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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Dec 24. 2017

발파라이소의 저녁을 만나다

파블로 네루다의 흔적을 찾아서, 벽화의 마을 칠레 발파라이소로

 그렇게 지난 글에 등장한 문제의 칠레 대사관과의 한식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는 곧바로 산티아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여행배낭은 까롤라의 집에 그대로 둔 채로, 작은 등산가방에 필요한 짐만 챙겨서 발파라이소에서의 1박 2일 여행을 하고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올 참이었다.


 발파라이소는 내가 여행 계획을 짤 때부터 너무나 기대하고 또 기대했던 곳이었다. 사실 애초에 칠레라는 나라 자체가 내 남미 여행 계획에 전혀 없었다. 그러나 당시 내가 다니고 있던 스페인어 학원에서 내가 "칠레에는 갈 생각이 없다"고 말하자 스페인어 선생님께서 깜짝 놀라면서 말씀하셨다. "무슨 소리에요? 칠레를 안 간다니? 영화 <일 포스티노> 안 봤어요? 거기 나오는 너무 예쁜 파블로 네루다의 집 안 봤어요? 그 집에 가면 지구에서 가장 끝내주는 뷰의 침실이 있는데!"


 그렇게 해서 나는 파블로 네루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게 됐고, 칠레에 가서 파블로 네루다의 집만은 꼭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칠레에는 파블로 네루다의 집이 무려 3곳이나 보존되어 있다. 하나는 수도인 산티아고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발파라이소에, 그리고 <일 포스티노>의 배경이 된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에 한 곳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집마다 파블로 네루다의 개성 넘치는 미적 감각이 깃든 인테리어를 엿볼 수 있고, 열렬한 수집가였던 그의 생전 수많은 수집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발파라이소는 칠레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중 하나로서 동네 곳곳을 수놓은 아름다운 벽화로도 유명한 곳이라 꼭 가고 싶은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여권/지갑 분실 때문에 발파라이소에서 2박을 하려던 계획을 거두고 딱 1박만 하게 됐지만. 


 산티아고에서 발파라이소까지는 약 1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발파라이소 버스 터미널에 내리면 근처에 있는 시장. 

택시를 타고 미리 잡아둔 숙소로 갔다. 발파라이소에서의 내 숙소는 Casa Felipa. 어쩐지 이 곳에서는 도미토리가 아닌 내 개인 방을 갖고 싶었다. 1박에 3만원 정도의, 저렴하지만 너무나 예쁘고 따뜻하고 깔끔하고 아늑했던 숙소. 참 조용하기도 해서 일정만 허락한다면 며칠을 묵고 싶었던 곳이다. 발파라이소에 머물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저녁을 먹으러 숙소를 나섰다. 듣던 대로 발파라이소는 너무나 예쁜 곳이었다. 

알록달록한 건물에, 알록달록한 벽화들. 

미리 알아봐두었던 발파라이소 맛집에 들어갔다. 발파라이소는 파블로 네루다의 집, 항구도시, 그리고 아름다운 벽화들 덕에 유명한 곳이므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예쁘고 아기자기한 식당이나 카페가 많다.

 이 곳은 Cafe del Pintor라는 곳이다. Pintor는 화가라는 뜻인데, 이름처럼 식당에 들어가니 내부 전체에 예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또 발파라이소에 왔으니 기분을 내겠다고 코스 요리를 시킨 것 같다. 

이게 오늘의 메인 디쉬. 아마 클램차우더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소에 조개를 거의 잘 먹지도 못했으면서 왜 이걸 시킨 걸까?' 싶지만 일단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웠다. 아무래도 발파라이소는 해물 요리로 유명하다는 얘길 듣고서 시킨 메뉴인 듯 싶다. 조개를 싫어하는 나도 꽤 맛있게 먹었으니, 조개 좋아하시는 분들은 정말 맛있게 먹을 듯했다.

같이 따라온 라마 다비드에게도 클램차우더 한 입.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고 일어났다. 

밤이 된 발파라이소. 전체적으로 경사가 심한 지형이고, 언덕을 따라 골목들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여기저기 거닐다가 재미있게도 미끄럼틀을 발견했다. 관광객들인지, 동네 시민들인지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왜 여기에 미끄럼틀이 있는지는 몰라도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물론 당연히 나도 미끄럼틀을 탔다.

미끄럼틀 위에는 뭐가 있길래? 궁금해하며 올라갔더니, 그 유명한 발파라이소의 Ascensor가 있다. 어센소르란 언덕 위와 아래를 이어주는 엘리베이터 같은 것인데, 발파라이소가 워낙 경사가 심하고 길이 구불구불한 언덕 지형이다보니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언덕을 오르내릴수 있도록 이용하는 엘리베이터인 셈이다. 발파라이소에는 어센소르가 여러 개 있다. 

이용 시간과 요금이 적혀있다. 나도 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어서 포기했다. 

대신 발파라이소의 밤을 조금 더 산책하기로 했다. 칠레 특유의 감성이 가득한, 알록달록한 집들이 가득하다. 

노랑, 보라, 초록, 빨강... 

날씨가 약간 쌀쌀한 편이었지만, 노란 가로등 불빛 덕에 발파라이소의 밤은 위험하거나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고 굉장히 아늑하게 느껴졌다. 

집 앞에서 저글링을 하고 있는 주민들도 보인다. 

아까 그 미끄럼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꽤 길어서 은근히 스릴있다. 

참, 발파라이소에는 떠돌이 개가 많다. 주인을 모르는 커다란 개들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내일은 이슬라 네그라에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집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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