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을 여행하기 위해서 텔아비브 공항으로 이동했다. 새로 신설된 고속열차를 타고 20여 분 만에 예루살렘 중앙기차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갈아타고 바로 가야(Gaya)네 집으로 간다. 가야는 신성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나고 자란 이스라엘인이다. 그는 나의 친한 친구의 짝지이며, 작년 이곳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다시 한번 만나며 좋은 친구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걷기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집에서 며칠간 지내며 준비를 하기로 했다. 대학에서 움직임과 춤을 공부하고 있는 그는 공연준비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가야와 그의 가족들은 우리를 한껏 환대해 주었다. 여동생과 두 명의 남동생을 둔 사 남매이다. 언제나 그들의 가족들을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 웃음을 주었다. 우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느라 바쁘고, 대답하고 있노라면 다 대답하기도 전에 다른 질문이 쏟아졌다. 가족들은 또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눈다. 그렇게 저녁시간은 금방 지나가곤 했다.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많은 이스라엘인들의 집들이 그렇듯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곳이다. 두꺼운 벽으로 지어진 아치형의 아름다운 지붕이 있는 1층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그대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그 위에 2층이 추가로 지어졌고, 여러 사람들을 거쳐서 가야네에게 왔다고 한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가야 가족과 그 집에는 자신의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슬픈 기억이 잠들어 있었다. 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 내내 이곳의 원래 주인이었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었을 어떤 가족. 그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을 알까? 알고 있다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편안하고 따뜻한 가야 가족들의 환대에 대한 고마움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낸 곳에서 묵는다는 불편함이 교차했다.
가야와 나는 예루살렘의 아름다운 길들을 걸으며 그의 삶에 대해서, 우리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곧 오랫동안 꿈꾸었던 생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다녀온다고 했다. 그날은 금요일 유대교의 안식일인 샤밧이었다. 그가 모임에 가있는 동안 나와 로비는 동쪽 예루살렘에 다녀오기로 했다. 전통적으로 샤밧에는 금요일 저녁 해가 지고 다음날 저녁 해가 질 때까지 일을 하거나 이동하는 것이 금기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대중교통은 운행을 중단한다. 오후 2시 이후에는 차가 없으면 이동할 수 없으니 꼭 이전에 돌아오라는 당부를 하며 그는 모임을 하러 텔아비브로 떠났다. (동예루살렘의 이야기는 #2에서 계속)
들뜬 모습으로 돌아온 가야와 그 짝지는 생태공동체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해주었다. 오랜 기간 동안 생태공동체를 준비하며 모임을 가져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함께 공부하며 준비하던 와중에 정부에서 무료로 공간을 제공하고, 시설비만 내면 지낼 수 있다고 했다. 처음으로 희망을 느꼈다는 그들은 앞으로 살게 될 날들을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뻐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왜냐면 정부가 제공한다는 땅은 이스라엘의 북동쪽 끝에 있는 골란고원, 67년 시리아로부터 땅, 그 뒤로 서안과 함께 논란이 되고 있는 영토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곳에서 생태공동체를 짓고 산다는 것은 유대정착민(1)이 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족들은 골란고원과 서안이 같은가 아닌가를 두고 또 옥신각신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에게도 서안 정착민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이 있다. 새틀러만큼은 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그런 다짐들은 현실의 장벽 앞에서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새틀러가 되는 것은 강력한 신념이나 믿음으로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어떤 이유로 밀려나서 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당사자의 상황을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보태기 조심스러웠다. 곧 우리는 샤밧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이웃 미라(Mira)를 만나게 되었다.
미라는 전직 변호사였다고 한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미라는 역사의 산 증인이다. 우리는 미라에게 서안과 골란고원이 같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전쟁 이후 서안 해방을 줄곧 주장해 왔는데, 그러지 못해 지금까지 오게 되어 속상하다며 그는 열변을 토한다.
- 서안이든 골란은 똑같아. 다시 돌려줘야 해. 서안에 계속 정착촌을 짓는다고 30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다 쫓아낼 수 있을 것 같아?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나라가 되어야 해. 무슬림과 유대인은 같은 나라에서 살 수 없어. 지금 군사 점령을 지속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어렵게 할 뿐이야. 그러니 얼른 줘버려야 한다고.
- 어디로 주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물었다.
- 어디긴, 하늘에다 주는 거지!
하늘에다가 준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주인들에게 돌려주는 것도 아니고. 더 묻고 싶었지만 대화는 일단락 되었고 우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나는 가야에게 그의 삶에 대해서 물었다. 그리고 가까운 외국인 친구들이 이렇게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그는 이야기에는 오랜 시간 동안 숙고한 고민들이 쌓여있는 듯했다.
- 당연히 친구들이 팔레스타인에 관심이 가는 걸 이해할 수 있어. 나도 너무나 궁금하고 관심이 가는 걸.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서안지구에도 친구들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어. 서안에 아주 가깝고 소중한 팔레스타인 친구들도 있지. 이 땅에 있는 다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나의 삶이 가지고 있는 특권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었어. 누군가는 무슬림들이 고통받더라도 그건 그들의 일이니까 무시하라고 했어.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어.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으니까. 같은 사람이니까. 그들의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해 한때 평화 시위와 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기도 했었어.
- 그렇게 운동에 참여하다가 이스라엘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어?
나는 물었다.
- 응 많이 있어. 나도 이스라엘 밖에서 살 수 있다면 그게 나을 거야라는 생각도 해봤어. 독일인 짝지도 있고. 어떻게 보면 나가서 사는 게 마음은 더 평화로울 것 같았거든. 특권 속에서 살아간다고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도 이야기가 있어. 나조차도 며칠 전까지 가족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러 가던 식당이 하루아침에 폭파되어 있기도 하고, 이웃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버스가 테러당하기도 했어. 어떤 사람들은 말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없다고. 그렇지만 내 집은 여기 이스라엘인 걸. 나는 여기 이스라엘 인으로 존재하고 있는 걸? 없다고 말하면, 나는 도대체 누구고 어디에서 온 걸까? 이곳에는 이렇게 두 개의 정반대 되는 이야기가 있어. 절대 만날 수 없는 두 이야기. 아무리 활동을 해도 그 거리는 멀어져만 가더라고. 어느 순간 애쓰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방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간 여성과 움직임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만났고, 내가 나눌 수 있을 만큼 배우기 위해서 지금은 공부에 집중하는 중이야. 가끔은 충분히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기도 해. 하지만 이제는 떠나려는 생각은 안 해, 여기 나의 고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 나도 그 마음 조금 알 것 같아. 나의 뿌리와 연결되고 싶은 느낌.
- 만약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 거면 이젠 심지어 정착민이 되어야 하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이스라엘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살 곳이 필요한데,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길은 이 방법 말고는 딱히 보이지 않아. 물가와 땅값이 비싸서 우리 힘으로 살 곳을 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우리는 이야기를 접기가 쉽지 않았다. 이 분쟁과 갈등이 일상이 된 삶 안에서 다르게 살아보고자 했지만, 그게 쉽지만을 않았을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생태 학살, 축산동물 학살, 이주민들의 죽음을 방치하고 조장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중산층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도 가야에게 있는 것 만큼이나 비슷한 모순이 있다. 나의 삶이 만들어내고 있는 거대한 폭력을 알면서도 때로는 모르는 척 필요하지도 않은데 자동차를 타고, 쇼핑을 하고, 막대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일상을 유지한다. 싸울 수 있을때 멈추기도 하고. 그런 내가 가야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판단과 비난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깊어가는 대화에서 점점 생각이 많아진다.
곧 여행을 시작하는 나에게 가야는 언제 무슨 도움이 필요하든 연락하라고 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시간이 나면 우리가 있는 곳에서 함께 걷고 싶다고 했다. 지쳐서 아니면 지치지 않아도 문득 돌아오고 싶어지면 여기 예루살렘의 집이 있다며 환영이라고 말해주었다. 가야를 만날 수 있어서 참 고마웠다. 가야의 이야기는 겸손하면서도 솔직했다.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야가 생각하는 평화가 부디 펼쳐질 수 있기를, 정착민이 되지 않고도 그가 오랜 시간 동안 꿈꾸었던 공간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랬다.
1. 정착민, 세틀러라고도 부른다.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지구의 땅을 불법으로 점령하여 유대인들을 정착시키는 일을 오랫동안 진행해오고 있다. 정착촌에 군인들을 배치하고 지원정책을 실시하여 더 많은 정착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점점 커져가는 정착촌들 때문에 서안의 독립은 힘들어져가고 정착민들과 팔레스타인인들과의 갈등은 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