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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18. 2020

방문 거지

재난 기본소득을 신청하면서

10여 년 전만 해도 내가 살았던 중국 상해엔 소매치기, 거지들이 많았다. 북경이나 심천, 광저우나 칭다오는 더 했다. 중국 광저우에서는 지나가는 아가씨 백을 가로채는 오토바이족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특히 거지들이 많았는데 쓰레기통을 뒤져서 음식을 먹기도 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추운 겨울에 아기를 등에 업고 구걸하는 엄마들 모습이었다. 그 아기들은 볼이 터서 파래져 있었다.

아주 오래전 우리나라의 모습이 떠 올랐다.








어린 시절 나는 거지도 직업인 줄 알았다. 그 당시 거지들은 아주 당당했다. 성실하게 근속하며 기부를 유도했다. 힘들어 보이긴 했다. 하지만 회사로 치면 당연하게 있어야 할 하나의 부서처럼 보였다. '사회복지 부서'라고나 할까?




어릴 적에만 해도 한낮에 대문을 걸어 잠그지 않는 집들이 많았다. 그 문을 자연스레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지들이었다. 심지어 한 번 왔던 거지가 또 온 적도 있다. 정기 방문 판매 거지인 셈이었다.


대부분 나이도 젊었다. 하루는 아주 잘 생긴 거지도 왔다. 요즘 말하는 일명 '꽃거지'다. 젊고 사지도 멀쩡했는데... 이해가 안 된다.


그들이 올 때마다 고민이 되었다. 밥만 줄까 아니면 반찬도 줄까 하고. 대부분 밥만 주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먹기가 싱거울 것 같았다. 그들은 밥만 주어도 허겁지겁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들은 그 밥을 모아서 저장도 했다. 이를 위해 용량이 큰 '영업용 식기'를 가지고 다녔다. 찌그러진 양철로 만들어졌는데 모두 한 곳에서 표준 사이즈로 제작된 걸로 보였다. 철사로 된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머리에는 대부분 더러운 모자를 쓰고 있었다. 누런색인지 회색인지 알 수 없는 색깔의 바지는 바닥을 질질 끌만큼 길게 늘어뜨리고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소매는 입구가 넓게 벌어져 있어서 손이 시리면 양손을 그 안으로 쏙 집어넣고 다녔다.


거지들은 여기저기 있었다. 고정석이 있었는데 바로 육교 다리 밑이었다. 당시 육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요즘으로 치면 역세권에 해당된다.(자릿값이나 텃세도 있었을 것이다.) 인심이 좋은 사람들은 육교 밑을 지날 때엔 항상 10원짜리를 준비해 두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육교를 오르는 일이나 건너는 일, 또 내려가는 일은 내게 늘 공포였기 때문이다. 혹시 굴러 떨어질 새라 엄마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계단을 다 내려갈 때쯤엔 어김없이 거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 거지들은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면 나는 무섭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서 엄마를 쿡쿡 찔렀다. 그러면 엄마는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거지 앞에 놓인 그릇에 땡그랑 하고 넣었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거지들은 그 외에도 기차역, 길거리 등 곳곳에서 '기부 유발행위'를 했다.

그때마다 어른들이 한 10원짜리 기부 행위, 또 방문판매 거지에게 밥을 준 건, 그 시대에 맞는 '사회적인 소득 재분배' 행위였던 셈이다. 또 어린아이들에게는 자연스레 '기부 씨앗'을 심어주었다.



그땐 국민 전체가 가난하고 나라도 가난했다. 기본적인 복지 개념도 없었으니. 특히 몸에 장애가 있거나 병이 든 사람, 또 남편을 갑자기 잃게 된 아기 엄마들이 살아갈 방법은 막막했을 것이다. 먹을 것이 없으면 길거리에 나가서 구걸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을 듯.  










지난달 경기지역화폐에 이어 나라 전체에서 재난 기본 소득 신청을 받고 있다. 평소 채소값이 싸서 자주 가던 야채가게에는 요즘 손님이 바글바글하다. 과일을 가득 담아가시는 할머니들이 많이 눈에 띈다.


아직도 지구 곳곳엔 코로나에 걸려도 속수무책인 나라가 많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그랬다. 당장 아파도 병원은커녕 먹을 것이 없어서 구걸하는 사람이 많았으니.

 

일찌감치 실시한 재난 기본소득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어렵게 내린 이번 조치로 경제문제에까지 방역을 이루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는 삶 말이다.


'가난한 나라'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나는 이런 소망이 기쁘다. 무엇보다 '육교 거지'는 이제 내 추억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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