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추운 여름 03
코인런드리는 처음이었다. 나는 이때껏 빨래라는 게 그렇게 비싼 일인 줄 몰랐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몰라서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가방 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 가져온 빨랫감들을 꺼내 세탁기 속에 넣고, 어리바리하게 세제를 사고, 500원짜리 동전을 몇 개씩이나 넣고 운전 버튼을 누를 때까지 나는 조금 손을 떨었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의 기억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흐릿하게 지워져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불안한 앞날과 처량한 처지를 스스로 동정하며 엉엉 울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금세 코인런드리의 모든 것에 완전히 적응해 버렸다.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에 항상 아주 늦은 밤이나 모두가 출근하기 전에 빨래를 하러 갔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는 참 좋았다. 간식을 먹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그것도 시들해지면 멍하니 세탁기나 건조기의 유리문 뒤로 세탁물들이 둥글게 둥글게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막 건조기에서 꺼낸 옷들은 깨끗하고 보드랍고 따뜻했다. 차곡차곡 접은 빨래들을 가방에 넣고 돌아가는 길은 올 때만큼 비참하거나 슬프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한 코인런드리는 무려 옆 옆 옆 옆 옆 동네에 자리 잡은 곳이었다. 아침 일찍 빨래를 하러 온 어느 날, 출근하시는 코인런드리의 주인 부부와 마주친 적이 있다. 마치 학생처럼 보이는 내가 (물론 학생이 아니게 된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새벽부터 나와서 혼자 빨래하는 모습이 수상할 법도 한데, 부부는 놀란 체도 않고 항상 웃으며 인사해 주셨다. 그 공간을 찾는 모두에게, 나뿐만 아니라 그게 누구던, 주인 부부는 웃으며 인사하고 상냥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와도 만나거나 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압도적인 따뜻함에 넘어가 버렸다. 그게 바로, 내가 1년 동안이나 옆 옆 옆 옆 옆 동네의 코인런드리만을 찾았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