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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Oct 10. 2023

공정이라는 착각

모두가 패자인 게임을 그만두려면

어설픈 공정심이 있었다. 어린 시절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에서였다. 권선징악적인 전래동화 영향이 큰 듯하다. 조금 커서는 학벌주의, 성공주의의 냉혹함에 대한 반항에서다. 그러다가 얼마뒤엔 수저 재질(흙수저, 금수저)에 따른 좌절감이 크게 번졌다.


공정심이 어딜 향하든 공정의 대상은 늘 하나였다. '돈과 권력' 이를 얼마나 공정하게 배분하느냐에 관한 논리다.


그 배분과정은 다양한 갈등이 얽히고설켜서 끝이 나지만, 결괏값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즉 착한 사람은 마땅히 칭찬받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20부작이던 그 드라마가 자꾸만 결론에 대해 핑계를 댄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해피엔딩으로 끝을 내지 않으면 죽일 듯이 작가를 위협하는 사람들 때문에 깔끔한 결론이 아니라 열린 결론을 내는 작가들처럼.

그런 작가들은 시즌제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오랜 기간 드라마를 연장하다 보면 나중엔 결론에 대한 감각이 흐지부지해진다. 주인공이 잘살다가 못 살다가 그래서 뭐.. 시청자 입장에선 끝이 어떻게 되든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마이클 샌덜교수는 '공정이라는 착각'이라는 책을 냄으로서 능력주의에 대한 모순을 통렬히 비판한다.

능력에 따른 분배는 과연 공정하냐는 건데 우리나라 현실이 뼈 아프게 다가온다. 서울대에 가난하고 불우한 학생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통계가 보여준다. 절대로 많지 않다고.


즉 능력주의, 학벌주의는 또 다른 모습의 신분세습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어쩜 미국과 한국이 그토록 판박이일까 놀랐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궁금해졌다. 능력주의에서 비껴난 사람들만 이 사회의 패자일까. 능력주의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은 과연 온전하냐이다. 책에선 말한다. 둘 다 패자라고.


"성공한 사람이 솔직하게 할 수 있는 말은 그가 뒤죽박죽된 욕구와 욕망(중대하든 하잘것없든 어느 시점에 소비자의 수요를 구성하는 요소들) 속에서 관리(천재성과 교활함, 시의성과 재능, 행운과 오기, 고집등의 종잡을 수 없는 혼합)를 잘 해냈다는 것 밖에 없다. "-225p


"능력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승리자다. 그러나 상처 입은 승리자다. 나는 그 사실을 내 학생들을 보고 알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불타는 고리를 뛰어넘어 통과하는 일을 거듭해 왔고,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분투하고 있다. "  -282p


"병리학적 상황을 넘어 심리학자들은 이 세대 대학생들의 보다 미묘한 정신적 문제점을 찾아냈다. '완벽주의'라는 숨은 전염병이다. 몇 년 동안이나 불안 속에 분투해 온 결과 젊은이의 마음은 약하디 약한 자부심, 그리고 부모, 교사, 입학 사정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냉혹한 한마디에도 산산조각 날 자의식으로 채워져 버렸다. 즉 "실적과 지위와 이미지만이 비이성적 생각이 의미 있는 게 되고 말았다." -283p


<<물질적 풍요로부터 내 아이를 지키는 법>>이라는 책에서 레빈은 "특권층 젊은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정신질환증후군"이라 부르는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심리학자들은 일촉즉발의 젊은이는 도시 빈민굴의 불우한 청소년들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미국에서 나타난 새로운 '일촉즉발의 젊은이' 집단은 부유하고 잘 교육받은 집안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겪은 경험은 이 나라 동 연령대에서 최고 수준의 절망, 약물의존, 불안 장애, 신체적 호소, 불행감등이었다.  -중략- 연구자들이 사회경제적 스펙트럼을 통틀어 동 연령대 아동들을 살펴본 결과, 가장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가진 아동들이 부유한 가정 출신임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모두가 지는 게임인 셈이다. 이에 샌덜 교수는 맺음말에서 이 게임을 다른 각도로 볼 것을 제시하면서, 진정한 공정에 대해서 말한다.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능력주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353p


즉 능력이 있다는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상당한 양의 운이 작용한다는 말이다. 인도 수드라 계급으로 태어나지 않은 점, 또 교통사고 같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은 점 등등.


이는 인생을 겸허히 살게 만들 수 있다. 누구나 갑자기 고아가 될 수도 있으며, 시한부 암에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공정이라는 착각 속에서, 치킨게임(특히 입시경쟁)을 하는 일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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