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홀리시티, 예루살렘

by 샴스 Shams


사람들은 예루살렘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상상을 할까? 신성한 도시. 성지순례, 십자군.. 혹은 노란색 모스크일까? 나에게는 좀 다르다. 처음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총을 둔 군인이었다. 그 뒤로 한 종교 교주의 기도를 듣고 줄줄이 쓰러지는 동양인들..... 그리고 아르메니안 교회의 남자 사제들의 웅장한 노래와 강렬한 색색의 전등을 만났다. 그 다음으로는 털달린 둥근 모자를 쓰고 양복을 입은채 자전거를 타는 정통파 유대교인들도. 하나만 봐도 낯설고 신기할만한 관경을 하루 이틀사이에 하고는 두통이 시작되었다. 강렬한 예술품이 많이 있는 박물관에 가면 종종 나타나곤 하는 두통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예루살렘이 어떤 곳이냐고 물으면, 한번은 예루살렘은 기이한 기운을 가진 예술품이 잔뜩 있는 박물관 같은 곳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저 도시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두통에 시달릴 수 있다니. 그랬던 곳은 전 세계의 여러 도시를 가보진 않았지만 바라나시 이후 두번째다. 두곳 모두 홀리시티로 알려진 곳들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그렇게만 소개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두번째 세번째 묻는 질문들에 분명히 멈칫할것이 분명하다. 머리를 긁적이며 도대체 이곳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겠지. 그 예루살렘에 다시 왔다. 올드시티는 두통을 유발함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동예루살렘에 가기로 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를 표방하는데, 때문에 전세계의 유대인들의 방문을 환영한다. 유대인이라면 시민권을 갖는것이 아주 쉽다고 한다. 더 많은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알리고, 돌아올 수 있는 나라를 알려주기 위해서 ‘Birthright’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고향땅으로 돌아올 수 있는 권리라니 뜻인데, 유대인 젊은이들에게 2주간 이스라엘 투어와 이스라엘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다. 전세계 어디에있던 이스라엘로 오는 비행기 티켓과 프로그램 비용이 전부 지원된다. 이곳을 고향으로 수백년동안 살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피난 후 다시 돌아와 사는 것은 커녕 방문조차 불가능 한 것과 무척이나 대비된다. 많은 비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이 권리 아닌 권리를 의식적으로 거부하기도하고, 그저 공짜 해외여행 기회로 사용하기도한다. 다양한 단체들이 Birth right을 주관하고 있어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대부분 시오니즘을 옹호하는 교육들이 주로 이루어진다. 'All that's left’라는 시민단체는 이 Birthright 반대되는 Birthleft라는(right 이라는 뜻은 권리이기도 하지만 오른쪽이라는 뜻이기도하다. 오른쪽의 반대는 왼쪽 left! 일종의 말장난이다.) 여행를 기획하여 다른 측면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주로 북미 유대인들을 위해서 프로그램들이 기획되지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 프로그램의 동예루살렘 투어를 함께 하기로 했다.


유대인들이 주로 많이 살고있는 서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있는 동예루살렘. 서예루살렘에서 조금 걷다보면 어느샌가 동예루살렘에 도착한다. 물리적인 단절이 없이 연결되어있는 두 곳. 얼핏보면 조금 분위기가 다른 이웃 정도랄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예루살렘 주민들의 삶은 철저하게 단절되어있으며, 무지막지하게 달랐다. 오늘 Birthleft 투어에서 우리를 이끌어줄 아흐메드는 동예루살렘 주민이다. 이웃들이 사는 동네로 이끌어주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는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을 다녔어요. 그리고 7년째 되는 해에 선택해야했어요. 동예루살렘 주민들은 살던 곳을 떠난지 7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빼앗겨요. 이대로 영국에서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건지, 아니면 돌아갈 것인지 선택해야했지요. 저는 돌아오는 것을 선택했어요. 저는 동예루살렘 주민입니다. 지금 여기 보이는 이 집들은 유대인들이 살고있어요.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이였죠. 1948년에 일어난 나크바 이후로, 전쟁을 피해서 사람들은 피난을 갔어요. 그러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집이 부서져있거나 빼앗겨있었어요. 그런 집들은 유대인들은 부수고 다시 짓거나 덧짓거나 했어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을 사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일이에요. 특별히 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집을살려면 이웃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허가를 받아야해요. 물론 반대의 경우에는 허가 따윈 필요없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평생 집을 빌려서 살 수 밖에 없는거에요.


P1230215.JPG?type=w1 <강탈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확장하기 위해서 공사중인 모습. 예루살렘 여기저기서 이런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P1230221.JPG?type=w1 <아랍어로 그래피티가 되어있는 동 예루살렘 주민들의 집의 모습>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동예루살렘에 사는 이웃들은 자신들이 존재를 알리기위해서 집 앞에 그림을 그리거나 간판을 내걸었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걸기도 했다는데,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스라엘에서 국기를 걸지 못하게 막기때문이다. 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 언덕배기에 멈추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모두 멍 하니 바라만 보았다. 사진을 찍기도하고. 아흐메드가 묻는다.


- 이 풍경에서 무언가 다른게 보이는 사람?

- 아름답네요. 그런데 벽이요. 벽이 보여요

P1230217.JPG?type=w1 <언덕너머에는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가르는 벽이 있다>


- 네. 2003년에 동예루살렘과 서안을 가로지르는 벽이 세워졌어요. 이 벽은 예루살렘 주민들로 하여금 서안과 연결되는 것을 어렵게 하기도 했지만, 서안내에서의 이동조차 힘들어지게 했어요. 예를들면 라말라에서 베틀라함까지 가려면 예루살렘을 거쳐가면 더 빠르지요. 하지만 그게 불가능해진거에요. 예전에는 10분이면 가는 길을 1시간 반이 걸려서 가게되었어요.


아흐메드는 무려 다섯가지나 되는 다른 국적/소속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둘째, 서안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셋째,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넷째, 가자지구에 살고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세곳이 아닌 다른 곳, 이를테면 레바논이나 요르단, 시리아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쫒겨나 가자지구로 온 난민들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스라엘에 살고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에 남아있게 된 사람들이다. 이스라엘 여권과 시민권을 가지고있으며, 투표권도 가지고 있다. 서안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원래 서안에 살고 있거나, 전쟁 후 서안으로 오게 된 난민들이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여권이 있으며, 팔레스타인 정부에 투표가 가능하다. 그런데,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들 모두와도 달랐다. 전쟁 이후에 무인지대(No man’s land)가 되기도 한 이곳의 주민들은 팔레스타인 시민권도, 이스라엘 시민권도 없다. 그 어떤 자치 기구도 없고, 리더도 없다. 그들이 출국을 하고 싶으면 요르단 임시 거주 확인증이 나온다. 그 종이로 여권을 대신한단다. 도대체 이땅은 무엇인가? 한쪽에는 이스라엘이라고 흔히 불리는 서예루살렘을, 다른 한쪽에는 서안지구를 장벽을 하나 두고 맞닿아있는데 저 멀리 있는 요르단 임시 거주 확인증이 나온다니? 이스라엘 정부는 동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세금도 빼먹지 않고 톡톡히 거둬들이고 있데다가, 대부분의 땅 또한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엉망진창인 일이 세상 한편에서 일어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무지막지한 이야기를 아흐메드는 담담하게 할 뿐이었다. 그가 걷다가 한 마을에 멈춰섰다.


- 여기는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살았던 유대인들의 마을이에요. 그리고 여기 보이는 이곳은 유대인들의 공동묘지이지요. 이들은 여기서 아주 오랫동안 살았어요. 하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죠. 그러나 우리는 우리 마을을 부수고 사람들을 쫒아내고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P1230226.JPG?type=w1 <예루살렘 유대인구역 주민들의 공동묘지>

바로 그 공동묘지가있는 곳 옆에서는 동예루살렘에 있는 명소이자 성지인데 이스라엘 주민들이 아랍 이웃들을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케이블카를 건설하겠다며 한창 공사중이였다. 아랍사람들을 마을에서 쫒아낸 단체가 운영하는 카페를 잇는 곳인데, 그 공사는 아랍인들이 삽을 들고 땅을 파고 벽돌을 옮기며 하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그들은 무슨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슬플까? 고통스러울까? 아니면 그저 덤덤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리가 지나가자 하던 삽질을 멈추고 빤히 바라보는 눈빛은 경계인지 원망인지 아니면 분노인지 모를 눈을 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보면서 이렇게 투어에 참여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들의 심경을 털끗도 이해할 수 없으니, 그저 먹먹한 감정이 올라온다.


우리는 조금 더 내려가서 동예루살렘의 한 마을인 실라완 마을의 풍경이 보이는 곳까지 갔다. 실라완의 풍경은 서쪽 예루살렘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색색깔의 빨래가 널려있고, 각각의 모양을 한 하얀집들이 즐비해있었다. 그 너머로 금색으로 빛나는 모스크가 보인다. 다른 듯 비슷한 듯 다른 그런 이웃 동네를 만날 수 있었다. 그저 20분 걸었을 뿐인데….

P1230230.JPG?type=w1 <실라완 마을의 전경>

우리는 몇일 뒤 아흐메드가 운영하는 책방에 방문할 수 있었다. 여전히 서예루살렘에서 동예루살렘으로 넘어가는 것은 잠깐 깜빡하는 사이 금방 일어난다. 어느순간 버스의 창문 밖 풍경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챙이 긴 모자를 쓴, 구렛나루에 컬이 잔뜩 들어간 사람들은 사라지고, 아이의 손을 잡고 차도르를 쓴 무슬림 여성들 걷고 있다. 간판들은 히브리어에서 아랍어도 바뀌어져있다. 석류 쥬스를 짜는 가게들이 곧곧에 보이기 시작한다. 쿠나페를 파는 가게들도. 우리는 미처 맞은편 카페겸 책방을 보지 못하고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아흐메드는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인사해주었다.


- 형제 자매여! 잘왔어. 찾아와주어 고마워. 지금은 손님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겠어?

나는 때마침 문구점에서 필요한 물건들이 있어 아흐메드의 가게를 샅샅이 살피며 필요한 물건들을 골랐다. 여행중에 떨어트려 고장난 팬을 대신할 파인라이너 하나와, 히치하이킹할때 쓸 마커, 그리고 지도 보는 방법을 익히고 싶다는 로비를 위해서 지도 하나를 골랐다. 다른 손님들의 계산을 마친 아흐메드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 그래 서안지구에 간다고? 정말 잘생각했어, 내가 추천해주는 곳은 말이야…

아흐메드는 서안의 여러 지역과 가볼만한 곳들을 추전해 주었다. 우리는 서안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존중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지지해 줄 수 있는지. 서안에 방문객으로 가는 그들이 삶에 방해가 되지않는지 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방문하는것 이 정말로 팔레스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 아니면 우리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더 나은지 물었다. 아흐메드는 서안은 정말 아름답고, 정말 좋을거라고. 그곳 사람들은 방문객들에 익숙하다며 걱정 말라며 이야기 해주었다.


- 가봐야해. 가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온갖 걱정들을 안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던 나로서는, 아흐메드의 이 말은 여행내내 붙잡고 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드디어 서안에 갈 용기가 생긴다. 맞은편 책방에 꼭 가보라는 당부를 했기에 맞은편 책가게로 갔다. 팔레스타인에 관한 책들, 활동가들의 이야기들이 담긴 책들, 아랍사람들의 아름다운 글들이 담긴 시집, 팔레스타인 요리책까지 정말이지 갖고싶고 읽고싶은 책들이 가득했다. 아마 여기서 일주일간 지내라도 지낼 수 있겠지! 2층에는 아늑한 카페도 있었다. 시간을 넉넉히 보내고 싶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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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30246.JPG?type=w580 <흥미로워 보이는 책들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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