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무척이나 무더운 날이었고, 이른 아침이었고, 집 근처 카페에서 늘 그렇듯 아이스 라테를 주문 후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리스타의 민첩한 손놀림에 주술이 걸린 듯 보고 있는데, 주머니 속 진동이 느껴졌다. 엄마였다.
나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것과 짝을 이루며 함께 다니는 질병과 죽음을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환갑이었고, 할머니는 쉰다섯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러 질병이 생기고, 수많은 약통들이 머리맡에 쌓여가고, 실버타운을 알아보고, 누워있는 곳이 자신들의 침실이 아닌 병실인 날이 더 많아지고, 시설에서 자신이 아닌 시간을 보내다 삶을 마감하게 되는 과정을 알아야 했다.
그들이 죽음을 향해갈 때 나는 꽃다운 젊음을 바삐 항해하느라 그들의 눈빛과 손짓을 살피지 못했다. 해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핑계로 한국에 들어가는 여름철의 한 달만이 그들과 보내는 옅은 꼭지의 전부였다.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은 할머니에게 배웠다. 그리고 책을 읽는 기쁨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할아버지를 통해 알아갔다. 단정한 사랑을 나에게도 그리고 새해마다 찾아오는 여러 제자들에게도 나누어 주셨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질병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죽음은 늘 가까이 생(生)과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그러다 일로 스쳐 지나간 수많은 예술가들 중, 나의 사적인 감정을 대면해주는 작품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저 깊이 아득한 곳에서 북을 두드리는 전시를 만나기도 한다.
오랫동안 아껴 보아 왔던 작가들의 작업을 이곳에서 하나씩 꺼내 보려 한다. 당신에게도 그러한 예술이 있길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