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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 블루 Apr 06. 2024

순간의 영원(7)

 좋아하는 것들이 생각나지 않는 아침이 있다. 눈을 떴을 때 내가 좋아하던 순간들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하루를 시작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이라고 해서 좋지 않은 건 아니다. 이런 날에는 이런 날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최근에 일을 하는 곳의 대표님과 했던 말인데 쉴 때는 확실히 쉬어주는 게 필요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는 꼭 필요하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비우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연히 연락을 나누던 친구가 행복하라는 카톡을 보낼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행복을 너무 멀리 보는 게 아닐까?


거창한 의미가 없더라도 하루는 가치가 있다. 이를 테면 좋아하는 가게에서 생각 없이 시킨 메뉴가 맛있을 때, 그리고 다 아는 맛이라고 생각해도 입에 들어가는 순간 탄수화물이 터질 때,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도 침대 위에서 휴식을 취할 때, 예전에 즐겨 들었던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듣지 않던 노래들을 들을 때 조금만 나열해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들은 이렇게 많은데 이것이 행복의 가장 작은 단위는 아니었을까? 물론 나는 좋아하는 순간에 대해 글을 적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글들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감사한 사람으로 매 순간마다 좋아하는 이유를 적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굳이 좋아하려고 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매일이란 가장 평범하면서 또 특별한 날이 될 수 있다고.


매일 보던 웹툰을 어느 순간부터 놓치기 시작했던 날, 개운치 못한 아침의 시작점으로는 밀린 이야기를 읽으면서 굴러가지 않는 생각을 굴리지 않는다. 해야 하는 일들이 쌓여 있어도 조금 덜 신경을 쓰며 하루를 보내보는 날도 지나가고 나면 변하지 않을 순간으로 남고는 한다. 똑같은 것 같아도 사실은 다른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건 어쩌면 관점의 차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멍 때리거나 의미 없는 하루가 될 수도 있고 매일 똑같고 지루한 일상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 어제와는 다른 요소들이 분명히 있고 이것을 가다듬고 정리하면서 이 순간들에 쌓인 먼지를 닦을 수도 있겠다 싶어지면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서툴기만 한 날들이 쌓이면서 서툴지 않은 나이를 먹어가는 기분이 꼭 새로 오는 봄을 닮았다. 노력이라거나 행복이라거나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의 노래를 고른다. 오늘의 노래는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오늘의 쉬는 시간을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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