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분들의 땀으로 빚는 편리한 세상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급히 외출할 일이 생겨 승강기를 탔다. 고층에 사는 사람은 동의할 것이다. 고층에 살면 승강기를 오르내릴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드나듦을 봐야 한다는 것을. 제발 아무도 안 타길 바랐건만.
이미 누가 타고 있었다. 택배기사다. 이동용 카트에 천장에 닿을 만큼 많은 물건을 싣고서. 맨 위층에서부터 배달을 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왜 오를 때 배달하지 않고서. 짐작이 갔다. 오를 때부터 층마다 내리기는 미안했을 듯.
그는 층마다 버튼을 눌렀다. 거의 빠짐없이. 엄청난 업무 속도에 놀랐다. 승강기 문이 열리면 재빨리 나가서 물건을 문 앞에 두고는 자동으로 문이 닫히기 직전에 돌아온다. 이렇게 서너 번 왕복하고 난 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내 얼굴에 바쁘다고 씌어 있던 걸까. 그가 승강기 안으로 되돌아오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 문이 닫히기 전에 여유 있게 올 정도로.
특히 7층에는 여러 집 택배가 있었던 모양이다. 손에 물건을 잔뜩 쥐고 헐레벌떡 나가는 것이다. 내가 재빨리 승강기 버튼을 눌러주었다. 여유 있게 다녀오시라는 의미로 미소를 지으면서. 미소가 보일지는 의문이었다. 마스크를 썼으니.
그러자 굉장히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비록 마스크는 썼지만. 그 모습을 보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로 택배 물량이 폭주한다는데, 회사에서 월급은 올려줬는지 궁금하다. 프리랜서라면 좋겠다.
그가 2층 버튼을 누른다. 얼핏 보니 이제 물건이 거의 없다. 이때 내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배송이 참 많나 봐요. 힘드시죠?”(마스크를 썼는데도 보인다. 이마부터 흐르는 땀이 마스크를 뚫고 나올 지경이다. 아마 마스크를 써서 땀이 더 날 것이다.)
“네.(헉헉) 오늘은 화요일이라 더 하네요.”
그러자 지난주 토요일에 물건 주문한 일이 떠올랐다.
“아. 그렇겠네요. 주말에 주문을 하면 화요일에 배송이 되니.”
그 말을 할 때쯤 승강기 문이 열린다. 나는 마치 숙련된 조수처럼 열림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이제 그냥 내려가세요. 2층이니까 걸어서 1층으로 갈게요. 그리고 고마워요.”
마지막 말에 쑥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기사분이 고마울 게 뭐람. 우리가 고맙지. 이제 보니 저렴한 가격, 빠른 배송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업무 속도에서 나오는 거구나 하며.
택배기사에게 승강기 이용을 금지한 고급 아파트 주민들이 있었다. 승강기가 아니면 새처럼 날아올라야 하나. 아니면 층계를 걸어서 배달하나.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사건이 클로즈업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승강기 문이 열렸다. 문밖을 보니 기사 분이 계단을 부지런히 내려오고 계셨다. 승강기 안에는 아직도 1층 주인에게 가야 할 물건들이 놓여있었고. 그러고 보니 아주 잠깐이지만 내가 물건을 간수해준 셈이다. 드디어 끝이다. 파이팅!’이라도 하듯 택배기사와 나의 눈이 부딪쳤다.
다른 눈빛도 있었다. 1층에 잔뜩 서있던 사람들의. 말은 내뱉지 않았지만 그들은 눈빛으로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스크를 써서 표정이 안 보인다고 생각하겠지만.
‘하필 이렇게 바쁜 시간에 배달을 해 가지고.’
‘한 번에 다하려고 무릴 했구먼. 좀 나눠서 할 것이지.’
우리의 눈빛은 가루가 되어 땅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속으로만 말했다.
‘짜증은 이해해. 하지만 자기 아들이나 남편이거나 동생이었어도 그런 눈빛을 보냈을까. 그리고 나야말로 바쁜 일이 있던 사람인데. 그들은 집으로 들어가는 중이었잖아. 뭐가 그리 급해.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에게 미소라도 지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사람들이 택배가 하루만 늦어져도 난리 칠걸. 화요일은 물건이 몰린다잖아. 하루 내내 배달하고 겨우 지금 시간이 된 거지.’
게다가 1층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주부들이었다. 직장인이 퇴근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그중에서도 유난히 입술이 삐죽 나와 있던 주부가 떠올랐다. 마스크 위로 입을 삐죽한 표정이 드러날 정도다.
그 표정들 위에 친구 얼굴이 겹쳐졌다. 명퇴한 남편이 최근 택배 일을 시작했다던데. 사람 일은 모른다. 이 주부 남편이 앞으로 택배기사가 될지. 그때도 입술을 내밀 것인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못 마땅해하던 얼굴도 나를 괴롭힌다. ‘벼는 익을수록 고갤 숙인다잖아. 성숙해서 무게가 나가기 때문이야. 사람은 더욱 그래야 하지 않나.’
이번엔 내가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본다. 비록 마스크는 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