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하려는 시도와 변명하려는 시도들
우진은 분명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약한 몸을 가지고 자라면서 일찍이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회의와 고통을 느끼고 비인가 대안학교로 진학했다. 입학할 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곧 내가 바라는 배움의 흔적을 남기지 못할 입시를 치르지 않겠다고 결정하게 되었고, 대안적인 삶을 살겠다며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살고 싶은 삶, 자연과 함께하는 삶,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 변화를 만드는 삶을 쫓아다니면서 공동체를 꾸리기도 하고, 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수업을 하기도 하고, 수업을 듣기도 하고, 여러 곳을 여행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틀에 내가 끼워 맞춰질 수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게 되어버린 덕분에, 다르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다. 우진이 5수를 하고, 수도권 대학에 입학했다 자퇴하고,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의 20대는 내게 그런 시간이었다.
시스 헤테로 남성인 우진의 증명을 위한 번따를 시스 헤테로 여성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분명하다. 종교는 없고, 커가며 성 엄숙주의는 거리가 멀어지며 충분히 사람을 만나고 약간은 발랑 까진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더더욱 진솔한 사랑을 바라며 번따를 하고 있는 우진이 약간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진을 통해 책에서 등장하는 2-30대 남성들의 주요 관심사인 주식, 코딩, 성공, 가정…. 이런 단어들도 분명히 낯설다.
아, 그런데 분명한 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진과 어떤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노력과 성취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 알면서도 일종의 ‘실패’했다는 감각, 그리고 그 속에서 찾아오는 자괴감은 우진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내게도 생생했다. 대안적인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종종, 아니 자주 실패했고, 그때마다 내가 가려는 길을 의심하곤 해야 했다. 통장에 한 푼 없어도 친구들이 있어서 괜찮아….라고 느낄 만큼 든든했던 주변 이들과 불화를 겪고 나니 그나마 가지고 있던 한 줌의 자신감마저 사그라들었다. 어쩌면 최근 유난히 자주 느끼는 언제 죽어도 상관없을 것만 같은 기분을 우진은 ‘폭탄 목걸이’라고 표현한 건 아닐까.
우진과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 친 이 시대의 젊은 인간존재들이다. 도저히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없고, 지워지고, 밀려나니까. 그래서 세차게 버둥거렸는데, 버둥거릴수록, 그러니까 노력할수록 더 심한 늪으로 빠져버리는 것 같은 이 세상은 우리를 막다른 길로 내몰았다. 하루에 40명이 죽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와 우진의 삶이기도 하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의 삶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실패에 대한 관념을 철저하게 내면화해 버린 나머지, “그렇지 않아, 않을 수도 있어”라는 모든 따뜻한 말들은 속절없이 튕겨 나간다. 그게 얼마나 쉬운지는 나도 따뜻한 말을 해보는 입장, 들어보는 입장 모두에 있어 봤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말은 너무 쉽고, 세상이 조여 오는 속도는 너무 빠르고, 폭력과 혐오는 너무 견고하다.
도저히 설득할 수 없는 우진을 두고 희제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어쩌면 우진을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마지막 시간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우진의 옷 끄트머리를 붙잡으며 죽지 말라고 말하려 한다. 그리고, 혹여나 그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그가 혼자라 느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사회적이고 또 개인적인 죽음을 추적해 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중에 우진이 살기로 했고, 그건 어쩌면 이 책 때문은 아니고 어느 누군가의 상투적인 말 때문이라고 -페이스북을 통해-했지만,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이 관계-우정이 어쩌면 폭탄 목걸이를 해제할 수 있는 키는 아닐까 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조금은 설득된 것 같다. 적어도 그들의 관계성은 우진과 나라는 두 이물질을 섞어주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희제는 때로는 우진을 질책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안아주고 싶어 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혹시 우진을 대상화하고 있진 않은지, 우진의 삶을 납작하게 나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의 삶에 대해서 멋대로 지껄이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해서 검열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말들의 말을 지우거나 멈추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대목에서 그들이 ‘친구’라고 생각했다. ‘이 말이 너에게 상처일지언정, 그래서 우리가 싸우게 될지언정 나는 너에게 진솔할 거야. 그리고 그마만큼 너의 답변 또한 진솔하게 경청하기 위해 노력할 거야.’라는 희제의 태도 앞에서 우진은, ‘나는 너의 말들이 불편하고 또 동의하기도, 동의하지 않기도 해. 그렇지만 너의 해석을 존중할 거야’라는 태도를 보여준다. (*주의* 이것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감각이고, 책에서 인용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것을 보며 타자를 만나는 방식을 배운다. 내가 단편적으로 들었다면 한껏 오해하고 혐오감만 남긴 채 “응 다음 한남~”하고 넘겨버렸을지도 모르는 우진의 이야기를 나는 정성스레 읽게 되었고, 진심으로 걱정하고, 이해하고, 동감했다. 우진이 행복하길 바랐고, 살아가길 바랐고,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화가 났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우진은 닮은 사람이고,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로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타인에게 얼마나 진솔했는가. 그리고 나는 타자로 여겨지는 이들과 얼마나 친구가 되고자 했는가? 얼마만큼 타자를 존중할 수 있고, 침범할 수 있는가? 그리고 타자에 대한 질문은 나라는 존재로 돌아온다. 나라는 가장 가까운 타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을 지니고 있는 -살고 싶지만 죽고 싶은- 나라는 이물질에 대해서 말이다. 희제가 우진을 만나는 것으로 우진이 살 수 있을지는 정말 조금도 알 수 없지만, 우진이 우진을 만나는 건 조금 다를 지도 모른다. 도저히 만나기 힘든 나라는 존재를 만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진을 연민하는 만큼이나 나를 연민하고, 우진을 만난 만큼이나 나를 만나고, 우진을 이해한 만큼 나를 이해할 수 있는가?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죽고 싶어 하는 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판단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질책하는지만 때로는 알아주면서 그 시간을 함께 견딜 수 있는가.
“비웃지 말고, 탄식하지 말고, 조롱하지도 말고, 그저 이해하라” 최근에 누군가 스피노자가 했다던 말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말은 오랫동안 내게 남았다. 우진이 목숨을 걸어가며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시도에 희제는 죽지 않고 다른 길을 상상할 수 있다며 변명을 이어가고, 네가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제의 증명들에 우진은 그의 삶의 경로에 대해서 빠질 수 없는 이유를 대며 변명해 나간다. 증명도 변명도 필요 없다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살아남는 방법을 모르고, 모를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시도들은 계속될 것이고, 그에 따른 수많은 실패들을 위한 변명들 또한 계속될 것이다. 그 끊임없이 이어질 답 없는 증명과 변명을 비웃지도 않고, 탄식하지도 않고, 조롱하지도 않으며 함께 이어 나가 줄 이들이 (그 힘이) 필요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