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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Dec 11. 2023

[빚의사] 2. 삶은 수학도 아니고 로또도 아니다

나는 어쩌다 빚이 7억 인 의사가 되었을까

1+1=2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는 수학 과목에서 제일 처음 배우는 공식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 이 얼마나 엄중하고 아름다운 수식인가? 엄중하다는 의미는 인류가 멸망하고 다른 종이 세상을 지배하는 일이 생기기 전까지 인류가 유지되는 한 영구 불변할 법칙이기 때문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단순하면서 명료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과목 중에 수학을 제일 좋아했고 또한 제일 잘했다. 수학에는 정답이 단 하나뿐이며  과정이 틀리지만 않다면 반드시 정답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이토록 수학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법칙이 우리네 인생에서는  100%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인생은  수학과는 다르다.  정답이 하나가 아니며 과정이 틀리지 않았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수학 법칙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되는 것처럼 조금의 빈틈도 없이 굴러간다면 그 또한 그리 살고 싶은 세상은 아닐 듯하다. 미래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인생처럼 지루한 인생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천 원을 주고 어떤 종이를 하나 샀는 데 그 종이가 어떤 때는 0원의 가치를 가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10억 원의 가치를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0원과 10억 원 사이에는 어떤 규칙도 없다. 규칙이 없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기울여야 할 노력의 차이 또한 없다.  오직 운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로또 이야기다. 만일 세상만사가 이런 방식으로 결정된다면  세상은 로또 공이 돌아가는 추첨판과 다를 것이 없다.  노력에 의하여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애써 땀을 흘릴 바보는 없다.
공산주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에 비하여 결정적으로 다른 점, 그리고 불리한 점은 자신이 기울인 노력과 얻는 결과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며 자기 자신이 들인 노력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처럼 허무한 일이 없다. 군대에서든 감옥에서든 아무 의미 없는 일을 무한히 반복하는 작업이 제일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삶이 로또와 같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전에 우리 병원에서 출산했던 어떤 산모는 순산 모임으로 나를 만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로또를 한 장씩 선물해 주곤 했다. 로또를 선물해 주면서 꼭 1등 당첨되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그분께 받은 로또는 단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지만 걱정해 주시는 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한편  현실적으로 내가 빚을 갚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뿐인가 싶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운이 따라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나는 내 돈으로는 직접 로또를 산 적이 없다. 물론 단 한 번의 예외가 있다. 오래전 개업 초에 어느 날 돼지꿈을 꾸었다. 외래 진료가 끝나자마자 서둘러서 주택복권을 사러 갔다. 주택복권은 요즘의 로또와 비슷한 데 1등 당첨액이 현재 시가로 한 10억 원쯤 되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주택을 한채 살 수 있는 돈이다.  물론 주택복권은 당첨되지 않았고  대신 막내딸을 얻었다.



무언가 승부를 걸어야 한다면 나는 로또 방식보다는 수학 방식에 거는 쪽을 택한다.  둘 중에 한 명만이 통과하는 시험에서 시험 종목을 골라야 하는데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방법과 공부든 운동이든 노력해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경기 방법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경기로 승부를 내는 쪽을 택하고 싶다. 내가 의과대학에 들어가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삶에 대한 나의 그런 철학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 비하여 공부는 비교적 객관적 잣대에 의하여 평가되고 결과를 받을 수 있다. 예능은 솔직히 객관적 기준이라는 것이 애초에 있을 수가 없다. 체능은 타고난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노력에 비하여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 모든 체능의 기본은 달리기다. 그리고 나는 학창 시절 달리기에서 항상 꼴찌였다.  지능을 나타낸다고 하는 아이큐가 나는 100을 조금 넘는 정도로 뛰어난 머리도 아니고 기억력도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능이나 체능에 비하면  공부는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해 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국문학과를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 철학과를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과대학을 나와야 한다. 의사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은 의과대학에 들어가는 일이다.
요즘은 수능이라고 부르는 시험 한 번으로 대학 진학 여부를 판가름하지만 나 때는 예비고사와 본고사로 2번의 시험을 치러야 했다. 예비고사는 지금의 수능시험과 거의 비슷하여 객관식으로 340점이 만점이었고  본고사는 대학교마다 다른 데 보통 국어, 영어, 수학 등의 과목에 대하여 주로 주관식으로 이루어진 시험이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치른 예비고사에서 너무 생각 밖의 낮은 점수를 얻고 말아서 그해 본고사는 치르지 않고 대학 입학을  포기했다. 재수해서 다음 해에 치른 예비고사에서는 300점을 얻었고 서울대 의예과에 지원했던 본고사 시험에서는 최종 점수는 모르지만 내가 가장 자신 있어했던 수학에서는  6문제 중에 반도 아니고 한 문제하고 반만을 맞추었다. 그래서 떨어지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합격했다.  그때 서울대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부모님께 효도다운 효도를 했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운의 덕을 보았다고 생각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것이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운이 나빴던 것인지 혼란스럽다. 떨어졌다면 어쩌면 7억 빚의 의사가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삶은 수학도 아니고 로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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