을 텐데. 이 시간에 차라리 영어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어디라도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쓰고 싶을까. 그래서 궁극적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가. 작가라는 직업 말고 어떤 삶을, 어떤 사람을 꿈꾸기에 써야 한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을까. 결국 또 이런 원론적인 질문에 도달하고 역시나 그래도 쓰고 싶다는 대답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래도 쓰고 싶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가장 잘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글쓰기라고 하겠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가장 오래도록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글쓰기라고 하겠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쁘냐고 한다면 글쓰기라고 하겠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으로 인정받고 싶냐고 묻는다면 글쓰기라고 하겠다.


이 효율의 시대에 돈도 안 되는 일에 이렇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니 왠지 거룩해 보이지 않는가? 뭔가 심오한 뜻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인생에 그런 판타지 같은 것 하나쯤은 있어야지. 셈하지 않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 하나쯤은 있어야지. 바로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 말고, 저변에 흐르는 그 무언가를 위해 뭉근하고 오래오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것 같아도 그냥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하는 그런 것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암암, 그렇고 말고. 게다가 얼마나 좋은 시대냐. 누구든 어디서든 글을 쓰고 공유할 수 있으니. 운명처럼 좋은 시절에 태어났다. 그리고 사실 너무도 잘 알고 있. 글쓰기가 몇 번이나 나를 구원했는지.


그래서 오늘도 계속 쓰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이 시대를 함께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도 썼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두의 삶이 풍요롭게 토실토실해졌으면 좋겠다. 물론 백지 앞에서 늘 작아지는 나지만 그래도 백지 위에 쏟아내고 정제한 덕분에 여기까지 살아남았다. 훨씬 건강해졌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어쩌면 통장잔고 0 하나 늘리는 일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돌고 돌아 다시 타자기 앞에 앉는다. 고이 책갈피를 꽂아두었던 문장들을 옮겨 적는다. 책을 읽으며 돌고 돌아 헤맸던 시간도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내 앞에 놓은 백지를 사랑한다. 백지 앞에 있으면 어딘지 마음이 정갈해지고 순백의 태도가 된다. 백지를 마주할 때마다 다시 시작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다. ”

-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중에서 -


백지 앞의 두려움을 설렘으로 덮어본다.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마다할 필요 없지.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하얀 종이 위에 오늘은 무엇을 써볼까. 무엇이든 해도 좋다. 다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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