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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하게 들러붙은 타성

by 김규리
이미지 출처: 직접 생성 (Leonardo 사용, 2025.10.21.)


바삭한 감자튀김 흉내를 내려했지만 도리어 촉촉이 부스러진 감자볶음, 두부가 국물의 반을 차지하는 된장찌개, 등살이 살짝 탄 노릇한 조기구이, 흰색과 노란색만으로 각기 다른 화풍을 캔버스에 아름답게 풀어낸듯한 3장의 계란프라이, 풀 죽은 부드러운 숙주나물, 오독한 무말랭이. 내가 좋아하는 디테일이 담뿍 담긴 식탁 위 엄마의 화폭. 집에 눌어붙은 내가 뭐가 이쁘다고 보기만 해도 마음까지 따스워지는 밥상을 이리 차려놓으셨을까.

아는 맛이 무섭다고 입안 가득 군침이 고였지만 식사보다 볼거리가 먼저 준비되어야 하는 나의 오랜 루틴을 따라 데운 밥을 상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빠르게 방송 편성 정보를 훑으며 채널을 돌리는데, 세수를 마친 엄마가 TV시야를 가르며 이동식 좌식 화장품 보관대 앞에 앉으셨다. 여느 때처럼 내 초점은 다시 화면으로 재조정되었고 *가우시안 블러를 적용한 듯 아웃포커싱 된 TV의 오른쪽에선 지름 23cm쯤 되는 원형 탁상 거울을 든 엄마가 화장을 시작하셨다. 왼쪽 화면으로 전체 장면을 가늠하며 TV를 보는데 별안간 오른쪽 시야에 붉은색 금속 봉 같은 것이 엄마의 얼굴 좌우를 연거푸 휙휙 스치는 것이었다. 마치 자해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이미지에 화들짝 놀라 엄마를 바라보니, 아이브로우 펜슬인지 아니면 펜슬의 뚜껑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한쪽의 폭이 완만하게 좁아지는 매끈한 스틸 느낌의, 얼굴에 바르는 용도는 아닐 것으로 추정되는 붉은색 물체의 몸체에 묻은 살구색 비비 크림을 전방위적으로 얼굴에 닦아내듯 바르고 계셨다. 왜 저기에 비비 크림이?- 순간 스치는 추론을 따라 바닥으로 향한 시선 끝엔 해부학 표본처럼 반으로 갈려 속을 내보이는 비비 크림 튜브가 있었다.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과 속이 허한 비비크림이 한 시야에 담겼다.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는 옴팍하게 파인 용기 주둥이 부분에 고인 비비크림을 어떻게든 바르고자 아이브러시며 펜슬이며 폭이 좁아 보이는 각종 미용 도구를 집어넣어 이리저리 후볐을 엄마가 연상돼 울컥 목이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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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마음을 짓고 그립니다. 아픔에 기반하여 우울에서 나를 건져 올리는 이야기를 써냅니다. 한없이 마음이 약해지는 시간을 걷는 이들에게 미약하게라도 힘이 되는 작업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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