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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Jul 05. 2024

2-4. 흡입분만 중단의 골든 타임

어느 분만 의사의 선택

“진짜 위험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는 바로 그 순간에 온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의사에게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물론 그런 경우를 물은 설문이 있었다고는 듣지 못하였으니 전적으로 내 짐작일 뿐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자신이 치료를 담당하던 환자에게 시한부 선고를 해야 하는 일은 피하고 싶은 순간일 것이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삶을 이어가는 중환자로부터 산소 호흡기를 떼는 순간도 의사로 살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일 것이다.  분만 의사의 경우라면  흡입 분만을 시도하다 더 이상 안되어 포기해야 하는 순간도 힘든 순간이다.

왜냐하면 성공하면 원칙을 지키는 고마운 의사가 되고 감사의 인사를 듣지만 실패하면 비난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항의가 되었든 마음속에만 있는 원망이 되었든 말이다.

약물이나 처치나 수술의 부작용에는 끔찍한 것들이 많다. 그런 부작용을 모두 알고 나면 아마 먹고 싶은 약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받고 싶은 처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단점을 비켜가고자 약품 설명서에 적힌 여러  부작용이 대부분 국민의 시력이 3.0이라는 몽고 사람 아니면 읽기도 어려운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약을 먹고 생긴 부작용은 설명서에 있는 깨알 같은 내용을 미처 읽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료 시술이나 수술의 경우에는 깨알 같이 작은 글씨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담당 의료진이 시술이나 수술에 따르는 부작용을 충실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아주 응급하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수술이든 설명을 하고 난 후 동의를 받아야 시행을 할 수 있다. 특히 위험한 시술이나 수술일 경우 이런 동의 과정이 수술 전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대부분 문서로 동의서를 받으며 불가피한 경우 구두로 동의를 받기도 한다. 시술 혹은 수술 전 설명하는 내용은 통상 시술의 과정, 시술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 위험에 대한 것이다.

흡입기 사용으로 올 수 있는 합병증도 아래처럼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모두를 설명하기 어려울 때는 가장 위험한 부작용 한두 가지를 중심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 임신부 심한 회음부 열상 

• 산후 과다 출혈

• 견갑 난산 (태아 어깨 걸림)

• 아기 뇌성 마비

• 아기 두피 손상  

• 아기 신경 마비  

• 아기 두피 혈종 

• 아기 두개강 내 출혈

• 아기 두개골 골절

• 아기 망막하 출혈 

• 아기 황달


흡입기는 이처럼 수많은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아 사망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의료 영역에서 행해지는 거의 모든 시술이나 수술 동의서의 부작용 란에는 환자의 사망이 들어 있다. 물론 수술로 인하여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는 중증 외상 외과나 흉부외과처럼 일부 진료 과목 외에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흔하지 않더라도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단 1%라도 있고 그것이 치명적 부작용이라면 반드시 설명을 해야 한다.  

태아 사망은 못지않게 심각한 후유증이 아기의 뇌성마비다. 사망이 끔찍한 부작용인 이유는 그것이 되돌릴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이듯 뇌성마비도 되돌릴 수 없는 후유증이다.


흡입분만을 끝낼 수 있는 상황은 딱 두 가지뿐이다. 흡입분만으로 태아가 무사히 출산되었거나 아니면 흡입기로도 질식 분만이 되지 않아 제왕절개로 들어가는  경우다.

그리고 그 둘의 결과는 아주 다른 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질식 분만이 성공했다면 비록 아기 머리 모양이 찌그러지고 두피도 까질 가능성이 높지만 아기에게 본격적 처치가 가능해지고 안전해졌다는 의미다.  제왕절개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기가 아직 위험에서 구출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의미이고  산모는 수술이라고 하는 다른 위험 하나를 더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질식 분만이 성공하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제왕절개 수술로 이어지기 전까지 흡입분만을 시도하는 의사가 내내 고민하는 것은 흡입기를 언제까지 시도할지,  흡입기를 언제 때야 할지 결정하는 일이다. 

물론 교과서에는 흡입기 사용의 중단 시점이 다음처럼 적혀 있다.


• 3번의 연속된 흡입이 실패하였을 때  

• 태아 두피 손상이 있을 때

• 흡입기가 3번 이상 태아 머리에서 떨어졌을 때


물론 이것이 라면을 3분 끓일 것인지 4분 끓일 것인지 결정하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흡입기를 시도하는 의사가 아니라도 잘 알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동일한 객관적 잣대다, 보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는 3분이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는 3분과 똑같은 길이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 두 경우의 실제 시간은 같다. 

또한  3분 정도 끓이면 적당한 라면을 조금 더 끓여서 4분이나 5분이 되었다고 해서 못 먹을 라면이 되지는 않는다.  라면을 3분 정도 끓여서 먹을지 4분 정도 끓여서 먹을지 둘 중에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느라 괴로운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드물 것이다.  

흡입기 분만의 경우 3분은 되고 4분은 되지 않는다 하는 그런 쉬운 기준은 없다. 쓰는 사람의 술기와 적용 압력, 아기 머리가 물렁해진 정도 등을 감안하여 융통성 있게 적당히 활용하면 된다. 그러나 적당히 하라는 말처럼 어려운 요구 사항도 없다. 그것은  내 어머니가 끓여주신 김치찌개가 적당히 간이 잘 되었다고 할 때 들어간 간장의 양과 고추장의 양, 물의 양, 김치 국물의 양을 수치로 계량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흡입기 사용에 대한 교과서적 기준은 사실 일선의 의사에게는 ”태아에게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안전하게 사용하며 절대 무리하지 말 것“이라는  말처럼 뜬 구름 잡는 허황된 말이다.

사실 흡입기 중단의 골든 타임을 책상 앞에서가 아니라 분만대 앞에서 현명하고 냉정하게 판단하고 결정하여 시행할 수 있는 의사가 몇이나 될까 싶다.

골든 타임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지나 상황이 끝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3번째 시도했는 데 성공하였다면 잘한 선택이고 3번째 시도에서도 실패하여 제왕절개 수술을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아기가 회복할 수 없는 장애를 입었다면 그보다 일찍 흡입기 사용을 중단했어야 한다.

과연 이번의 시도에서 흡입분만이 성공할지 어떨지 신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알 수 있을까? 내가 분만 의사로서의 경험이 짧아서 라면 30년 이상 이 분야에 매진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해야 그 순간을 알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까? 내 생각으로는 내가 아무리 오래 분만 의사로서의 경험을 쌓는다고 해도 나는 죽을 때까지 그 골든 타임을 모를 것 같다.  그저 흡입기 사용을 가능하면 자제하려고 노력하고 일단 시도하게 되었다면 나의 그간의 모든 경험을 쏟아부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one more thing).

신께 기도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이 정말 있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설사 있더라도 이 세상의 수많은 위험한 순간을 다 제쳐 두고  지금 순간 나와 산모 태아를 위해 이곳에 임해 줄 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분만 의사를 택하고 출산을 돕는 일을 하면서 나에게 바뀐 것 중에 하나는 기도 하는 순간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세월이 흐르고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기도해야 하는 순간이 더 많아졌다. 어찌 된 일인가?

인공 지능 의사가 실제 의료 현장에서 많이 활용된다고 들었다.  흡입기를 사용해야 하는 산모를 고르는 일, 언제 흡입기를 시도하고 언제 그만둘지를 잘 고를 수 있도록 인공 지능 의사가 돕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그저 지시를 따라 수행하면 되고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그런 때가 와서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내 기도의 횟수도 줄어들기를 바란다. 


아래는 우리 병원에서 사용하는 산모 수첩에 적어둔 흡입분만 동의서다. 동의서에는 위에 적은 합병증 외에 이전 글에서 적은 사용할 수 없는 경우, 위에 적은 중단 시점등을 적어 두었다.  흡입기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어떤 산모가 사용하게 될지 몰라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분만법에 대하여 진통이 오고 나서 갑자기 설명을 듣고 결정하기보다 사전이 미리 충분히 생각해 두라는 의미에서 넣어 두었다.  그러나 산전 진찰 동안에 그 부분을  꼼꼼하게 읽는 산모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자신은 그런 위험한 분만법을 앞에 놓고 선택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산모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내 경험을 놓고 보면 위험은 위험한 상황 자체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 조차를 인지하지 못할 때 온다. 그러므로 출산 순간은 위험할 수 있으며 흡입분만도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데서부터 안전이 온다. 인생이 고해라고 생각하는데서 행복이 오듯 말이다.


흡입 분만 동의서


흡입 분만의 위험성에 대하여 담당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들었으며 위험성과 후유증에 대하여 이해하고 필요시 흡입기의 사용을 요청합니다.


일자: 

보호자 이름: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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