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예민한 게 아니었다.
사람들과 활발히 대화를 하지 못하는 요즘, 마음이 좁아짐을 발견한다. 기껏 넓혀놓은 마음이 다시 좁아지는 건 아닐지 걱정되기도. 요즘 유독 마음이 휘둘리는데, 계기는 남의 ‘말’이다. 사소한 말에도 상처를 받는다. 전엔 주로 가벼운 수다로 간주하던 것들이다. 활발히 이루어지던 대화가 전화나 문자로 대체되면 서다. 사소한 오해가 생긴다.
나만 그럴까. 주변에 나처럼 끙끙 앓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코로나로 집안에 갇히면서 생각마저 갇히는 건 아닌지. 나이가 든 사람도 이런데 2, 30대 미혼 세대는 더 하지 않을까. 20대 시절엔 누가 무심히 하는 외모 평이 두고두고 상처로 남았다.
여기까지는 주로 남에게서 받은 상처 이야기다. 요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러자 불쑥 떠 오르는 생각이 있다. 내가 ‘이기적인 대화자’였다는 것. 항상 “나는 원래 말이 많아.” 하면서 대화의 지분을 독차지하곤 했다. ‘말을 잘한다.’라는 주위의 평에 으쓱해서는. 이제와 생각해 보니 알겠다. 내 말을 들어준 사람들은 할 말이 없거나 자기 생각이 없는 게 아니었다. 매너가 좋았던 거였다.
듣는 게 취미인 사람이 있을까. 별로 없다. 천하의 이야기꾼이 하는 말이 아니라면 들어주는 건 괴롭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말하는 걸 더 좋아한다. 그 말이 의미가 있거나 재미가 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재미없는 수다로 시간을 독점하던 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비대면 강조 기간’을 지나면서 나를 ‘대면’ 해 보았다. 왜 그 전엔 이런 게 왜 안보였을까. 무슨 일이든 한창일 때는 겨를이 없다. 시간이 나면 비로소 조용히 호수 바닥을 응시하며 고민하게 된다. 지금 가라앉은 이물질이 무엇인지, 왜 생겼는지, 어떻게 해야 제거할 수 있는지.
왜 있지 않은가. 장사가 안 되다가 인테리어를 고치고 메뉴를 바꿔서 대박 나는 가게 말이다. 비대면 기간은 나에게 ‘감정 수리 기간’이다. 그동안 나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내 주위엔 한 시간 이상 떠들어도 면박을 주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론 내 말을 적당히 끊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말을 할 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겠다. 말이 많다 보면 이말 저말 하다가 실수를 남발한다. 실수는, 말 그 자체만 보면 안 된다. “너 싫어.” 하면 농담인 줄 안다. 하지만 “참 착하기도 하시네요.”라고 말을 하는데 눈빛이나 몸짓에서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나의 착함을 이용하거나 은근히 무시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사실 “착하다.”는 이제 욕이 된 지 오래다. 이 말에는 말하는 사람이 평가자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말 잘하는 법’이나 ‘대화에서 이기는 법’에 관한 책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말을 잘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유 튜브 자막만 자주 봐도 말을 잘하게 될 듯하다.
사람의 말은 글이라는 형태로 여기저기 전달된다.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 왜 말로 상처를 받는 사람이 많을까. 뭐든 많아지면 반대급부가 생기기 때문인가.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는 범죄율도 높은 것처럼 말이다. 각종 사회관계망 서비스 댓글에 상처를 받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연예인들, 또 자기가 인 스타 그램에 올린 사진에 단 악성 댓글을 보고 충격을 받는 평범한 사람들 말이다.
평소 말이 많은 편이다. 자연히 실수도 많다. 또 말로 상처도 많이 받는다. 남이 하는 말 중 이상하게 귀에 거슬리는 말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뭘까. 말은 글자 자체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거울처럼 비추기 때문이다. 그 예민한 마음을 글로 쓰면 관심을 많이 받는다. 나만 상처 받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의외로 사람들이 말에 예민하구나. 동시에 위로가 되었다. 나도 남들과 똑같다는 동질감이다.
나에게 예민한 건 나도 앞으로 남에게 말할 때 조심해야겠다. 나 혼자 세상 쿨 한 척하면서 농담이라는 허울 속에 숨지 말고. 거리두기가 해제되어 자유롭게 대화하는 날, 여러 사람과 마음껏 대화하고 싶다. 뒤돌아서서 마음 켕기는 일이 없는 말들로만. 그전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반성하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