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빚이 7억 인 의사가 되었을까
내가 의사가 되고 나서 지금까지 들었던 말 중에 제일 기분 좋았던 말은 "선생님 덕분에 순산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다. 반대로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기분 나빴던 말은 "돈이나 밝히는 당신 같은 의사는 의사 하면 안 돼."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감정을 다친 나는 처음 개업하여 5년 동안 잘 운영했던 은평구의 산부인과 의원을 폐원하였다. 그때 내가 불쾌했던 것은 돈을 밝힌다는 지적 때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돈을 밝히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과연 의사로서 적절한 인품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점에 항상 자신이 없었으며 의사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도 끊임없이 고민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의사를 하지 못할 정도의 결격 사유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은 나처럼 멘털이 약한 사람에게는 결코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순산을 돕는 의사다. 또한 최선을 다해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의사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둘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 둘은 서로 배타적 관계가 아니다. 순산도 도우면서 얼마든지 돈을 벌 수도 있다.
이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돈이란 먹고사는 것부터 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수단이다. 돈이 없다면 당장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질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품위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게 된다.
요즘 의과 대학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너도 나도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요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의과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리고 그 이전에도 의과 대학의 인기는 항상 높은 편이었다. 일의 내용으로만 놓고 보면 결코 쉬운 직업이 아닌 의사가 되기 위한 관문인 의과 대학을 지원하는 학생들이 어째서 이렇게 많을까?
의과 대학을 지원하는 이유에 대한 통계 조사는 보지 못했다. 다만 내 주변 동기들의 경우를 보자면 첫째가 경제적 안정 때문이었고 둘째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라는 점이었다. 셋째는 수능 시험으로 얻은 성적에 맞추어서 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친구들이 차지하였고 넷째쯤이나 되어서야 사명감 혹은 직업이 주는 보람 등의 이유로 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첫 번째의 경우였다.
내가 빚을 7억이나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들으시는 분들은 내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라고 오해하시곤 한다. 그러나 나는 돈에 대한 욕심이 많다. 다만 가능하면 법과 원칙에 근거하여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 능력의 한계, 그리고 운이 따라 주지 않은 점으로 인해서 돈을 벌지 못했다. 내가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의과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60세 넘어서까지 빚을 지고 살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은평구에서 처음 개업했을 때 임대한 병원의 옥상에 올라가서 주변에 끝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연립 주택들을 보면서 앞으로 내 인생에 돈으로 힘들 일은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닌 게 아니라 그곳에 개업해 있는 몇 년 동안이 내가 빚이 없던 유일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달콤한 시절은 "돈이나 밝히는 당신 같은 의사는 의사 하면 안 돼."라는 말과 함께 끝났다.
의사든 다른 직업이든 돈을 밝힌다는 사실이 문제는 아니다. 돈을 밝히고 열심히 노력해서 많은 돈을 벌려는 행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끄러운 일도 벌을 받아야 할 죄도 아니다. 다만 정당하게 벌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을 경우 비난을 받는 것은 당연하며 특히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더욱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왕왕 쓰이는 말이지만 의사는 칼 든 도둑놈이라고 한다. 사실 내과 의사는 칼도 들지 않았는데 그렇게 불리면 억울할 것 같다. 그러나 칼을 쓰는 외과 의사나 산부인과 의사라고 해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달갑지는 않다. 의사가 그렇게 불리게 된 이유는 의사에게 검사와 치료비로 많은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강제성, 그리고 과연 그것이 타당한 이유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강제성이 없고 타당성에 대한 의심을 벗겨낼 수 있다면 도둑놈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되겠지만 30년쯤의 개업의 생활을 해 보니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폐업하도록 만든 이름 모르는 어느 보호자에게도 마찬가지지만 그 누구에게도 가슴속에 든 것을 까서 보여 줄 수는 없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