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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May 11. 2017

いただきま-す, 일본의 음식 드라마들

잘 먹겠습니다, 일본의 음식 드라마 여섯 편.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길리 트라왕안. 한가롭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휴가를 만끽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 그리고 그 곳에 위치한 작은 식당. 직원은 네 명, 재료가 떨어지거나 손님이 뜸하거나 아니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자유롭게 영업을 끝낸다. 그러면서도 셰프는 최선을 다해 뜨거운 불 앞에서 주걱을 놀린다. 이처럼 tvN <윤식당>은 모든 자영업자들, 혹은 자영업자를 꿈꾸는 사람들의 로망-예쁜 가게, 손님들과의 인간미 넘치는 소통, 매출 걱정 없는 여유로운 돈벌이-을 자극하며 인기를 끌었다.


 <윤식당>이 내세우는 정서는 아주 낯설지는 않다. 음식을 통해서 힐링과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일본의 음식 영화(카모메 식당, 리틀 포레스트 등)나 음식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일찍이 입소문을 타며 팬층을 생성하고 있었으니까.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같은 뜨끈한 일본 드라마 6편을 소개한다. 이 곳에 소개되지 않은 다른 음식 드라마들도 많지만, 이 6편을 선정한 기준은 내맘이다.


1. 심야식당(제 점수는요: ★★★★☆)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할 때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경까지.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 부르지. 손님이 오냐고? 꽤 많이 온다."

한 줄 요약: 어둠이 내린 도쿄의 도심 한 구석, 원하는 음식은 뭐든 만들어주는 심야식당 '마스터'와 그 음식에 얽힌 손님들의 찡한 이야기.

좋아요: '일본 음식 드라마'라고 하면 <고독한 미식가>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올릴 작품. 남들은 모두 집에 있을 시간에 혼자 혹은 둘이서 식당에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니, 일단 듣기만 해도 모두 사연이 있는 사람이 틀림없는 탁월한 설정이다. 요리의 장면도 길지 않고 맛있게 먹는 장면도 요란스럽지 않아서 '먹방'이나 '쿡방'이라 부르기에는 약간 애매하지만, 그만큼 음식에 얽힌 손님들의 사연에 집중한다. 따뜻한 휴머니티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 단골 손님들('개저씨'와 맨날 '네에~?' 하는 여자 손님 둘)이 티격태격 벌이는 수다도 이 드라마를 보는 소소한 재미.  

별로에요: '송송 보글보글'하는 쿡방이나 침이 고이도록 실감이 나는 먹방 위주의 드라마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비추.

보고 싶다면?: 왓챠플레이와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2. 고독한 미식가(제 점수는요: ★★★★★)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시 동안 그는 이기적이고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쓰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 고독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활동'이라 할 수 있다."

한 줄 요약: 만 점짜리 캐스팅의 주인공 아저씨의 만 점짜리 혼밥.

줄거리: 세일즈맨 고로는 매일 고객들을 만나며 이곳 저곳을 떠돈다.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그에게 혼자서 밥을 먹는 시간은 최고의 위안이다.

좋아요: 드라마 오프닝 시퀀스 부분의 소갯말만 봐도 이미 완벽하다. 혼밥을 하는 이유부터 혼밥의 의미, 그리고 혼밥의 효과(힐링)까지 저 짤막한 세 문장에 다 담아내다니.

 주인공 고로가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기웃거리며 행복한 고민을 하는 모습이나, 메뉴판을 쭉 훑어보는 시선과 혼잣말은 많은 '혼밥러'들의 공감을 살 만하다.

 무엇보다도 이런 주인공 '고로' 역을 맡은 배우는 어떻게 구한 건지, 먹방 천재라고 불러드리고 싶다. 음식을 음미할 때의 황홀한 표정연기도 일품이신 데다가, 또 먹기는 엄청 많이 먹는 대식가. "혼자서 먹으니까 여러 메뉴는 못 먹고 조금만 먹다가 마는 거 아냐?"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걱정 넣어두시라고 하고 싶다. 이 아저씨, 혼자서도 이것저것 정말 많이 먹으니까.

 이 드라마에서 고로가 방문하는 식당은 실제로 모두 영업 중인 식당들로, 드라마가 끝난 후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 만화가가 직접 찾아가서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별로에요: 딱히 없다.

보고 싶다면?: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케이블채널인 푸드TV에서도 방영한다.


3. 호쿠사이와 밥만 있으면(제 점수는요: ★★★★★)

"먹어주는 사람의 얼굴을 상상하면 왠지 모르게 들떠 버려. 자신을 위해 만드는 요리도 좋지만 누군가를 위해 만드는 요리는 그 이상의 기쁨이 있을지도."

한 줄 요약: 4차원 아웃사이더, 요리 만렙의 미대생 야마다 분의 신나는 요리시간.

줄거리: 세상에서 관심이 있는 것은 오직 요리와 먹는 것뿐인,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자취하는 미대생 야마다 분(분짱). 어느 날 우연히 요리를 통해서 친구 '쥰'이 생기고, 그 이후부터 수상한 꽃미모 중학생 '나기'와 분에게 반한 중학교 교사 등이 분의 일상에 얽혀든다. 그들을 만나고 함께 요리하고 밥을 먹으며 점차 '함께'의 즐거움을 알아나가는 분의 이야기.

좋아요: 30분의 분량에 먹방+쿡방+스토리의 고른 조화를 이룬다. 뛰어난 요리 실력을 가진 분이 혼자서 메뉴를 구상하며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모습이나, 작은 자취방에서 온갖 노련한 요리 비법들을 자랑하는 모습이나, 친구들과 함께 요리를 나눠 먹는 모습이 모두 귀엽고 사랑스럽다. 흔히 생각하는 자취 요리와는 달리 요리의 비주얼도 좋고 완성도도 뛰어나다.

 먹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고 대충 때우기 좋은 혼자만의 생활에서, 언제나 스스로를 위해 고급지고 건강한 요리를 부지런히 만들어내는 분의 가치관이 이 드라마의 포인트.

 (참고로 '호쿠사이'는 화면에 보이는 봉제 인형으로, 분의 단짝 친구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인형이지만 분에게는 호쿠사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분은 어딜 가나 호쿠사이를 백팩 안에 넣고 다닌다.)

별로에요: 달리 지적할 점이 없다. 오늘 소개하는 드라마 중 가장 내 취향. 다만 인형하고 대화하는 등의 판타지적인 설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보고 싶다면?: 다운로드...


4. 빵과 스프와 고양이 이야기(제 점수는요: ★★★☆☆)

 "저는 요즘 신기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슬프면 울고, 기쁘면 즐거워하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다가도 갑자기 혼자가 되기도 하고. 해가 지고 조용한 시간이 오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잠들고, 혼자도, 함께도 아닌 것. 저는 지금 그런 생활을, 어머니와 함께였을 때도 깨닫지 못했던 그런 생활을 단지 한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줄 요약: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과 작은 식당을 돌보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

줄거리: 출판 회사를 다니던 아키코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회사를 그만두고 어머니가 식당을 하던 자리에 본인의 식당을 연다. 샌드위치와 오늘의 수프라는 간단한 메뉴, 그리고 우연히 그녀를 찾아온 고양이가 상징하는 다정하고 잔잔한 이야기.

좋아요: 이 드라마의 강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단단한 여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카모메 식당>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도 눈에 익은 중년의 여배우 코바야시 사토미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여자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중년에 접어든 주인공 아키코는 그야말로 '어른'이다. 이미 다니던 출판사에서도 어느 정도의 명성과 경력이 있으며,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자신의 요리 노하우를 살려 샌드위치와 수프를 파는 식당을 차려 사장님이 된다. 그리고 자신과 잘 맞는 알바생을 고용하고, 떠돌이 고양이도 새 식구로 받아들여 차분하게 삶을 꾸린다.

 아직 인생에서 겪어보지 않은 일이 더 많아 크고 작은 사건에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떡해!"를 연발하는 청춘들과는 다른,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시청자에게 건네는 일상의 균형감.

 해가 잘 드는, 원목의 느낌이 가득한 작은 식당과 간단한 요리의 비주얼도 이 드라마의 특징.

별로에요: 위에서 소개한 드라마들이 모두 30분 내외의 짧은 분량이라 부담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50분 남짓이다. 잔잔한 화면과 스토리에 비하면 약간은 늘어지는 느낌. 마찬가지로 볶고 씹고 뜯는 푸드 포르노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추. 고양이가 많이 안 나오는 것도 아쉽다.

보고 싶다면?: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5. 와카코와 술(제 점수는요: ★★★☆☆)

"무라시와 와카코, 26살. 술맛을 아는 혀를 타고났기에 오늘 밤도 술 마실 곳을 찾아 헤메노라. 여자 혼자서..."

한 줄 요약: 푸슈~! 혼술족 와카코의 맛있는 술, 맛있는 음식 탐방. <고독한 미식가>의 '술' 버전.

줄거리: 26살 직장인 와카코, 그녀에게 인생 최고의 낙은 일이 끝나고 혼자서 즐기는 한 잔의 술과 맛있는 요리.

좋아요: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가 술을 마시지 않고 '한 끼 식사'에 집중했다면, 이 드라마는 한 잔의 술, 그리고 술안주로 삼을 만한 요리가 중심이 된다. 그만큼 요리와 어울리는 술(사케, 맥주 등)을 소개하는 데에 중점을 준다. 술과 음식의 조화가 기가 막힐 때, 항상 와카코는 "푸슈~!"하는 감탄사를 외친다.

 하지만 와카코가 늘 혼자만 먹고 마시는 건 아니다. 고향인 히로시마에 찾아가 고향 친구와 함께 히로시마 명물 요리를 먹기도 하고, 여자들끼리 모여서 걸스 나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고독한 미식가>와 마찬가지로 드라마 끝에는 '오늘의 가게 소개'를 통해 상호와 영업 시간, 대표 메뉴 등을 소개한다.

별로에요: 내가 술맛을 모르는 '비애주가'여서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애주가가 보면 좋아하려나?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아저씨 정도의 맛깔나는 맛 묘사나 표정 연기도 조금 덜 한듯.

 개인적으로 와카코가 자꾸만 '푸슈~!'를 외치는 모습이나 주변을 아랑곳 않고 먹을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에서 약간 "쟤 왜 저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보고 싶다면?: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6. 하나씨의 간단요리(제 점수는요: ★★☆☆☆)

"먹는 거 좋아함, 집안일은 싫어함. 현재 혼자 멀리서 일하는 사랑하는 남편 고로씨를 생각하며 생활하고 있다. 아주 평범한 주부, 고마자와 하나. 하지만 실은 그녀는 조금 게으른 주부였습니다."

한 줄 요약: 게으르고 더러운 전업주부의 포르노적 먹방

줄거리: 혼자서 생활하는 젊은 전업주부 하나. 집안일을 싫어해서 집이 쓰레기장이고, 요리하는 것도 귀찮아한다. 그런 그녀가 만드는 초간단 요리와 먹방.

좋아요: 음.. 좋은 점은 별로 없다. 단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인 '냉장고 파먹기'와 조금 닮았다는 점? 물론 경제가 안 좋아서 최대한 아껴야 하거나, 혹은 많은 재료를 쌓아둘 수 없어서 하는 한국의 '냉파'와는 달리, 이건 순전히 주인공 하나가 게을러서 (밖에 나가기 귀찮아서) 냉장고 안에 있는 것으로만 요리하는 '냉파'다.

 매 회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하고, 하나의 상상 속에서 갑자기 스포츠 캐스터가 등장해 그녀의 행동을 중계하는 등 만화적이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다.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일 듯.  

별로에요: 미리 분명히 말해두건대 나는 페미니스트이며 전업주부에 대한 어떠한 고정관념도 없다. 하지만 하나는 너무 심했다. 하나에게 주어진 일이 집안을 돌보는 것 단 하나뿐이라면, 맡은 바 역할을 잘 해야할 것 아닌가. 그런데 하나의 집안은 정말 돼지우리처럼 너무 더럽다.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만드는 요리는 당연히 식욕을 자극하지 않는다. 게다가 있는 재료로 대충대충 요리하다보니 양질의 요리는 잘 나오지 않으며, 따라서 하나가 만드는 요리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람의 로망을 자극해야 하지 않겠나.

 아무튼, 여러 가지 의미로, 남편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삶의 이유를 다 잃은 것처럼 저렇게 무기력하게 축 쳐져 있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모습은 별로 보기 좋지는 않았다. <빵과 고양이와 스프 이야기>와는 상극.

 추가로, 카메라는 음식을 먹는 하나의 얼굴을 가까이서 화면 가득 잡는다. 하나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으음~! 으음~! 오이시~!" 하면서 교성(?)을 지른다. 아아, 푸드 포르노란 바로 이런 건가. 마치 야동의 한 장면을 연상시켜서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뭐, 음식이 조금 더 맛있어 보였으면 그녀가 내지르는 탄성이 조금 더 이해가 갔을 법도 했는데...

보고 싶다면?: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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