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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Jan 29. 2018

부에노스아이레스 4일차:
일요일 오전은 포르테뇨처럼

카페 토르토니에서 아침을, 대성당에서는 미사를, 페론 부부와 사진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촉박한 여행 일정 중 모처럼 길게 머물게 된 장소였다. 콜롬비아 칼리 이후로, 7일 이상 머문 처음이자 마지막 도시였다. 별명이 '남미의 파리'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큼은 정말 현지인답게 도시의 멋을 충분히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오래 머문 것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첫째 날 밤은 낯선 장소에서 겁을 먹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둘째 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심장부를 둘러보며 이 도시의 분위기는 어떤지,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셋째 날은 팔레르모 지구와 레꼴레타 지구를 둘러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나는 이 도시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느 요일의 어떤 시간대에 하고 싶은지 마음 속으로 위시리스트를 구상해 놓았다.


 둘째 날 낮에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서 아쉽게 지나가야 했던 카페 토르토니를 다시 찾았다. 이 곳에 가기 위해서 일부러 일찍 일어나 꽃단장을 했었다. 

 카페 입구에는 여러 가지 기념패가 붙어있다. 좌측에는 "뛰어난 예술가와 정치인들이 방문했던,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를 기리다"라고 써 있다. 그 외에도 트립어드바이저, 여행 서적, 각종 협회에서 '최고의 카페'라고 인정했다는 증거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협회든, 정부든, 가이드북이든 모두들 '최고'라고 인정하는 곳에 들어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멋지다.

 바깥 출입문이 소박하기도 했고, '가장 오래된 카페'라길래 왠지 소박하고 조금은 누추한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 반대로 굉장히 화려하고 웅장했다. 

 카페 문화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의 생활의 매우 필수적인 요소인 것 같았다. 커피를 그렇게 많이 마신다는 우리나라도 이렇진 않을텐데, 이렇게나 이른 오전 시간에도 테이블은 거의 만석이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멋지게 차려입은 웨이터 아저씨.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부럽다.


 새삼 서울에 카페는 많지만, 어째서 카페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카페를 간다'는 행위의 의미가 이렇게나 차이가 날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국인에게 커피란, 그리고 카페란 무엇일까. 자그마하고 낡은 하숙집에서 살던 대학생 시절의 내게, (그리고 여전히 많은 한국의 평범하디 평범한 청춘들에게) 카페란 더운 날 에어컨이 펑펑 나오고 추운날엔 난방이 뜨뜻하게 잘 되는, 그리고 코딱지만하고 열악한 주거 환경과는 대조적으로 넓고 쾌적한 공간이었다. 성냥갑만하고 예쁘지도 않은 하숙집 방이 답답해지면 나는 노트북을 싸들고 카페에 달려갔었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일을 할 때, 커피란 지하 구내식당 카페에서 급하게 사 오는, 그리고 과한 업무 시간에서 쏟아지는 잠을 억지로 물리치고 좀비처럼 깨어 있기 위해서 마시는 레드불과 다를 바 없는 음료였다. 


 즉 커피는 '마셔야 하기 때문에' 마셨던 음료였고, 카페 또한 문화를 향유하러 가기는커녕 익명성의 공간에서 시간을 때우기 좋은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내겐 인식되고 있었다.


 갈 때마다 달라지는 알바생의 얼굴. 스타벅스가 흔해진 덕분에 어딜 가나 똑같은 메뉴와 똑같은 알바생들의 응대. 덕분에 어제의 이 알바생이 오늘의 저 알바생으로 바뀌어도 신경쓸 필요 없고, 신경쓸 이유도 없고, 신경도 쓰지 못하게 된 것이 한국의 카페인 듯하다. 하나의 고유한 주체이기보다는 표준화된 장난감 병정과도 같은 서비스 속에서 나 또한 익명의 군중 중 하나가 되어버리는 곳. 그래서 관성적으로 영수증의 주문 번호를 확인하고, 번호를 불리거나 진동벨이 울리면 음료를 받아오고, 기계적으로 서비스대에 가서 빨때 포장지를 뜯고 남은 얼음을 탈탈 털어 버리는 곳.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 한국 카페의 알바생 또한 카페를 '이 곳은 나의 삶터', 아니 최소 '나의 일터'라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이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반대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페 웨이터들은 이 일을 '알바'가 아닌 '진짜 생계'로 삼고 있었다. 카페가 이들의 자랑스런 일터인 것이다. 흐트러짐 없는 정장을 입고, 각자 맡은 테이블이 있어 주문한 메뉴를 손님의 테이블에 서빙하고, 그 테이블에 앉은 손님의 편의를 세심하게 보살핀다. 살짝 동떨어진 주제일 수 있는데, 새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직장이 직원의 생계와 품위를 보장해줄 때, 이를 바탕으로 직원은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는 서비스를 받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도 한층 더 나은 경험으로 돌아온다.

카페의 앞, 뒤, 옆...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흥미로운 요소들이 너무 많다.

 내가 주문한 건 츄러스와 핫초코. 사실 내가 원래 주문하고 싶었던 건 츄러스 꼰 초꼴라떼 (Churros con chocolate)였다. 이것이 스페인이나 남미에서 간식이나 아침식사로 많이들 먹는 메뉴로, 츄러스를 뜨겁게 녹인 초콜릿에 푹 찍어서 먹는 것을 츄로스 꼰 초꼴라떼라고 부른다. 여기 카페 토르토니에도 그게 메뉴에 있었지만, 내가 자세히 보지 못하고 살짝 다른 메뉴를 시켜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진짜 뜨거운 초콜릿'이 아닌 곁들이게 됐지만, 그래도 기분을 내려고 온 거니까. 

찰칵, 찰칵, 찰칵.

신이 나서 셀카를 찍고 있으니까, 바로 내 옆 테이블에 혼자 와서 앉아 계시던 아저씨께서 말을 거신다.

"사진 찍어줄까?"

"네!"

찰칵, 찰칵, 찰칵.

"나도 찍어주련."

 그래서 나도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는 아저씨를 찍어 드렸다. 


 카페 안에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 많아 보여서, 핸드폰을 들고 일어나서 카페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주로 카페 토르토니를 드나들었던 아르헨티나의 유명인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것들이다. 

거울이 있길래 전신 사진도 찍어보고.

나는 이럴 때 새삼 내가 키가 큰 편임을 느낀다. 고등학교 1학년때만 해도 163cm였는데, 그 후로도 더 자라서 지금의 키는 166cm가 조금 넘는다. 

 카페 토르토니 관련 기념품까지 있다. 

탱고 황제라 불리는 까를로스 가르델의 초상이 있다. 

 내부 공간이 워낙 넓어서, 한켠에는 이렇게 박물관처럼 보이는 공간까지 있다. 이 곳은 손님이 앉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별도의 공간이었다. 

 무려 1858년에 문을 연 카페라고 한다. 오노레 드 발자크부터 마네까지, 낭만주의 시대의 저명한 인사들이 드나들었다는 설명이 보인다.


 구경도 마치고, 달콤한 브런치도 즐겼지만 나는 카페 토르토니에서 할 것이 또 하나 남아있었다. 바로, 저녁에 이 곳에서 열리는 탱고쇼를 보는 것. 카페 토르토니에서 저녁마다 열리는 (매일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탱고쇼는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유명하기 때문에, 예약은 필수였다. 

 어디서 탱고 공연을 하나 했더니, 역시나 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카페의 안에는 탱고쇼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예매는 이 극장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데스크에 서 계신 직원에게 문의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이 공간에 대한 자부심이 철철 넘쳐보이는 노신사 직원분께서 내 좌석을 예매해주신다. 인원 수, 그리고 선착순에 따라서 테이블이 배정된다. 그리하여 이날 밤에 나는 또 다시 카페 토르토니를 찾게 됐다.


 그리고 둘째 날 마치 도서관이나 의회처럼 보이는 외관 때문에 성당인지도 모르고 지나쳤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성당 (Catedral Metropolitana Buenos Aires)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운이 좋으면 미사를 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참 운이 좋게도 미사가 막 시작된 때에 성당에 들어왔다. 미사 중에는 성당 문을 닫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성당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웅장하고 규모가 큰 성당과는 대조적으로 미사를 보고 있는 인원은 많지 않았다. 미사 중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관광객들에게 익숙한 듯했다.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는 반주자 아저씨 발견. 오르간 소리만 잘 들리면 되는 것 아닐까 싶었는데, 아저씨의 입 바로 앞에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는 게 재미있었다. 그러면 이 아저씨는, 피아노도 잘 쳐야 되고 노래도 모범적으로 열심히 불러야 하는 건가?

 

 나도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까지, 우리 동네 성당의 반주자였기 때문에 이 아저씨의 존재가 더욱 반가웠다. 내가 오르간을 마구 빠르게 연주하면 신자들의 노랫소리도 빨라지고, 내가 실수하면 미사에 삑사리가 나는, 그런 나름대로의 '어마어마한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던 시절이 생각났다.  

 

미사를 보는 신자들의 모습도 담아왔다.

남미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진지한 태도 앞에서, 카메라가 더 중요한 나의 '여행용 미사'가 미안하게 느껴졌다. 

 재미있게도 이 곳을 비롯해서 많은 남미의 성당에는 여러 개의 제단을 두고 있다. 신부님이 미사를 드리는 메인 제단 외에도 성당의 벽을 따라 양 옆에 여러 개의 제단이 있다. 각자 다른 모습의 성모상, 각자 다른 모습의 예수상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이 제단은 재미있게도 양 옆에서 마치 버킹엄 궁전의 근위병과 같은 복장을 한 두 남자가 지키고 있고, 커다란 아르헨티나 국기가 무엇인가를 덮고 있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유해가 안치된 제단인 걸까? 

 성당을 나왔다. 이틀 전 보았던 까사 로사다(Casa Rosada)를 다시 만났다. 이틀 전에는 밖에서 까사 로사다의 외관을 구경만 했지만, 오늘은 지하에 있는 박물관 (Museo Casa Rosada)에 들어간다. 

지하에 꾸며진 전시관의 모습.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아르헨티나의 역사에 관련된 전시물과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쭉 지나자 비로소 내가 아는 얼굴이 나왔다.

 바로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의 초상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영화 <에비타>를 보며 에바 페론이 누구인지 대략적으로 알아보았다. 그녀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는 이유에는 그녀의 출중한 외모도 큰 몫을 했다고 한다. 물론 영부인이 되기 전 무명 영화배우였던 적도 있다고 하니 그 외모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글쎄, 별로 좋게 보이진 않는다.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젊었을 때 꽤 고운 외모 덕에 지금까지도 상당한 수의 노인들의 '물보다 깨끗하신' 아이돌이 됐고, 주변에서부터 어릴 때부터 그렇게 "곱다, 고와" 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지금까지도 지지자들의 추앙이 주는 환상에 빠져 살고 있으니 말이다. 예쁜 외모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예쁘다' 혹은 '잘생겼다'는 이유로 정치인을 '사랑'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맹목적이고 헌신적인 감정인데, 한 개인의 사리판단이 나라 전체의 이득과 손실로 이어지는 막중한 권력과 책임을 진 정치인을 단순 지지를 넘어서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좋지 않은 일인지.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랑받으며 또한 미움받는 페론 부부 앞에서는 역시 너도 나도 사진을 찍는다.

 나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다른 관람객 아저씨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카메라를 돌려 받았을 때는 못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귀엽게 나왔네. 

관람을 마치고 다시 5월 광장으로 나왔다. 

5월 광장의 파노라마 샷. 

구름이 많아서 파란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둘째날 밤 피아졸라 탱고쇼를 보러 가던 길 조명을 켜서 예쁘게 빛나던 그 건물도 다시 만나고. 

지하철을 타려고 이동하려는데, Calle Florida(플로리다 거리)로 이어지는 초입에서 버스커를 만났다. 연주 실력이 뛰어나서 잠시 서서 그들의 연주를 감상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심 산책이 즐거운 것은, 다른 어떤 남미의 도시보다도 버스커들의 연주 실력이 굉장히 뛰어난 것도 한 몫을 한다. 


 이제 그 전날 가봐야겠다고 찜해놓았던 MALBA(Museo de Arte Latinoamericano Buenos Aires: 부에노스아이레스 라틴아메리카 미술관)을 보러 팔레르모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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