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와리 일주일 후기
*마와리를 일주일 정도 돌고 나서 쓴 글입니다. 마와리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슬프게도...
모욕으로 시작해서 모욕으로 하루가 끝났다. 언론에 처음 발을 담근 기자는 ‘마와리를 돈다.’ 취재기자뿐만 아니라 PD·편집기자·사진기자도 마찬가지다. (편집이나 사진은 마와리 없는 회사도 있다) 마와리란 자신이 맡은 경찰서·소방서·관공서를 돌아다니며 뉴스가 될 만한 사건이 있는지 캐묻고 다니는 일이다.
결론부터 말해서 마와리는 ‘수습기자 기 죽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당신이 일하고 있는 직장에 중·고등학생이 사전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어제 무슨 일을 했나’ ‘기사로 쓸 만한 특이한 사건 좀 달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더더군다나 이런 일이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된다면?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필자가 돈 마와리도 그랬다. 필자를 담당한 선배는 일단 가보라고 했다. 선배 말대로 형사 당직실, 교통조사계 문을 열었다. “어떤 일로 오셨어요?” “아 안녕하십니까. ㅇㅇ신문 기자입니다” ‘기자’라는 말에 경찰의 반응은 돌변한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명함이나 겨우 돌리고 발길을 돌린다. 다행스러운 건 아직 쌍욕을 박는 경찰을 만나지는 못했다는 것...?
마와리를 도는 수습기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배에게 마와리 결과를 보고한다. 2~4시간마다 보고할 거리를 만들기 위해 경찰을 만나야 하는 셈이다. 사건이 없으면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라도 말해야 한다. 무작정 들이대고, 싸늘하다 못해 모멸감까지 주는 반응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겪는다.
선배들도 안다. 경찰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걸. 과거에는 기자와 경찰이 호형호제하던 시절이 존재했다. 어느 선배는 “나 때는 매일 저녁에 형사들이랑 술 먹고 취재하고 그랬어!”라고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경찰은 뉴스거리를 흘리고, 기자는 그걸로 단독 기사를 썼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 관계가 가능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피의사실 공표제가 생겼다. 수사 중인 사건을 제3자에게 이야기하면 처벌받는다. 최대 6개월이면 경찰서를 떠나서 다시 볼 일이 없는 기자에게 그런 위험을 무릅쓸 경찰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담배를 피우며 겨우 대화를 나눈 모 경찰은 “당신의 기자 선배 중 한 명이 경찰서에서 자료를 몰래 가져가려다 걸린 적이 있다”라며 “그 뒤로 기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심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출근하면 일단 각 부서에 전화부터 돌렸다. ‘어디의 누구다, 부서장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다, 5분만 달라’는 게 주 내용이었다. 물론 성사된 적은 없다. 어쩔 수 없이 수습기자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공유된 부서장의 개인 번호로 전화를 했다. ‘회의가 있다’ ‘코로나 때문에 안 된다’ 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거절한다. 회의가 일주일 내내 있나요 과장님...? 타사의 모 수습기자는 “3주 동안 경찰에게 무언가 사건을 얻은 경우는 두 차례에 불과”라고 말했다.
경찰의 문화는 시대에 맞게 변하는데, 기자의 문화는 그대로다. 몇몇 선배들은 52시간 근무제도로 마와리가 너무 약해졌다고 아쉬워했다. 정부가 52시간 근무제를 하든 말든 옛 방식을 고수하는 신문사도 있다 정말 정부와 기업이 사소한 실수만 저질러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일반적으로 수습기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경찰서에 던져진다. 운 좋게 부서장을 만나도 지식이 없다 보니 업무에 대한 수업(?)을 듣고 온다. 필자도 생안과 과장에게 “생안과가 정확히 뭐하는 부서인가요?”라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현실이 이런데, 과연 경찰들에게 기자에 대한 신뢰가 생길까? 기자 혐오가 생기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마와리는 없어져야 한다. 마와리를 돌지 않는 유명 언론사로는 한국경제신문이 있다. 마와리로 “단단한 정신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기르지 못했지만, 매일경제신문과 1등 경제신문 자리를 놓고 다툰다. 한국경제신문이 마와리를 돌면 매일경제신문을 제치고 1등 경제지로 올라설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 마와리의 기자 교육적 측면에서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까닭이다.
어차피 도제식 교육이라면 선배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뉴스거리를 찾는지, 어떤 방법으로 취재하는지, 인터뷰나 섭외를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다. 선배를 ‘밀착 취재’하고 싶다. 그러면서 선배가 뭔가를 지시하면 그걸 도우면서 기자로서의 능력을 기르고 싶다. 같은 맨땅의 헤딩이라도 목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경찰서에 죽치고 앉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건을 기다리다 보면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만 같다. 경찰을 만나려 해도 요즘 경찰서는 대부분 스크린도어로 2중 3중 막혀서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욕을 먹더라도 결과물이 있으면 아무래도 좋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겪은 (경찰) 마와리는 상처만 남는다. 앞으로도 상처를 받아야 한다. 상처가 아물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버틴다. 기자가 되는 길이 정말 이것밖에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