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by 연어

나는 구였다. 그녀에게 나는 늘 구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손가락이 하나 없어서 그런가, 그녀는 늘 나를 구라고 불렀다. 출생신고 때도 그냥 ‘구’ 그게 다였다. 나는 손으로 10을 세지 못했고,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수가 9로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0이란 완전한수 같은건 내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이게 내 세상의 전부로만 알고 살았다. “열 개 사오라고 했잖아. 머리도 모자란거니?” 그녀가 언젠가 시장에서 사과를 사오라며 심부름을 보냈던 날, 나는 10이라는 숫자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그게 내가 아마, 8살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여자의 외모는 특출나게 빼어나지는 않았지만, 어디 하나 심각하게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시골 촌구석에서 남자 하나 구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싸구려 염색약으로 망친 머릿결은 푸석푸석한 채로 허리께까지 내려와 하늘거리고 햇빛 하나 받은 적 없는 듯 하얀 피부가 흙먼지가 이는 시골길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꼭 유령같았다. 여자는 늘 지친 걸음으로 길 위를 걷고 있었고, 그렇게 걷고 또 걷다 어느 날은 옆 마을 덩치 좋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얼굴이 약간 네모진 남자 하나를 데리고 들어와 같이 걸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에 남자는 옆에 없고, 그녀 손에는 누런 보자기를 둘둘 둘러맨 갓난장이 아이가 하나 들려 있었다. 그녀는 그 후로도 이 남자, 그리고 저 남자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고, 그러다 하루는 또 이제 막 걸음을 뗀 아기가 옆에서 같이 걷고 있었다. 여자는 숱하게 바뀐 남자들과는 늘 한결같은 자세로 (손을 잡거나 허리를 끌어 안는 자세로) 길 위에 있었으나, 옆에 걷는 작은 것에는 어쩐지 무심했다. 아기는 알아서 걸었고, 알아서 넘어졌고, 알아서 다시 일어나 먼지를 털어냈다. 땅을 짚고, 먼지를 털어내는 그 손가락은 아홉개가 전부였다.

늘 인생이 위태로워 보였던 여자는 어느 날은 새로 들인 남자한테 심하게 맞았다. 남자가 여자를 때린 이유는 나의손가락이 아홉개라는 게 이유였다. 나는 그게 어떻게 사람을 때리는 이유가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여자는 방문 뒤에서 그 상황을 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고, 어쩌면 원망일 수도 있는 복잡한 눈빛을 흘리면서도 나를 외면했다. 그 순간 그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도 그 남자에게 실컷 두들겨 맞았을 것이었다. 나는 그 하얀 피부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선홍빛 피가 번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버석거리는 머리카락은 여기 저기 쥐어 뜯겨 잘못 뭉친 털실처럼 어지러웠다.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는 그녀의 몸이 남자의 주먹에, 벽에, 바닥에 부딪히는 어설픈 소리만 방안 가득했다. 나는 어딘가 어색한 잔인한 장면을 한참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내 손을 내려다 보고 하나, 둘, 셋, 그렇게 아홉까지 센 후집을 나왔다. 내가 아홉살이 된 바로 다음날의 일이었다.

나는 이제 사과를 열 개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 손가락은 아홉개였다. 나는 이제 아홉살이 되었고, 아홉살까지 셀 수 있었지만, 이제 열 살이 되면 나는 내 나이를 손가락으로 접어가며 셀 수 없게 된다. 그러한 끔찍함이 남자가 여자를 때리게 만들었다. 열도 세지 못하는 불완전한 놈이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게 남자로서는 참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 나는 하나 부족한 손가락으로 반대편 팔꿈치를 그러안고 아무 길바닥 위에 앉아 웅크렸다. 열개가 뭐라고, 사과도 열 개가 뭐라고. 하나 모자란게 뭐라고. 결국 아홉살도 열에서 고작 하나 모자란 게 아니던가.

여자는 종종 시장에 가서 무언가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켰고, 그 때마다 당근 두개, 사과 다섯개, 콩나물 오백원어치 정도를 사가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엔 무슨 변덕인지 사과만 열 개를 사오라고 시켰고, 나는 자연스레 내 손가락을 세어 아홉개를 담았다. 손가락만 모자란게 아니라 머리도 모자란 거 아니냐는 여자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나는 당연스레 어딘가 꼭 하나씩 부족하게 태어난 게 맞는 것 같았다. 그 때 내 앞에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사과 파는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얼굴 위에 있는 주름은 내가 손가락이 열 개가 전부 있더라도 다 셀 수 없을만큼 많았다. 주름들이 하나 둘 씩 구겨지며 어쩐지 다정한 얼굴로 변하는 게 눈 속에 박혀 집을 나와 길 위에 동그라니 놓여진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오늘도 그 할머니가 나와있을까. 늘 사과를 적당한 양만 가지고 나와 적당한 양을 팔고 나면 주섬주섬 짐을 챙겨 돌아가는 할머니는 늘 거기 있었다. 새벽 동이 튼 지 한참 지난 시간. 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할머니가 늘 앉아 있는 자리는 오늘 비어 있었다. 아니, 사과를 담아두던 노란색 플라스틱 바구니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나는 허탈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밀려오는걸 느낀다. 목 끝까지 눈물이 올라와서 내가 나 스스로를 익사시키고만 있는 것 같다. 사과 바구니 안에는 약간 쪼그라든 사과가 몇 개 들어 있다. 하나, 둘, 셋, 바구니 밖으로 사과를 꺼내 개수를 센다. 여섯, 일곱, 여덟, 그리고 아홉. 사과는 아홉개 뿐이다. 사과가 아홉개 들어 있다고 해서 이 바구니는 모자란 바구니인건가? 그래서 할머니는 이 바구니를 버리고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아홉개는 커녕, 열 개로도 다 셀 수 없을 그녀의 얼굴 주름을 생각했다. 주름이 하나 둘 씩 펴지며 다정하게 웃는 얼굴이 피멍이 든 허여멀건한 얼굴로 변한다. 얼굴에 멍이 하나, 둘, 셋, 그리고 팔에 또 하나, 둘, 셋, 다리에 또 하나, 둘, 셋. 그녀의 눈망울에 어린 원망의 개수를 센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아홉. 내 손가락 개수만큼 내가 자라는 한 해 한 해 차곡차곡 나를 보며 쌓아왔을 그녀의 원망의 개수가 갑자기 어린 가슴에 사무쳤다. 나는 조금 더 그 집을 일찍 나왔어야 했을까. 나는 정말로 어딘가 모자라서 그런 것도 빨리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사과를 다시 바구니에 집어 넣었다. 약간 쪼그라든 그 껍데기가 할머니 얼굴의 주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길 위에 덩그러니 놓였다. 나는 여전히 아홉이고. 구였다. 나는 이제 아홉살이 되었고, 이게 내가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마지막 숫자였다. 나는 영원히 손가락을 접어 10을 셀 수 없다. 그 사실이, 나는 평생 10살이 되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다. 사과도 10개여야 여자는 만족스러웠다. 손가락도 열 개여야 남자는 만족스러웠다. 그랬다면 여자는 내 손을 잡고 길을 걸었을까. 아홉살이 되었기 때문에, 내 손가락만큼의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할머니도 그 자리에 없었을까. 내 손가락을 보면서도 그저 다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그 얼굴이, 내가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는 그곳에 없는 걸까. 영원히 10살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게 손가락이 하나 더 생기는 일과 같을 것이니. 나를 향한 비난과 원망, 혐오는 계속해서 아홉 해 속에 맴돌며 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어딘가 모자라고, 그것은 내 손가락에 고스란히 드러났으며, 영원히 10이라는 숫자가 되지 못할 것이었다. 이제 막 아홉살이 된 날 아침. 나는 앞에 놓인 이 길이 끝 없이 펼쳐진 아홉의 굴레 같아 쉽게 걸음을 떼지 못한다.


(사진: Unsplash의Paolo Benda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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