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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Dec 09. 2023

[빚의사] 1.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쩌다 빚이 7억 인 의사가 되었을까

나는  빚이 7억이다.

7억의 빚을 가지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다.

나를 표현해 주는 수식어가 여럿 있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빚과 의사라는 단어 그 둘이다. 어느 순간 그렇게 많은 빚이 쌓였는지  나도 잘 모른다.

돈도 아니고 책도 아니고 하다 못해 낙엽도 아닌 빚을 쌓였다는 좋은 말로  표현하니  너무 뻔뻔하게 볼까 걱정이다. 하지만 나는 빚에 대하여 그리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빚이란 부끄럽다기보다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취미 활동을 위해 사고 싶은 물건을 못 사고 병원을 운영하기 위한 재투자를 어렵게 하고 가고 싶은 곳을 못 가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많은 빚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살면서 돌아갔으면 하고 바라던  후회의 순간이 많았다.

내가 출산을 돕던 진통 산모가 원인 불명의 이유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가 결국 사망하고 말았을 때, 난산으로 태어난 아기가 숨도 쉬지 못하여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로 전원 하였다가 결국 회복 불가능한 장애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일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산모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산부인과 의사를 직업으로 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예 의과대학을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파우스트를 유혹한 악마가 어느 날 내게 나타나서 "인생의 어느 순간으로든  한 번만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겠다. 너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냐?" 하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함 없이 그렇게 대답하겠다.

"한 살 때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벌써 60년도 넘게 산 인생에서 찬란한 삼십 대나 파릇한 십 대도 아니고 한 살로?

그렇다. 나는 한 살로 돌아가고 싶다.

돌이 막 지났을 때, 아직 잘 걷지도 못하고 기어서만 이동할 수 있던 시절. 밥벌이로 바빠서 당시 유일한 자식이던 나를 돌보지 못했던 부모님을 대신해서 할머니가 나를 돌보았다. 할머니께서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나는 툇마루까지 기어갔다가  마침 그 밑 뜸을 들이고 있던  뜨거운 밥솥에 빠졌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는 속담이 있는데 코가 빠졌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얼굴을 빠뜨렸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대신 얼굴에 화상 흉터가 크게 남았다. 3살 때의 일도 기억하는 프랑스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처럼 기억력이 좋아서는 아니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셨을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그렇다.

그때 부모님께서 두 분 다 맞벌이를 하실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렵지 않았다면, 할머니께서 깜빡 졸지 않으셨다면, 사고가 났더라도 이후 제대로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에게는 사진이 별로 없다. 사진을 찍는 목적이 여러 가지겠지만 기쁘거나 행복한 혹은 아름다운 순간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주된 이유 아닐까 싶다. 우리 병원의 직원 중 한 명은 하루 중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특히 길다.  본인 스스로 아마 예쁜 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여하튼  나는 흉이 크게 진 얼굴을 두고두고 남겨서 되새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화상을 입기 전에 찍어서 남은 유일한 사진은 백일 기념사진뿐이다. 그 이후에 인생을 통틀어 내가 남긴 사진은 내 나이 숫자보다도 적다. 평균적으로 일 년에 한 장도 안된다는 이야기다.



삶은 다시 살아 볼 수 없는 편도행 여행이다. 로버트 프루스트뿐 아니라 누구도 이쪽 길로 간 삶과 저쪽 길로 간 삶을 다 경험해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의 그 사고가 없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알 방법은 없다. 다만 그 사고 이후의 삶은 신체 중에서 일부인 얼굴, 그 얼굴에서도  왼쪽 빰 일부에 남은 흉터가 신체 중에서 차지한 비중보다는 훨씬 크고 길게  내 삶에  영향을 주었다. 아마 죽는 날까지 그 흉터를 의식하지 않고 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의사가 된 직접적인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 사고의 탓이다. 학창 시절에 흉터 일부를 제거하는 성형 수술을 대학병원에서 받았다.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해 있으면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수많은 환자들을 보았다. 그때  복도와 병실을 바쁘게 걷던 흰 가운의 의사들 모습은 부러웠고 멋져 보였다. 그런 선망이 무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사명감도 없고 공부 재능도 없는 나를 의과대학으로 이끌었다. 그러니까 내가 7억의 빚을 가진 의사가 된 이유는 한 살 때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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