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하이파, 다시 만난 아부나셀

by 샴스 Shams


아코에서 보낸 이틀은, 비가 많이 내리고 태풍이 불었다. 올드타운에서 쿠나페를 먹고 들어오고 다음날은 비가 많이 와서 나가지 못했다. 창밖으로 내리 꽂히는 천둥번개가 걷기도 이동하기도 힘들게 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하염없이 글을 적거나 읽거나 했다. 다음날 맑게 갠 하늘 아래 하이파로 이동했다. 하이파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금색으로 빛나는 바하이 사원이다. 하이파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참으로 압도적인 모습으로 하이파 전체를 아우른다. 바하이교라는 것도 처음 들어본 나로서는 충분히 관심 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정작 하이파 주민들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란에서 시작되었다는 바하이교는 남녀평등, 세계평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등 진보적이고 세련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에 몇 개 안 되는 사원 중 하이파 사원은 바하이교의 교주가 잠들어 있는 아주 중요한 성지라고 한다. 이곳 주변에서 만난 외국인들 역시 바하이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언덕 높은 곳에서 바닷가 쪽으로 길쭉하게 이어진 바하이 사원과 정원은 가파른 계단과 언덕을 오르고 또 올라야 들어갈 수 있다. 일반인이 갈 수 있는 구역은 제한되어 있었으며, 정오가 넘어버린 탓에 사원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하이파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뭐 사원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때. 인근 공원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P1230395.JPG?type=w580 <바하이 가든에서 보이는 하이파의 전경.>

우리는 이크리트의 아부나셀을 연락해 만나기로 했다. 이크리트 마을을 떠나야 했던 1948년 그는 10살이었다고 한다. 그날이 70년 전이니 아부나셀은 여든 살일 텐데, 참 정정하셨다. 차를 몰로 우리를 데리러 오고, 가족들을 위해서 장을 보고 요리를 했다. 집 탁자 위에 올려진 책은 제국주의와 문화에 대한 책이라고 한다. 아부나셀이 주는 과일, 차, 빵, 커피.. 끊이지 않는 손님상을 차례로 받으며 이크리트에 대해서, 그가 읽는 책에 대해서, 그와 우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문득 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포클레인이 며칠 전 우리가 서있었던 이크리트의 십자가 앞에서 무언가를 부수고 있었다.


- 6개월 전의 모습이에요. 이스라엘 정부는 돌 두 개만 쌓아놔도 무언가 짓나 보다 하고 와서 다 부셔요. 꽃을 심어놔도 나무를 심어놔도 다 부숴버려요.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또다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왜 부수어져야만 하나. 아무것도 없는 평화로운 마을 주민들의 삶은 왜 부수어져야만 하는 걸까. 아무런 힘없는 사람들인데, 돌 두 개 조차 용납하지 않는 이스라엘 정부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이크리트 사람들... 그들에게는 포클레인으로 부수고 또 부수어도 절대 부서질 수 없는 강인함이 있다, 아니 부수고 또 부수기 때문에 강인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의 삶이 나의 가슴을 울렸다.


- 500여 명의 이크리트 사람들은 각지로 흩어져 지금은 1,500여 명이에요. 다들 흩어져서 지내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이크리트를 사랑해요. 이크리트에서 깔깔 웃는 아부나미를 만약 하이파에서 만난다면 정말 다를지도 몰라요. 하나도 웃지 않을 거예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이크리트에 있을 때와 하이파의 있을 때의 나의 삶은 참 달라요.


나도 느꼈다. 이크리트의 아부나셀은 무척이나 평화롭고 고요했는데 하이파에 만난 아부나셀은 어딘지 조급하고 답답해 보였다. 여전히 따듯했지만 조금 다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물었다.


- 이크리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 슬프고 화가 많이 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이라는 시간 동안 싸울 수 있는 이크리트 사람들은 정말 희망적이고 인상적이에요. 이크리트 사람들이 그 땅과 가지고 있는 연결은 정말 특별해요. 나는 그렇게까지 강한 연결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이크리트 마을 사람들이 가진 힘이 신기하고, 궁금해요.


그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 아부나셀, 저는 정말로 아부나셀이 나중에 이크리트에 집을 지어서 자식들과 손주들과 함께 사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 나중에 손주들의 손주들까지 이크리트에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집을 짓는다든지 무슨 도움이 필요하면 꼭 이야기해 줘요. 꼭 보러 오고 싶어요.

-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힘들 거예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또 슬퍼졌다. 정말로, 정말로 아부나셀이 살아있는 동안 그가 수백 번 수천 번 찾아가 책을 읽고 시간을 보내는 바로 그 땅에, 아름다운 집이 지어져 그의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 아부나셀의 진짜 이름, 한나는 무슨 뜻을 가지고 있어요?

-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날 수가 없어서 너무나 만나고 싶고 보고 싶다는 뜻이에요. 내가 내 아내를 너무나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아부나셀은 아내의 사진이 걸려있는 액자를 올려다보았다. 아름답고 강인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리움'이라는 뜻의 그의 이름은, 아내를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평생을 보낸 그의 삶과 닿아있다.


- 아부나셀. 이제 우리는 가보려고요. 오늘 가르멜 산에서 지낼 거예요.

- 좋아요. 가까운 곳까지 데려다 줄게요.


우리를 태운 아부나셀의 차는 하이파 전경이 보이는 곳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저 멀리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부나셀은 이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보이는 풍경을 아부나셀이 설명해 주었다.


- 저기는 아카이고, 저기는 레바논이에요. 그리고 저기는........이크리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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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아도 이크리트를 빼놓지 않는 그런 한결같은 아부나셀이 너무 좋고 재미있다. 그의 모든 행동과 말을 이크리트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크리트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아부나셀은 다시 우리를 태웠다. 그날은 샤밧(1)이라 길이 많이 막히는 바람에 10분 거리가 30분이 되고 말았지만 그는 우리를 기어코 하이파대학까지 데려다주었다. 여기는 카르멜산의 중턱, 하이킹 입구가 시작하는 곳이었다. 나는 아부나셀에게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선물을 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아부나셀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또 만나고 싶어요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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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샤밧. 유대인들의 안식일. 금요일 해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계속된다. 전통적으로는 이 시간 동안에는 운전을 하거나 전자기기를 만지는 것이 금기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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