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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Oct 07. 2022

Ep09. 난산

임신 280일, 두렵고도 설레는 특별한 여행

--난산이란--

난산이란 순산의 반대말이고 영어로는 dystocia라고 합니다.  한문으로는 어려울 난자를 씁니다. 의학적으로는 비정상적 분만 진행 과정을 말합니다. 사실 모든 임신부들은 난산이 되지 않고 순산이 되길 바랍니다.

전에 순풍 산부인과라는 시트콤 드라마가 있었는데 순풍도 순산과 같은 의미입니다. 드라마에서 무대는 산부인과로 원장과 의사들 그리고 간호사들이 등장인물로 나왔지만 산부인과 관련 에피소드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만일 산부인과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드라마의 소재로 삼았다면 아마 시트콤으로 만들기는 어려웠을 듯싶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단하게 드라마틱하거나 위험하고 아찔한 일들만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시트콤적인 상황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없는 일 중 하나가 난산입니다.


--난산의 종류와 진단--

난산의 진단은 출산의 진행 단계별로 다릅니다. 출산의 진행 단계는 1기, 2기, 3기로 나누어지고 1기는 잠복기와 개구기로 나누어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출산 단계별로 진단이 다르다는 것은 진단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진단을 위한 관찰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내진으로 판단한 소견 등 의사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는 상대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어떤 의사는 난산이라고 판단했지만 다른 의사는 난산이 아니라고 진단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어떤 의사는 난산으로 인한 제왕절개 비율이 매우 높고 어떤 의사는 수술률이 낮고 한 차이가 생깁니다. 대응에 있어 그런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난산을  다음 3 가지 종류로 나누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1. 잠복기 연장—1 기 중 잠복기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경우 

2. 개대기 정체—1 기 중 자궁이 개대되는 데 장애가 있는 경우 

3. 하강기 지연—2 기 중 태아 하강이 늦어 지거나 또는 정지된 경우 


--잠복기 연장--

첫 번째의 잠복기 이상은 진통이 시작되어 자궁문이 3 cm 내지 4 cm 벌어지기 전까지의 시기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경우로 초산모에서 그 시간이 20 시간 이상 걸리거나 경산모에서 그  시간이 14 시간 이상이 걸릴 때를 말합니다. 


--개대기 정체--

두 번째의 자궁 개대기 이상은 초산모에서  2 시간 동안, 경산모에서 1시간 동안  자궁 경관이 벌어지는 정도에 변화가 없을 때를 말합니다.  


--하강기 지연--

세 번째의 태아 하강 이상은 자궁 경관이 8 cm 이상 벌어지고 태아가 만출되기까지의 시간이  1 시간 이상이 지나도록 태아 하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때를 의미합니다. 


--개대기 지연으로 인한 난산을 초래하는 위험 요인--

 1. 조기 양막 파수

2. 유도 분만하는 경우

3. 35세 이상의 고령 임신부

4. 4kg 이상의 과체중 태아

5. 당뇨병이나 고혈압, 비만 등 내과적 질병을 가진 임신부

6. 양수과다증

7. 양수과소증


--하강기 지연으로 인한 난산을 초래하는 위험 요인--

 1. 경막외 마취(무통 분만)

2. 아기 자세가 하늘을 보는 경우

3. 150cm 이하의 저신장 임신부

4. 35세 이상의 고령 임산부

   

--협골반 (아두 골반 불균형)의 예측--

이중  진통 2기에 난산을 잘 초래하는 협골반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협골반인지 아닌지 진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골반의 넓이를 측정하기 위해  18세기에는 골반의 크기를 측정하는 골반 계측기 (Pelvimeter)가 사용되었습니다. 



골반 계측기는 보시는 그림처럼 산도 안으로 집게발처럼 생긴 기구를 넣어서 벌린 후 그 길이를 측정해 보는 기구입니다.  골반 측정기는 사용하기 불편하고 부정확한 점 때문에 20세기 초 X선이 발견되면서 골반 측정 X 선 검사 (Pelvimetry)로 대체되었습니다.


골반 X선 검사는 골반의 가장 좁은 뼈 부분 (ischial spine)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기는 하지만  검사 시 사용한 X 선으로 인해 태아의 골수에 영향을 줍니다. 그런 검사를 받고 태어난 아기들은 나중에 백혈병 등의 악성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은  내진이라고 하여 손으로 만져 보는 진찰법을 사용합니다. 손가락 두 개를 질안으로 넣어서 골반의 넓고 좁은 정도를 판단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내진에 의한 골반 너비 측정은 개인차가 심한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방법이라서 정확한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의사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으며 그저 참고 자료 정도로 생각해야 합니다. 


협골반과 더불어 난산의 중요 원인이기도 한 태아의 선진부 및 자세 이상에 의한 난산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견갑 난산--

견갑 난산이라고 합니다.  발생빈도는 약 0.61%에서 1.4%로 흔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견갑 난산은 산과에서 경험하는 가장 위험한 사건 중 하나로 관련된 몇몇 산과적 위험 요소가 존재하더라도 견갑 난산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발생 위험 인자로는 모체의 비만, 당뇨에 의한 태아 출생 체중의 증가가 있습니다. 


--둔위에 의한 난산--

둔위의 발생빈도는 임신 28주 이전에는 약 25%를 보이지만 32주에는 7%, 임신 말기에는 약 3.4% 정도입니다. 발생 위험 인자로는  다산, 미숙아, 태아의 기형 (무뇌증, 뇌수종), 양수과다증, 다태아, 자궁기형, 전치태반, 자궁근종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둔위의 경우에는 질식분만에 의해서 뇌, 척수, 간, 부신 및 비장 등의 장기 손상과 태아 질식의 위험 때문에 제왕절개술이 일반적인 조치입니다.


--후두위에 의한 난산--

정상 자연분만에서는 태아는 땅을 바라보는 자세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간혹 아기가 하늘을 보는 자세로 나오는 경우가 있으며 이를 후방 후두위라고 합니다. 후두위는 협골반때 흔히 생기는 것으로  태아 머리가 회음부까지 하강하면 큰 어려움 없이 분만할 수 있으나, 태아 머리가 골반과  불균형 상태라면 제왕절개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난산의 진단은 어렵다고 말씀드렸지만 난산뿐 아니라 의학에서 질병이나 상태의 정확한 진단은 가장 우선인 것이면서도 또한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오래전 명의로 알려진 일본의 내과 의사의 고백에 의하면 자신이 대학병원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정확히 진단한 경우는 채 50%가 되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의료 기술의 발달로 오진율이 그 정도로 높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교수님도 절대적 수치로서의 오진율을 말했다기보다 정확한 진단이 힘든 것이므로 그만큼 신중하게 환자의 질병에 접근하고 더욱 정진하라는 의미로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난산 시 조치--

이런 비정상 진행 시 치료는 진행 이상의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진통제를 이용하여 안정을 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촉진제를 사용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흡입 분만이나 제왕절개를 고려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판단은 주기적인 내진을 통하여 자궁 경부를 진찰하여 표에 기록하여 그 경과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가능합니다. 


뜬금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어떤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먼저 질의응답 시간에도 잠깐 소개한 내용으로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라는 책에 있는 내용으로 "왜 새는 알을 낳을까"라는  소제목은 "중에 있는  글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는 여러 가지 면에서 포유류보다 뛰어난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새는 포유류처럼 새끼를 낳지 않고 알을 낳는 것일까? 알을 부화하는 것은 고된 일이다.  둥지는 짓는 일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는 둥지에서 조그만 주둥이를 내밀고 배고프다고 울어대고, 어미는 먹이를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포유류처럼 새끼를 낳아 어미젖으로 키우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품은 사람이 많겠지만, 새끼를 키우는 문제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것은 새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 쪽이다.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야무지게 주위를 둘러보고 삐약삐약 돌아다니는 병아리를 본 적이 있다면 오랜 산고 끝에 힘들게 아이를 낳는 사람의 출산 방식이 그다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단락의 뒷부분에 그 이유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이 나옵니다. 조류는 높은 물질대사로 인해 체온이 40도에서 42도가 되는데 이 정도 온도에서는 새끼가 죽고 말기 때문에 체내에서 새끼를 길러 낳을 수 없고 알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로버트 마틴이 지은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책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봅니다. 

"태생은 두 가지 커다란 이점이 있다. 첫째, 안전하고 온도가 조절되는 동물의 내부에서 자손을 발생시킬 수 있다. 둘째, 자손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어미의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 둥지 안에 알을 낳는 것이 에너지와 자원의 엄청난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태생의 이점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매우 바지런한 조류조차 부화하는 과정에서 알의 온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포식자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가 지적한 난생의 그런 불리함은  남극의 황제펭귄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펭귄은 알이 얼지 않도록 발 위에  알을 올려놓고 먹이를 구하러 가지도 못한 채 오랜 기간 고생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조류가 알을 낳고 포유류가 새끼를 낳는 것은 각각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가장 적절하게 적응한 결과입니다.


조선 시대 미라 중에 태아가 골반에 걸린 채 사망한 임신부의 미라도 발견되었습니다. 즉 난산으로 인해 많은 임신부와 태아가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반증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강한 자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그런 변화에 적응한 생물의 유전 형질은 그대로 후손에 전달되어서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는 짧은 시간에 걸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현대에는 비만이나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심장 질환 등 소위 생활 습관병이라고  불리는 많은 질환들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발생하는 질병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런 생활 습관병은 과거에 비하여 기름진 음식을 먹고 과도한 영양을 섭취하면서도 운동량은 과거에 비하여 대폭 줄어든 것이 원인입니다. 식습관이나 운동량은 변화되었는데 우리 몸은 미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방이 몸에 들어오면 소비하지 않고 쌓아 놓기 급급합니다.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오래전 과거에는 지방을 몸에 쌓아두는 유전자가 생존에 유리했지만 지금은 그 반대입니다. 지방을 쌓아두지 않는 쪽으로 변화가 일어난 개체가 변화에 적응하여 건강하게 살아 남아 후손을 남길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면 지금의 생활 습관병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문제는 그런 적응이 빠른 시간 내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출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비하여 영양이 과잉이다 보니 태어나는 아기들의 평균 체중이 커졌고, 임신부들의 측면에서는 결혼을 늦게 하면서 노산이 많아졌으며 그러면서도 운동량은 부족하여 골반은 점점 좁아지고 유연성이 떨어졌습니다. 그런 변화에 적응하여 쉽게 순산을 하는 체질과 유전자를 타고난 쪽의 사람들이 점점 더 살아남아서 미래 어느 날인가에는 난산하는 임신부들이 아주 적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아주 먼 미래의 일일 것입니다.

그런 적응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에게는 의학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있어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의학의 도움으로 난산과 여러 산과적 위험에 대한 대처를 보다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학의 발전이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의사의 존재 의미입니다. 그러나 의학에만 기대어 환자 혹은 임신부가 기울여할 노력을 게을리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은 임신부들께서도 새겨 들었으면 하는 고사성어입니다.

모든 임신부들의 순산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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