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수 없을 때 확인해야 할 것

30대 엄마의 성장기

by 노지윤

26개월인 우리 딸은 요새 낮잠이 없어지고 있는데 낮잠을 자지 않는 날은 저녁 7:30 - 8:00 사이에 잠들곤 한다. 취침시간이 당겨지면서 10시나 11시쯤 꼭 깨는데 그때 아이가 문밖에 나와 나를 찾을 때 난 아이를 안고 어두운 방안에 들어가 다시 토닥인다.


그렇지만 이때 아직은 다 큰 성인에겐 취침이 이른 시간이라 환한 서재나 거실에서 생활을 하다가 어두운 방에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블랙아웃이 일어나는데 그땐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간신히 아이의 실루엣만 더듬어가며 토닥이며 어서 5분이 지나 내 눈이 어둠에 적응하길 기다려 본다.


그렇다 보면 어두움에서도 보일 것들은 다 보이는데 특별히 큼지막한 웬만한 것들은 이제 금세 보이고 심지어 조금 더 지나면 아이의 자는 표정까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내 눈도 환경에 5분이면 적응을 하는데 어째 내 생각은 적응하는데 몇 달이나 걸려 이렇게 글을 다시 쓰는데 오래 걸렸다. 11월 15일을 기점으로 글을 쓰지 않은 이유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글거리가 급작스럽게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도 하늘을 보다가도 전화통화를 하다가도 묵상을 하다가도 운동을 하다가도 문득 생각이 들고 깨닫기도 하고, 그것들을 잘 버무려 한 상을 차리는 것을 좋아하던 나인데 어쩐지 풍성해야 할 연말에 도통 영감이 떠오르질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니, 이제야 눈이 어둠에 적응을 했는지, 다시금 그 이유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 난 내 부족함 점을 스스로 파악하고 그걸 발전해 나가는 걸 즐긴다. 자기 계발을 좋아하고 즐기기도 하고 그것으로 인해 다양한 관점을 가지게 된 풍성함에 푹 파묻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알면서도 유난히 미뤄두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경제공부였다. 실제로 숫자를 공부하는 것이 머리 아프기도 하고 워낙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있는 공부라고 생각해 나에게 큰 흥미가 있지 않았다. 어딘가 시끄럽고 너무 복잡해 보였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을 갖다 보니 알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껴 무작정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경제 서적들을 보이는 대로 읽었다. 한두 권씩 또 유튜브 영상들을 통해서 개념들을 정리하고 배우고 파악하다 보니 점점 생소하던 용어들도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이 분야도 꽤나 흥미 롭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흥미는 곧 적용해 보고 싶다는 욕구로 찾아왔다.


그렇게 난 모의 주식을 이용해 투자도 해보고 차트를 읽는 법 환율, 금리, 나스닥, ETF, 시가총액, 인덱스펀드, PER, PBR... 등등 여러 경제 용어들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렴풋이 배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모의 주식을 하다가 작은 자본금을 가지고 실제 주식 시장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투자를 세계를 시작해 본 것이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차트를 보는 것도, 그리고 수익금을 내는 것도 그 원리도 모든 것이 예상대로 맞을 때나 그리고 빗나갈 땐 왜 빗나가는지 스스로 정리해 보는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내가 모르던 분야가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과, 작게 생기는 수익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 되었다.


난 엄마이고, 교사이고, 곧 학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여서 여러 가지의 역할이 따라오는데 점점 나의 경제공부의 비율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려 하고 있었다.


난 스스로 '여러 가지의 도전을 하고 있고 잘하고 있다'라는 착각 속에 빠져있었지만 약 3주째 되던 날 차트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투자는 단순한 공부가 아닌 내 삶을 매이게 하는 덫임을 깨달았다. 중요한 투자가 있는 시기에 아이가 나를 부르기라도 하면 금세 예민해지고 내가 준비해야 하는 수업들과 해내야 하는 것들이 갑자기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아주 자극적인 가치에 나의 모든 가치가 잠식당하며 내 가치관의 블랙아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몽글몽글했던 나의 마음도 남편과 나누던 소소한 대화나 일상의 대화들도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깊이 들여다보는 것 대신 어서 할 일 끝내고 더 많은 공부와 분석을 해서 이익을 남겨보자(?)로 나의 순수한 공부가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 누가 보면 몇억 벌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아니고........ 마음만 그랬다 마음만. )


오해는 말아달라.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투자와 경제공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나에게는 너무나 자극적인 요소였다.


20대 초반에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1년에 한 번 한인 축제가 있었는데 그때 타지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이 흔하지 않았기에 굉장히 재미있고 신나는 연간 행사여서 거의 모든 한인들이 참석을 했다. 그 한인 축제가 끝나면 바(bar)나 클럽을 빌려서 모두가 다 같이 가서 파티를 했다.


난 술을 못 마셔서 첫 해에 따라갔을 땐 친구들과 크게 노래하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놀았다. 생각보다 큰 음악에 몸을 흔드는 건 묵혔던 체증이 내려가듯 가벼웠고 당시의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듬해에 신나게 놀 작정을 하고 다시 참석을 했고, 예상대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갑자기 친한 교회 동생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언니, 언니도 왔는지 몰랐어요! 반가워요! 내일 찬양팀 연습 때 봬요!" 갑자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난 교회에서 찬양팀 리더를 하고 있던 내가 떠오르며, 지금 상황에서의 나의 모습에 큰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클럽에서 춤추고 노는 게 매우, 정말, 너무, 잘 맞아서............ (?) 난 다시는 가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난 알았다. 본능적으로 난 이 문화에 엄청나게 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그날을 기점으로 내 인생에 클럽 방문은 생애 두 번으로 끝이 났다.


이런 강력한 결단을 하게 하는 것은 내가 중독 앞에 서있을 때 오곤 하는데 이 번이 그랬다. 투자공부를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일상의 영역을 내어주고 있고 하나둘씩 나의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관들을 타협하며 점점 하나의 생각으로만 강렬히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곤 금세 블랙아웃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살던 삶의 패턴에서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게 되면, 급작스럽게 어둠에서 다시 적응을 해야 하듯 잠식당한 내 일상도 정도의 마비가 오게 된다. 무엇이 있나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고, 머리로는 예상하지만 감각적으로 더듬어 겨우 찾아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난 차트 꿈을 연속적으로 꾸는 그 주에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에게 요즈음의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했고. 남편은 짧게 '돌아와'라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난 그 말을 들은 날 즉시 모든 투자계좌를 청산하였다. (작은 수익금은 챙겼다, 너무 아까워 마시기를..)


나를 나되게 하는 요소 (남들이 이렇다 말하는 삶의 중요한 요소 말고) : 글을 쓰는 것, 경청하는 것, 계절의 온도를 감지하는 것, 제철의 음식을 음미하는 것, 깊은 속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불안정한 나를 감싸주는 것, 하루의 짐을 서로 덜어내는 것.


내가 소중히 간직했던 그동안의 나의 일상을 다시금 하나씩 적응해 나가며 드디어 어둠 속에서 잠든 아이의 평온한 표정을 발견하듯 어딘가 많이 미성숙한 나의 생각의 결에 평온이 찾아오며 또다시 유쾌해졌다.


물론 이 경제공부를 통해 어떤 방식의 투자를 지향해야 할지 잘 배웠지만, 그 표면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결단은 자기 계발이 먼저가 아니라 자기 성찰, 즉 덜어냄이 먼저라는 결론이 났다.


다시 말하자면, 글을 쓸 수 없는 이유는 글 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과잉공급 되어지는 나의 욕망에서의 있음을 나는 이제야 서서히 인지하게 됐다.


블랙아웃을 경험한 후 2024년을 마무리하며 쓰는 이 글의 묘미는, 롤러코스터 같은 30대의 사춘기를 보내는 어딘가 어리숙 하지만 그래도 잘 배우고 있는 나에 대한 위로와 앞으로 2025년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거지만, 헤매더라도 결국 다 재료가 됨을 잊지 말라는 위안을 주고 싶어서 이다.


그러니 새해엔 연약함을 넘은 자유함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