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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19. 2020

그 시절엔 여성 폄하 발언이  난무했다.

여자를 옥죄던 말들

차례상에 대고 절을 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그러자 어른들이 뒤로 물러나란다. 여자는 절을 안 하는 거라고, 아니 못하는 거라면서. 왜 안 하냐고 하니 여자들은 원래부터 안 하는 거란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원래부터'라는 말에 알 수 없는 화가 치미는 게. 여자는 자손이 아닌가? 여자들이 부엌에서 죽어라 일해서 상을 차렸다. 그런데 남자들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왜 자기들만 조상님께 인사를 드리지? 어린 마음에도 '절 거부'사건은 상처로 남았다.








이런 식의 남녀차별적 관행은 많다. 또 이를 말로 드러내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예전엔 남자아이들까지 여성 비하 발언을 입에 달고 살았다.

"계집애가 말이야.", "여자가 그럼 못쓴다."등등.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 당시 말 중 최대한 센 걸로 찾아보았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이 말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 강도가 세다. 생물학적으로도 암탉이 안 울고 수탉이 우는지는 모르겠다. 암탉에게 인터뷰를 하고 싶다. 왜 울지 않느냐고. 암탉이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건지, 아니면 수탉이 목청이 좋게 태어나서 역할 분담 상 그러는지. 아니면 암탉은 알을 낳느라 기력을 소진해서 울음 소릴 못 내는지.


주로 남자들이 경제력을 쥐고 있던 그 시절엔 여자들이 항변도 못했다. 하지만 요즘 암탉이 울지 않으면 경제가 망하는 집이 어디 한둘인가?


자고로 여자는 조신해야지.

내가 대학생 때까지도 유행한 말이다. 당시 여자의 미덕은 청순미, 가련미, 조신함이었다.(요즘 루저라는 소릴 듣기 딱 좋은)

반대로 섹시하거나 드세거나 활발한 여자는 시집가기 글렀다고 혀를 끌끌 찼다. 요즘은 알파걸, 걸 크러쉬, 섹시함이 여성적인 멋짐의 대명사다.


말띠 여자는 시집 못 간다.

말띠인 나로선 지겹게 들은 말이다. 이 말에는 여자가 시집 못 가면 망한 거라는 조롱이 깔려 있다. 하지만 시집가도 불행한 사람이 많다.

게다가 '시집간다'라는 말에는 여성을 남자의 예속 물로 보는 시각이 들어 있다.


드센 여자는 재수 없다.

여자가 드세다는 말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을 이끌고 가려는 성향을 말한다. 결국 리더십과도 통한다.

전에 근무하던 디자인 회사에서 국내 유명 백화점 한 층 전체 설계를 맡게 되었다. 그 일은 나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직원들에게 골고루 분배를 해 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일개 대리였고 위에 부장과 과장이 있었던 것. 국내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극상으로 보기 때문.


하지만 그 당시 사장은 미국 유학파였다. 미국 유명 회사에서 팀장까지 하다 온 사람이라 미국식으로 일을 맡겼다. 즉 위계질서보다는 능력위주, 팀 위주였다. 각자의 능력과 적성에 맞게 일을 분배하곤 했는데 내가 하필 제일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마침 그 회사에서 여자는 나 하나였다. 남자들은 달랐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부장은 애꿎은 나에게 화살을 겨누었다. 내가 도면을 부탁하면 직원들을 다 몰고 나가 술을 사주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나 혼자 밤을 새워서 도면을 그려야 했다.

 

그러다 나중에 나에게 그 일을 사과했다. 그런데 사과하면서 하는 말이 더 상처가 되었다. 아주 길게 변명을 했는데 핵심은 내가 부탁조로 하지 않고 기가 세게 말을 해서 그랬다는 거다.

여자가 일을 추진하다 보면 말을 고분고분하게 할 수가 없다.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면 재촉하고 기가 세게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남자가 그러면 당연하고 여자가 그러면 재수 없어하는 경향이 있다.



여자랑 접시는 내돌리면 안 된다.

접시를 이웃에게 빌려주면 이가 나가기 쉽다. 이를 여자에게 빗대서 하던 말이다. 여자가 바깥바람을 쐬면 집에서 진득하게 살림을 못 하고 결국 바람이 나거나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집안일을 중시하는 남성 위주 사고방식에다 여자를 집안에만 가둬두려는 못된 심보가 깔려 있다.


여자는 입으로 하는 세 개가 적어야 한다.

즉 적게 말하고 적게 웃고 적게 먹어야 한다고.

이게 제일 기가 막혔다. 무엇보다 '많이 웃으면 건강에 좋다'는 말은 여자에겐 해당이 안 되는 것일까? 하고.

또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면 어쩌나? 여자라서 적게 말하는 게 아니라 일에 따라, 역할에 따라 말을 많이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지. 또 적게 먹어야 한다는 건 여자를 외모로 평가하는 사상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에너지가 넘치니 많이 웃고 많이 먹는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여기엔 지독한 남성 중심사상이 깔려 있다.

결혼은 중대한 문제이므로 남자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다. 왜 여자에게만 이런 굴레를 씌워서 부당해도 참고 살게 했는지.

 여자는 남자에게 예속되는 존재로 여겼다. 여자 팔자가 피려면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거다. 여자를 자기 팔자 하나 못 고치는 주체로 본 것이다.


많이 배운 여자는 피곤하다.

학창 시절 선생님 중 기억나는 분이 있다. 그분은 꽤 능력이 있는 분이셨다. 무슨 연구대회에서 상도 타고 대학원도 나오셨다. 그 선생님은 부부교사였는데 박사과정을 권유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많이 배우면 안 된다고. 남편이 박사를 안 땄는데 자기가 따면 남편이 위축이 된다고.


첫 손님이 여자면 하루 종일 장사가 안된다.

디자인 회사에 근무할 때였다. 그 회사가 있던 건물은 할머니가 건물주였다. 그 할머니는 건물 구석구석을 직접 청소하셨는데 새벽부터 건물에 출근하셨다. 그리고 아침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식이 있었다. 그 건물에 처음 들어서는 사람이 무조건 남자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건물 입구에 서서는 만약 여자가 현관 발매트에 제일 먼저 발을 들여놓을라치면 막아서곤 했다. 다른 남자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


하루는 모처럼 일이 있어서 일찍 출근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내가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 할머니에게 제지를 당한 것. 지금 같으면 신문에 날 일이다. 내 발도 내 맘대로 떼지 못하다니. 결국 나는 10분가량 기다렸다가 남자 직원이 첫 발자국을 떼고 나서야 입구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그 할머니는 같은 여자로서 너무 했다. 남자 직원들은 그 사실을 그저 농담 삼아서 말할 뿐이었지만 여직원들에게는 불쾌함의 도를 넘은 일이었다. 나는 결국 그 회사를 나오고 말았다.


실제로 가게에서 여자가 첫 손님인걸 대놓고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슈퍼마켓에선 아침에 물건을 사러 들어갔다가 할머니 주인에게서 쫓겨난 적도 있다. 여자를 첫 손님으로 맞지 않겠다는 것.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없었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불과 3, 40년 전까지 통용되던 말들이다. 반골기질이 강한 나는 그 당시에도 울분을 토했지만 주위에선 자조 섞인 푸념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나이 드신 여자분들은 오히려 남자들 편이었다. 요즘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멀다.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가사노동, 육아를 훨씬 많이 담당하고, 양가 부모님들과의 관계 등에서도 부당해 보인다.


하지만 차차 해결되리라 믿는다. 요즘 젊은 세대 때문이다. -남편들의 육아휴직이나 요리하는 남자들의 증가 등. 무엇보다도 위에 말한 여성 폄하 발언들은 없어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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