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Aug 10. 2023

책을 쓴다는 건

브런치의 응원하기 기능을 보며.

수업시간이었다. 유튜브 화면에서 음악을 찾던 중 내 유튜브 화면이 쓱 지나갔다. 내가 두 번째 책을 직접 손에 들고 유튜브에서 광고하는 내용이었는데, 한 남학생이 갑자기 손가락을 가리킨다. " 어. 저거 우리 할머니가 읽으시던 건데.."

 

다들 의아해하면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 자기 할머니가 저 책을 읽고 계시는 걸 봤는데, 불과 2주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증조할머니라 연세가 95세셨다고. 그 말을 하면서 이내 눈물을 글썽거리는 남학생.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우리 할머니가 그 책을 가리키면서 저에게 그러셨어요.  이 책을 쓴 작가를 평생 한번 꼭 보고 싶구나. 좋은 내용을 너무 많이 써서. 나는 못 만나더라도 넌 나중에 만나게 되면 꼭 전하거라. 우리 할머니가 너무 감사해하셨다고."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안타까웠다. 왜냐하면 그 할머니가 말씀하시던 당시, 나는 그 남학생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전담교사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그때 알았었다면 책에다가 사인을 해 드릴걸. 그 당시 병색이 짙으셨다 하니, 한번 찾아가 뵈었어도 좋았을 텐데. 손이라도 잡아드리면 좋아하시지 않았을까?


그 후 나는 남학생에게 작년에 나온 세 번째 책을 선물로 주었다. 그 책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딸, 즉 그 남학생의 할머니에게 드렸다고 한다. 남학생 말로는 자기 고모, 할머니, 엄마 등등 외가 쪽 모든 분들이 내 책을 좋아하신다고 한다. 나의 애독자 패밀리인 셈이다.


누군가 나를 보고 싶어 하다니.  이런 일들은 책, 책을 쓰고 나서부터 일어난 일이다. 출간된 책이 파본인 적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불평을 블로그에 올려놓은 분이 있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출판사나 작가님이 이 글을 볼리는 없겠지만 그 뒤 내용이 몹시 궁금하다고.


나는 직접 죄송하다는 과 함께 수정글 스티커와 수정본 책을 한 권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독자분이 너무 좋아하셨다.


중학생도 기억난다. 그 학생은 집안형편 때문에 학원에 못 가지만 책은 열심히 읽는다고 했다.  내 책 리뷰를 자기 블로그에 올렸는데 글을 너무 잘 쓴 거다. 게다가 내 책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느꼈다. 이에 정성껏 감사의 글을 댓글로 썼다. 그리고 덧붙였다. 학교 공부보다 책을 많이 읽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내 댓글을 본 여학생은 신기해했다. 어떻게 유명블로거도 아닌 자기 글을 보고 댓글까지 달수 있었는지 말이다.


인터넷 세상에선 모두 가능한 일이다. 작가들은 자기 글에 대한 반응이 몹시 궁금하다. 계속해서 자기 이름을 검색해 본다. 하루 한 번은 기본이다. 그러니 최신글로 올라오는 리뷰를 볼 수밖에 없다. 그 글에 내가 답변할 일이 있으면 답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두 책을 써서 일어난 일이다.  블로그나 카페 같은 곳에도 글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종이로 만든 책은 물성이 독특하다. 전기가 들어와야만 볼 수 있는 온라인 글과 달리, 언제 어디서나 집어 들고 읽을 수 있는 특성이 있다.   노빠꾸 특성(실수를 되돌릴 수 없는) 있다. 퇴고라는 개미지옥의 고통을 자처하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한 권 낼 때마다 (또 냈어? 하는 뜨악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음.)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작 작가들은 어깨, 목을 포기하고 얻은 대가다. 가히 아이를 하나 낳는 고통과 비슷한 거 같다.


뭐 하러 책을 내는지  나 자신도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즘 책으로 돈 번 사람을 한 번도 못 보고 못 들었다. 독서하기엔 다들 워낙 바쁘고 유튜브 등 영상물을 보는 시대라)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책을 쓰는 게 좋다. 예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라고 했다. 난 어린 마음에도 호랑이가 더 부러웠다. 가죽은 쓸모라도 있지,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이 이름을 남길 일도 없을뿐더러 가족들조차 그 이름을 언제까지 기억해 줄까. 예전엔 여자들의 이름은 족보에도 없었다.


그 속담을 이렇게 하면 어떨까.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유튜브영상이나 책을 남긴다.'  나는 둘 다 해 놓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유명인이 아니어도 이름은 남길 수 있다. 내가 일평생 살면서 고군분투한 처절함이 영상이나 책에 고스란히 남겨지는 것이다. 특히 내 자식들이나 손주들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다.


어제 브런치에서 응원하기 기능을 발표하자 여러 댓글이 달렸다. 나는 무엇보다도 브런치의 고민을 보았다. 작가들이 지치지 않고 글을 쓰게 하는 것 말이다. 상업적이고 얄팍한 글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면서, 삶에 대해 고민하고 남에게  글을 는 것,  그건 호랑이 가죽보다 값진 일이다. 그 과정에 현타가 오지 않게 서포트해 주는 일이 뭘까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앞으로 수정 보완해 가면서 최적의 응원값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봉두난발에 광대뼈 툭 튀어나온 얼굴을 하고 폐병 걸려 기침을 콜록콜록하면서 희대의 명작 하나 남기는 그런 작가는 싫다. 꼭 위대한 작품이 아니어도 좋다. 남들이 읽고 잠시 추억에 젖어보게 하거나 깔깔깔 웃게 하거나 카타르시스의 눈물 한 방울 흘리게 할 수 있다면 다 쓸모 있지 않을까. 잘 나가는 웹툰작가나 드라마 작가들처럼 풍족하게 되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좋은 작가들을 눈앞에서 놓치는 일이 지금보다 적어질 것이다.


이재 저래 책을 쓴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건 나를 남기면서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다. 둘다에게 남는 장사라고나 할까. 그리고 언젠가부터 브런치에 쓴 글들이 책이 되고 있다.  브런치의 응원을 열렬히 응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푸념 말고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