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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Aug 26. 2017

에콰도르 바뇨스에는 세상의 끝에 매달린 그네가 있다

안개가 촉촉히 덮은 녹색 마을 에콰도르 바뇨스, 그리고 세상의 끝 그네

키토에서 날 먹이고 재워준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내가 키토를 떠나는 날까지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바뇨스에 가겠다고 하자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나를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이 사람들이 없었으면 나는 어땠을까. 낯선 곳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또 얼마나 걷고 얼마나 불안해했을까.

이사벨의 집에서 터미널까지는 차를 타고도 꽤 한참 달려야 하는 먼 거리였다.

점점 어둠이 깔리는 창 밖으로 키토의 건물들이 하나 둘 노란 불을 켜는 게 보였다.

차 뒷자석에 앉아서 까무룩 졸음이 찾아오는데, 앞좌석에서 이사벨과 페르난도가 행복하게 수다를 떠는 소리가 아른하게 들려왔다.


걱정이 됐는지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바뇨스에 가는 버스 티켓을 사는 내 옆에 찰싹 붙어서 몇 번 플랫폼인지, 또 몇 시에 몇 번 버스를 타면 되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내가 다 알아들었다는데도, 몇 번이고 어린 아기에게 하듯 일러주고 또 일러준다. Que triste, 벌써 헤어지는 게 슬프다며 이사벨은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키토에서 바뇨스는 약 4시간 정도의 거리. 버스는 도중에 다른 도시에서 손님들을 태우고 내렸다. 괜히 불안해서 구글맵으로 내 위치를 확인하며 갔었다.


바뇨스에 도착하니 밤 열 시가 넘은 시간. 언제나 그렇듯이, 새 도시에 도착한 첫 날은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한다.

내 숙소는 Hostal Monte Carmelo.

도미토리가 아니라 개인 욕실이 딸린 개인 방이며,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숙소였다.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오고, 주인 아저씨가 굉장히 점잖고 친절하며, 호스텔에서 키우는 강아지들도 엄청나게 귀여웠으며, 아침 식사도 좋았고, 방도 청결하다. 이불이 얇아서 아쉽긴 했다. 전체적으로 아늑하고 고요한 분위기.

바뇨스의 중심 상가로부터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바뇨스 자체가 워낙 작은 마을이라서 나는 호스텔에서 시내까지 걸어다닐만 했다. 약 15분 거리.

여독을 풀고 일어나 맞이한 바뇨스에서의 첫 아침.

바뇨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뭐랄까... 굉장히 촉촉한 곳이다.

언제나 비가 내리는 듯, 혹은 물안개에 싸인 듯 공기가 촉촉한 느낌이 든다. 워낙 레포츠로 유명한 곳이니만큼 바뇨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짙은 녹색의 산과 안개. 어디선가 멀리 들리는 폭포 소리.

시내로 향하는 길에는 인적이 거의 없지만, 그게 무섭다기보다는 아침 공기의 상쾌함을 맘껏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가다 보니 이렇게 작은 개울도 나오고...

바뇨스는 온통 이렇게 초록빛이다.

이날은 머리가 정말 잘 묶였다.

걷다 보니 바뇨스 중심가였다. 그런데 중심가 사진을 안 찍었네(...)

Wonderful Ecuador라는, 바뇨스에서 가장 유명한 투어 예약 에이전시에 찾아갔다. 바뇨스는 래프팅, 세상의 끝 그네, 트래킹, 바이크 투어, 번지점프 등의 레포츠가 유명한 곳이라, 시내에 나가면 수많은 투어 에이전시를 볼 수 있다.

물어보니 지금은 투어를 떠나기에 너무 늦었다고 해서 다음날 아침 일찍 래프팅을 떠나기로 예약을 했다.

그리고 바뇨스에 오면 꼭 해 봐야 할 '세상의 끝 그네' 타기!

세상의 끝 그네까지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니까 Wonderful Ecuador 투어 직원이 친절하게 지도를 짚으며 알려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기 지도에 표시한 Panederia Don Gato 앞에서 세상의 끝 그네로 가는 버스가 선다. 나 말고도 다른 여행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한 30-40분 산을 타고 멀리 올라갔다. 버스가 생각보다 멀리 멀리 위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올라가더라. 덕분에 버스에서 푹 잠들었다.

원조 세상의 끝 그네(Casa del Arbol)은 한 개뿐이지만, 근처에 여러 개의 짝퉁 트리하우스 그네가 많다. 원조를 가기 전에 나도 짝퉁 그네에 한 번 앉아 봤다. 단돈 1달러.

ㅋㅋㅋ 신남!

발 밑이 가파른 언덕인데다가 그네 생김새가 허술해보여서 꽤 스릴있다.

위에서 보면 그네 끈이 이렇게 길-다.

이제 그만 타고, 진짜 원조 세상의 끝 그네 타러 가야지.

위로 올라오니 퉁그라우아 산자락이 한 눈에 보인다. 워낙 고도가 높은 덕인지, 구름이 만져질 것 같다.

짜잔-

한국 여행자들이 흔히 부르는 '세상의 끝 그네'라는 이름은 누가 붙인 건지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Casa del Arbol(나무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나무 위에 작은 집 모양이 있고 거기에 그네를 매달아서 그렇게 부르는 거겠지만

나는 세상의 끝 그네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든다.

에콰도르는 적도가 지나는 곳에 있고, 적도가 지나는 땅은 어쩌면 이 세상의 낭떠러지-혹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파른 곳-일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 그네 줄을 매어놓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근사하니까.

얇은 줄에 의지해서 지구에서 있는 힘껏 가장 멀리, 있는 힘껏 우주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니.

Casa del Arbol은 직원 아저씨가 그네를 밀어주시고, 다른 한 쪽에 위치한 위 사진 속의 그네는 여행자들이 셀프로 타고 있었다.

길을 줄게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네를 탈 때가 되면 신나게 비명을 꺅 지르는 사람들. 함께 놀러온 가족이나 친구들은 그네를 탄 사람에게 더더욱 크게 소리를 질러보라며 신나한다.

Grita, grita!

드디어 내 차례. 나는 혼자 왔기 때문에 내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예쁜 꼬마 아가씨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출발한다!

슈웅!

발 밑이 아주 가파른 산자락이라 굉장히 짜릿하다.

정말로, 이 지구에서 잠시 떨어져나가는 기분.

몸이 텅 빈 허공과 촉촉한 구름 속에 파묻혔다가 돌아온다.

잠시 돌아왔다가,

더 멀리!

이번엔 다리를 하늘을 찌르도록 더 쭉 뻗어본다.

구름을 만져보고 싶었어.

그네가 하늘을 찌를 때마다, 발 밑의 아득한 산자락이 숨이 막히도록 예뻐서 벅차올랐다.

어느 정도 탈 만큼 타고 나면 아저씨가 그네를 멈춰주신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면, 하루 종일 탈 수도 있을 텐데.

내려와서 찍어 본 Casa del Arbol.

그네를 탈 생각에 들떠서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그네부터 타고 보자! 했었는데

그네를 타고 내려오니 주변 경관을 둘러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능선과 색깔을 가진 퉁그라우아 산자락.

조금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던 것 같다.

이 모든 시간과 장소들이.


파란색 버스를 타고 가물가물 잠결에 올라온 산꼭대기에

나무가 있고 그 위에 자그마한 집이 있고 거기에 그네가 매달려 있어서

사람들이 천사처럼 깔깔 웃으면서, 이 지구에서 가장 멀어지는 그네를 타며 구름의 품에 폭 안긴다.

주위를 둘러보면 전부 초록빛 풀밭. 누구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즐거워 보인다.


어릴 때 내가 상상했던 천국의 광경과 가장 비슷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감상이다. 누군가는 단순한 관광 시설로 느껴졌을지도..

좀더 감상하자.

이 나라, 이 장소에만 있는, 다시 없을 파란 능선과 짙은 초록색 풀밭과 구름을.

다시 봐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느낌.

내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지

기분 좋다.


그립다, 세상의 끝 그네.

다른 곳에서는 절대 탈 수 없기에 더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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