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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Sep 19. 2017

페루 이카 와카치나 사막에서
다리를 찢다

이렇게 이른 나이에 사막에 올 수 있을지 몰랐다

와라즈를 떠나 이카에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하니, 아슬아슬하게 사막 버기 투어를 예약하는 시간에 도착했다. 

이카에서 제일 유명한 바나나 어드벤처(Banana Adventure)라는 숙소.

투어 예약도 되고, 사막에서 뒹굴다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라서 샤워실도 곳곳에 많아서 편했다. 

체크인과 투어 예약을 하고, 투어를 떠나기 전의 막간을 이용해 호스텔 안에 있는 야외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바나나 어드벤처 안에서는 맛있는 요리와 과일주스를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딱 젊은 여행자들이 좋아할만한, 사막의 오아시스 느낌 제대로 나는 숙소.

근데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아서 좀 외로웠다. 

내가 주문한 햄버거. 

잽싸게 짐을 풀고, 선크림을 바르고, 사막에서 뒹굴기 좋은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와 버기카에 탑승했다. 

사막의 모래 언덕 위에서 자유자재로 달릴 수 있는 버기카 역시 내 남미여행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버기카가 사막을 달리기 시작한다.

어쩜 이렇게 미친듯 요동치면서도 고꾸라지지 않고 빠르게 질주할 수 있는 건지.

신나게 비명을 지르는 손님들을 태우고 버기카는 사막의 높다란 모래언덕들을 기어올랐다가 아찔한 경사로 미끄러져 내려왔다가를 반복한다.


이게 바로 버기카.

버기카에서 내려서 사막을 둘러보는 사람들.

아름다운 사막의 능산들.

마치 산처럼 보이지만 바람이 불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모양이 바뀌겠지?

그대로 운동을 해도 좋을 법한 복장을 하고 사막에 갔다.

그 이유는 곧 아래에서 밝혀진다. 

나홀로 여행을 하다보면

이 외로운 여행을 외롭게 만들어주지 않도록 해주는 사람들이 가끔 등장한다.

주로 이렇게 데이투어를 함께 하거나, 숙소를 같이 쓰는 사람들.

오늘의 동반자들은 친구끼리 여행을 온 페루 아가씨들이다. 

호스텔에서 출발한 여행이라 나도 당연히 다국적 여행자들 틈에 껴서 사막에 갈 줄 알았더니만

어쩌다보니 나 혼자서 이 페루 아가씨와 청년들 틈에 끼게 됐다. 

나를 따뜻하게 챙겨주는 현지인들을 만나서 참으로 운이 좋았다.

사막에 온 환희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중.

어릴 때부터 언젠가는 나도 사막에 가 보겠지, 나중에는 돈 많이 벌어서 어른이 되고 박사님이 되고 흰머리가 희끗희끗할때 쯤 되면 나도 아주 머나먼 나라에 가서 사막에 가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 

겨우 만 23세에 나는 벌써 사막에 와 있다. 


투어 일행들이 각자 사막에서 점프샷을 찍고, 각자의 흥이 넘치는 포즈를 잡으며 사진 찍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도 사막에 오면 꼭 찍어봐야지, 하고 벼르고 또 벼르던 포즈가 있었다.

조심스레 일행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카메라를 내밀었다.


그리고 다리를 찢었다.

이렇게.

어쩐지 사막의 모래가 뜨끈뜨끈해서 다리가 더 잘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춤을 계속 꾸준히 춰 온 덕분에 평균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던 유연성으로 사막에서 인증샷 남기기 성공. 


포토타임은 그만.

이제 진짜로 사막을 즐길 시간이 되었다. 버기카 아저씨가 한 사람씩 나무로 된 보드를 나눠준다. 

<꽃보다 청춘>에도 나왔던 바로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샌드보딩 시간. 

위에서 내려다본 모래의 경사.

슈우-----웅.

버기카와는 또 다른 짜릿한 재미.

아마 어딜 가도 이렇게 거대한 자연 미끄럼틀은 없을 테니까,

처음엔 가이드 아저씨가 밀어주시고, 그 다음부터는 우리끼리 신나게 타고 싶은 만큼 탔다. 

유쾌한 페루 처자들, 그리고 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빛과 모래의 빛깔이 달라진다. 

아까보다 모래가 더 짙은 붉은 색이 됐다.

사막에 해가 진다.

<어린왕자>가 생각나는 순간.

소행성 B612가 너무 작아 하루에도 몇 번씩 해가 뜨고 지는 걸 바라봤다는 이야기와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보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묘하게 머릿속에서 뒤섞이는 순간. 

너무 아름답다. 

사막에 오는 것이 소원이면서, 또 동시에 그 꿈은 못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던 막연한 몽상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런데 나는 어쩌다보니 이렇게 사막을 보고 있다. 


살면서 대개 원하던 바를 이루려면 그것을 머릿속에 새기고 늘 아등바등 싸워야만 얻어냈었고

또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게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이렇게 어쩌다보니, 뜻하지 않게 이뤄져 있는 때도 있나보다.

길쭉한 나의 팔.

버기카에 다시 타기가 너무 아까웠다.

아쉬워서 태양을 붙잡는 나의 손.

와, 이 때 나 정말 몰골이 야생스러웠구나. 

이 풍경을 매일 보는 버기카 아저씨들 눈에도 사막이 아름다우려나?

매일 봐도 아름답겠지?

오아시스와 마을이 코 앞이다. 

오아시스의 밤.

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사막에서의 낮과 밤도 끝났다.

이제 이카에서 멀지 않은 나스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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