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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pr 28. 2020

징검다리

"그건 네 생각일 뿐입니다만, "

내가 어릴 적 서울에는 곳곳에 개천이 있었다. 그 개천을 건너려면 '징검다리'가 필요했다. 주로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돌멩이들을 듬성듬성 떨어트려 놓았다. 그 징검다리를 건널 땐 특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바지를 걷거나 신발을 벗거나, 발에 힘을 꽉 주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돌이끼에 미끄러져서 물속으로 고꾸라질 수 있으니...


황순원 소설 '소나기'에서 인상적인 장면중 하나는 소년이 소녀를 업고 징검다리를 건널 때다.


소년은 얼마나 긴장되었을까?

자칫 발을 헛디디면 소녀를 물속으로 내동댕이치거나 망신당할 수 있으니.


또 얼마나 설레었을까?

예쁜 소녀가 등 뒤에 있는데.  






요즘 20대 교사에게 오버할 때가 있다. '나는 절대 꼰대가 안 되리라.' 몸부림치건만.

조금 아는 게 있으면 가르쳐주고 싶은 이 놈의 의욕이 주범이다.

기특한 핑계가 있다.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가 심했던 20대 시절을 돌아보며, 그들이 합리적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들 눈에는 죄다 쓸데없다. 어느 땐 눈으로 욕 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난 내 식대로 하는 게 편해요.'

내가 20대 시절만 해도 일을 배우는 방식은 '사람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편화된 지금은 그들이 훨씬 최신의, 고급진 정보들로 무장하고 있다.


게다가 개인의 '과잉 일반화 오류'까지 잡아내는 정보원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니 어쭙잖은 충고를 들을 필요가 없다. 앞으로 이 추세는 가속화될 텐데...


'성의 기부자'들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기껏 시간과 성의를 내어주는 건데, 싫은 표를 낼 것까지야.


그런데도 부득부득 가르쳐주려는 직장 상사들이 있다. 학교는 그나마 3, 40년이 지나도 똑같은 일(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니 대체로 평등한 조직이다.


그러나 위계질서가 분명하고 조직을 흐르는 혈맥이 '돈'인 경우, 업무와 관련된 충고를 성의 없이 받아들이면 얼마나 열 받을까?


뒤집어 생각해보면 젊은 세대들에게도 고충이 있다.

때론 '신입이' 카페까지 만들어 놓고, 익명으로 시원하게 속풀이 하고 있다. 회식자리는 고문이지만 온라인 회식으로는 얼마든지 술 안 먹고도 속풀이가 가능하다. 그곳엔 웬만한 업무 노하우가 가득하다. 꼰대 상사 다루는 법 까지도.


게다가 일하는 방식을 가르쳐준다고? '그게 언제 적 방식인데'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상사가 알려주는 업무비법은 이미 사장된 지 오래되었다.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던 일들을 이들은 초고속으로 해낸다.

컴퓨터 기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젊은이들이 볼 때, 기성세대가 일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이다 못해 안타깝다.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결국 짝사랑만 하다가 상처뿐인 영광을 얻는다.

굳이 사랑을 받지 않겠다는 데 딱히 할 말이 없다.





요즘 '매일 만보'실천으로 집 근처 개천을 걷고 있다. 그때마다 졸졸거리는 물소리는 내 영혼을 맑게 한다. 그 개천 중간중간 놓여 있는 징검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 징검다리는 어릴 적 바짓가랑이를 걷고 조심조심 건너던 징검다리와 다르다.


못생기고 평평한 돌을 척하니 갖다 둔 게 아니라, 계획적으로다가, 네모반듯하게 만들어 일렬로 설치했다. 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불안함이나 설렘은 없다. 그저 터벅터벅 걸을 뿐.


개천을 건너게 해주는 해결사지만, 신경 쓸 필요 없는 그저 그런 도구.


'소나기' 장면이 떠 오를리가 없다. 개천을 그저, 건넌다.





시대가 변했다.

일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하는데...

덜 참견하고,

덜 말을 걸고.


그래도 노력은 하고 있다.

네모반듯한 징검다리가 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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