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옆구리가 간지러워 긁적긁적하며 깼다. 요 며칠 넥스가드*를 먹지 않은 지민이*가 진드기를 달고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벌레에 예민해졌던 차였다. 서둘러 약을 먹였지만 결국 뭔가 옮아왔군. 몇 번의 여행과 여러 번의 강아지와 동거를 하면서 무는 벌레들에는 이골이 난 차였다. 침대에서 옆구리와 등 여기저기가 간지러운 걸 보니 빈대 아니면 벼룩일 터이다. (진드기는 주로 기어가다가 가장 따뜻하고 습한 곳에 머물러 피를 먹기 때문에 여기저기 간지럽지 않다. 그리고 간지러운 부분에 진드기가 잡히기 마련이다)
*넥스가드는 진드기 및 여러 벌레가 방제되는 심장사상충 약
*지민이는 지금 같이 사는 강아지
이불을 들춰보았다. 벼룩이라면 뛰어다니는 것이 보일 텐데…. 보이지 않는다. 빈대라면 아침에는 벌써 이불이나 옷에 숨어버렸을 게 분명하다. 자국을 슬쩍 보았다. 자국은 한곳에 몰려있어서 빈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음, 그런데 뭔가 쎄한 기운이 감지된다. 분명 빈대라면 밤새 간지러웠을 텐데 왜 아침에만 간지럽지? 자국 근처를 손으로 쓱 쓸어본다. 미세하지만 시큰한 느낌이 든다. 이건… 혹시?
이불과 잠옷을 건조기에 넣어서 벌레를 방제하기로 하고, 대상포진일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아시클로버*를 일단 바를까?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대상포진일 경우 경구 항바이러스제 말고는 효과가 크지 않단다. 대상포진이라는 생각이 닿고 나니 얼른 병원에 가서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항바이러스 연고
아침에 긁으며 커졌던 자국은 일하는 중 화장실에서 보니 엄청나게 조그마해져 있었다. 옆구리뿐만 아니라 여기저기가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누가 보면 이거 가지고 대상포진이라고 하는 게 우스울 정도였다. ‘나, 너무 호들갑 떠는 건가?’ 그래도 방치할 수는 없을 일이었다. 지난번엔 대상포진인지 몰라서 일주일을 방치하고 치료받기 시작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신경과로 향했다. 근처에 있는 피부과는 모두 미용 피부과들이었고, 내과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낸 곳이었다. 게다가 예약도 밀려있지 않아서 내과 예약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금세 들어갈 수 있었다.
대상포진이 의심된다고 하니 열은 없냐고 여쭤보셨다.
“없는 것 같은데…”
“한번 재볼게요. 37.4네요.”
“미열이 있네요. 제가 기초체온이 좀 높아요….^^; 방금 밥을 먹어서요.”
난 이때까지도 내가 좀 이상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최근에 산에 다녀온 뒤로 좀 피곤하고 목이 따끔따끔했는데, 열까지 있었다고? 그래도 뭐. 괜찮겠지. 그런데 진료를 시작하고 나니 대상포진을 빨리 발견했다는 나의 요상한 자신감(?)은 와장창 부셔지고 말았다.
“드시고 있는 약이 있으세요? 잠은 잘 자세요?”
“네, 약은 이런거 먹고 있고, 잠은 좀 많이 자요. 악몽을 좀 꾸긴하는데….”
“그렇군요. 나이가 있으신 것도 아니고 이렇게 젊은 분이 2년 간격으로 대상포진을… 면역억제제 같은걸 드시고 계신 상황도 아니고, 특별히 무리하신 것도 아닌데 말이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거나 해서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 같아요.”
“그렇군요…”
“곧 또 수술이 있으시다고 했죠? 재발할 수도 있어요. 일단 약 일주일 치 드릴 테니까 그러고도 계속 간지럽고 부위가 커지는 것 같으면 일주일 더 드릴게요. 수술을 미루기는 어려울 테니, 재발하시면 다시 치료하는 걸로 하죠.”
“네…”
너털걸음으로 간 약국에서 처방받은 발크로버*는 한 상자였고, 42정이 들어있었고, 2만 원이 넘었다. 조금은 참담한 기분이었다. 별로 안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나. ㅋㅋㅎㅎ,,, 이렇게 계속 아플 거면 그냥 예방 주사를 맞는 게 났겠어. 20만 원이라던데….
*대상포진 등 바이러스 질환에 사용되는 항바이러스제
집으로 돌아가 한참을 누워있고, 자다가 저녁시간이 되서야 일어나 엄마에게 대상포진 발견 및 진료 무용담(?)을 전하며 얼른 사이좋게 주사 맞으러 가자고 했다.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대상포진인 줄 알았냐며 수상해 했다. 나는 대상포진 특유의 시큰한 느낌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엄마 그 있잖아, 몸살 걸렸을 때 샤워기 물맞으면 아픈 느낌 알아? 딱 그 느낌이야.”
엄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모르겠는데?”
“으응…? 그러면 몸살 걸렸을 때 옷 스치거나 바람 불어서 시큰한 느낌은?”
“그것도 잘 모르겠는데. 우리 딸들은 이렇게 시원치 않아서 어쩌냐.”
“…??!!”
아니, 그 느낌을 모른다고? 아빠한테도 물어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몸살 안 걸려본 사람은 없을 테고, 그런데 몸살 걸렸을 때 느낌이 이렇게 다르다니. 난 그래서 그동안 몸살이 올때면 아파하면서 샤워하거나 좀 나아질 때까지 샤워도 못했는데… 내가 아픈 게 맞구나. 내가 약한 게 맞구나. 알고, 시원스레 인정하면 좋겠는데 막상 그렇게 잘되지 않는다.
약한 사람이 되는 건 무섭고 두렵다. 약육강식이 아니라 공생의 행성이라고 후천적으로 몸과 마음에 주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압도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살아남기에 자신이 없는 날들이 있다. 짐이 되는 것만 같고, 정상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날들이 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웃어 넘기거나, 무시 하게 되는 날들이 더 많다. 무리가 기본값인 사회에서 계속 체력을 깍여나가고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해야한다. 생일을 맞이해서 산에 한번 다녀온것이 문제였을까? 아님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문제였을까? 엄마는 '산에 두번 다녀오면 죽겠다.'며 놀렸지만 나는 정말로 슬펐다.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라고 이렇게 약간 것인가..!
대상포진은 일주일간 약을 먹으면 사라질 것이지만 계속 깎여나가는 나의 면역력과 체력, 그리고 멘탈은 도대체 어디서 채워야 하려나. 예방 주사를 맞고 또 맞아도, 질병들은 약한 곳을 파고들어 다른 곳에서 튀어나올 게 분명하다. 일단 약부터 잘 챙겨 먹고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