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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r 31. 2020

종이인형

학교 가지 않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

'종이 인형 놀이'라는 게 있었다. 하얀 종이에 사람 전신을 그리고 오려낸 후, 마찬가지로 종이로 옷을 만들어 입히며 노는 놀이다. 이 놀이에는 돈이 한 푼도 들지 않았고 하루 종일 놀아도 싫증 나지 않았다.


이 놀이에는 총 3단계 레벨업이 있었다. 초보땐 문방구에서 파는, 8절 정도 크기에다 마분지로 만든 인형 그림을 산다. 그 그림의 선을 따라 가위질을 하면 인형 몸체 하나와 옷, 신발 등  액세서리들을 오려낼 수 있었다. 이 인형은 보통 최소한도의 속옷을 입고 있었다. 그때 그 속옷 차림 한 인형을 보고 놀려대는 남자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옷 어깨 부분에는 작은 사각형이 붙어있다. 이는 인형 몸체에 입힐 때 접어서 고정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딱 초보 때까지 만이다. 옷의 가짓수가 잘해야 7, 8벌 정도밖에 안 되고 몇 번 입히고 놀다 보면 싫증이 났기 때문이다. 특히 컬러풀한 것은 눈이 빨리 피로해지는 법이다.


그다음에는 인형만 활용하고, 옷이나 장신구는 다른 종이에 그려서 무한대로 옷 가짓수를 늘리는 것이다. 그땐 인형이 바리바리 싸들고 왔던 옷들이 싫증이 난 터라 구석에 처박혀 있다. 대신 새로 만들어 입히는 옷들은 무채색이다. 그러면 무채색의 한계를 다양하고 과감한 디자인으로 극복하곤 했다.  


마지막 단계는 인형 자체도 자기가 그려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직접 그리다 보니 그 인형은 모양이 조금 투박하거나 비율이 안 맞기도 했다. 그러면 그림 잘 그리는 친구에게 아양을 떨어서 주문을 하기도 했다. 눈 딱 감고 한번 비굴하면 계속해서 쓸 수 있으니. 평소 남 따라 하는 걸 싫어하던 나는 이때도 독립군처럼 행동했다. 그림이 좀 서툴더라도 반드시 내가 그린 인형으로 가지고 논 것이다. 다른 아이들 인형은 한 사람 손에서 나왔으니 얼굴이 다 비슷했다. 마치 한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자매들처럼. 역할 놀이를 할 때 실감이 안 나는 것이다.


옷 가게 손님으로 온 사람과 주인은 얼굴이 달라야 했다. 그런데 다 비슷한 얼굴이다 보니 누가 누군지 헷갈리는 것. 내가 그린 인형은 날 닮아서 조금 넙적했다. 사람 얼굴 그림은 그리는 사람 얼굴이 반영되는 듯. 인형 잘 그리는 친구는 호리호리한 게 얼굴도 계란형이었다. 그러니 인형도 주인을 닮았는지 달걀형에 예쁜 얼굴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헷갈리면 안 되지 않을까?


같은 인형놀이라도 동네마다 2D냐 3D냐로 갈렸다. 우리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엄마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당시 꽤 부유한 동네였다. 그런데 그 동네 아이들은 눈을 씻고 봐도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지 않는 것이었다. 대신 입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고무로 만든 인형 몸체에(그 인형 몸체를 보고 어린 마음에도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개졌다. 속옷을 하나도 안 입어서.) 진짜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히고 노는 게 아닌가? 대신 옷 종류가 얼마 없었다. 잘해야 10개 정도. 우리 동네 아이들은 종이로 만든 옷이지만 얼마든지 옷 가짓수를 늘려갈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부러웠다. 진짜 살처럼 말랑말랑한 인형은 신기하게도 재우려고 누이면 스르르 눈을 감았다. 눈이 감길 때마다 인형의 까맣고 긴 속눈썹이 함께 닫혔다. 그 인형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인형처럼 예쁜 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입고 흙바닥에서 뛰어놀아 무릎이 하루도 성한 날이 없는데.


요즘도 비슷한 놀이가 눈에 띈다. 스티커로 옷을 갈아입히거나 게임으로 아이템을 바꾼다거나. 아쉬운 건 직접 창작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도 잘 사는 아이들은 완성품을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그 놀이에는 '미적 눈요기' 정도 외에는 얻는 게 없었다. 창작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종이인형 놀이가 준 혜택이 많다. 의상 창작, 그림 그리기, 화술, 가위질, 헤어디자인, 의상 코디 등 많은 활동을 놀이로 한 셈이다. 나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인형이 사는 집을 만들고 가구도 디자인하면서 업그레이드해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때 설계일에 매력을 느껴 나중에 건축 설계 공부까지 하게 된 듯.)


아이들을 키울 때 이 점을 염두에 두었다. 고가의 장난감을 사주지 말 것, 완성품이 아니라 되도록 조립해서 만들어나가는 제품을 사줄 것, 재활용품을 버리지 말고 쌓아두었다가 펼쳐놓고는 아무거나 만들어보게 하는 것.








온라인 개학이 논의되자 교사로서 착잡하다. 재택근무라지만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마음은 늘 안절부절못하고 의외로 처리할 일들도 계속 있어서 애매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주던 밝은 기를 받지 못하니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는 학부모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특히나 초등학교 아이들은 집에 있으면 갑갑해서 못 견딜 텐데. 그 에너지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할 걸 생각하면.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 하루 종일 방에만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놀이들이 무엇인지 떠 올려보기도 했다.


요즘은 인터넷 덕분에 좋은 놀이를 검색해서 참고할 만한 것도 많다. 자녀교육을 거의 다 마친 선배 엄마로서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무엇을 하든 체험을 통해 직접 완성해 나가는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조금 부족하고 삐뚤삐뚤해도 직접 만들어보는 과정에서 배우는 게 많기 때문이다.


아빠랑 간단한 목공활동을 하거나 엄마랑 뜨개질을 하거나 가족이 다 함께 특이한 요리를 만들어 보거나, 화초를 가꾸거나... 찾아보면 꽤 다양한 활동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 텔레비전만 보는 대신.


다들 잘 알아서 하시는데 괜한 걱정일까? 모두 내 불안 때문이다. 전국 초등학교 엄마들에게 괜히 죄송한 마음에서 우러난.








이미지: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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