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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영 Mar 12. 2022

삼십년 허브 외길 생산자님을 만나러 가는 길

길 위에서 쓰는 글 3

- 출발: 우리집
- 도착: 충무로역
- 출발 직전: 버스 정류장 앞 식빵 가게에서 초코식빵 두 개랑 밤 식빵 하나 예약했다.


버스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싶은 마음을 잠깐 뒤로 미루고 노트북을 펼친다. 휴대폰보다는 화면이 넓은 것이 쾌적해서 쓰기에 편하다. 월요일 저녁부터 어제까지 홍성에 있었다. 논밭상점이라는 친환경 농장에서 일손돕기를 했다. 모히또용 애플민트를 땄고, 꽃도 몇 송이 따는 것을 보았고, 나머지는 온통 포장이었다. 오랜만에 오랫동안 쭈그려 앉아있었더니 허벅지, 허리 안 아픈 곳이 없다. 엄살을 부리고 싶지는 않아서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일만 했다. 오히려 말도 표정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집중'보다는 '힘듦'에 가까운 모습은 아니었을까 싶어 손톱달만큼 걱정이 됐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보내고 기차에 타니 글은 커녕 정신을 붙잡을 여력도 없이 즉시 기절이었다. 일을 조금 해볼까 싶어 디자인 프로그램을 켜두었는데, 감기는 눈과 이십 분 싸우다가 끝내 패전.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잠에 들었다.


나는 버스나 기차, 지하철이나 비행기. 어디에서든 잘 자는 편이다. 엄마는 머리만 대면 잠을 자는 나를 신기하게 여긴다. 분명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대답이 없어 옆을 보면 내가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가 나의 잠자리를 걱정해주면 나는 버스에서도 잠을 잘 잔다고 말한다. 오른손을 뒷통수에 잠깐 대며 이렇게 손바닥만 머리에 대어줘도 잘 잠들 사람이라고 덧붙인다. 또 잠귀도 퍽이나 어두워 시끄러운 버스 안에서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되려 신기한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잠에서 깬다는 거다. 술을 조금 마시고 막차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 딱 한 번 서현동을 지나 수내를 거쳐 정자동에서 눈을 뜬 걸 제외하고는 잠을 자다가 정류장을 놓친 적이 없다. 몸이 시간으로 기억했다기엔 매일의 교통상황이 다를텐데 말이다. 


오늘은 삼십년동안 허브 농사를 지어오신 생산자님을 만난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허브 외길을 걸어오셨다니. 삼십년동안 같은 일을 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어떻게 그렇게 오래 농사를 지으셨냐고 물어보아도, 짓다 보니 그리 시간이 흐르덥디다. 하고 대답하실 것만 같다. 

전문가가 된다는 건 어떤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뜻일테다. 설령 어려움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이 역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주 잠시 엿볼 허브 전문가의 '자연스러움'이 궁금해진다.


그 마음은 돌아오는 버스에서 마저 적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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