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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기생충'과 세계 영화의 통합

by 김형범

여러분,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 중 하나를 기억하시나요? 2020년 2월 9일, 할리우드의 돌비 극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날 밤, 한국어로 된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휩쓸었죠. 바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수상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할리우드의 오랜 벽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던 거죠.

34919_67998_0853.jpg 기생충(2019)_포스터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랫동안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축제로 여겨져 왔습니다. 외국어 영화들은 '국제영화상'이라는 한 부문에 갇혀있었죠. 하지만 '기생충'은 이 벽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그리고 국제영화상까지. 한국어로 된 영화가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4378637_PRu.jpg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장면

오스카 레이스 중에 어떤 기자가 왜 한국영화가 오스카상을 수상한 이력이 없냐는 질문에 봉준호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로컬 시상식이다." 이 한마디로 그는 할리우드의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정확히 꼬집었죠. 또 그는 "자막의 1인치 벽을 넘으면 더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화적 장벽,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면 얼마나 풍성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였죠.


이 사건은 할리우드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세계 영화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그들에게,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영화가 그들의 가장 큰 축제를 휘어잡은 겁니다. 이는 할리우드가 더 이상 영화계의 '유일한' 중심이 아님을 의미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할리우드의 몰락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라고 볼 수 있죠. 이제 할리우드는 더 넓은 세계와 소통하고, 다양한 문화와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기생충'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졌고, 아시아계 배우와 감독들의 활약도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할리우드 영화'와 '비할리우드 영화'를 구분 짓지 않는 시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모두가 함께 즐기고 감동할 수 있는 영화의 시대. '기생충'의 수상은 바로 이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겁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어떤 영화를 기대해야 할까요? 더 이상 할리우드만의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의 다양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서로 만나 새로운 감동을 만들어내는 영화들. 우리는 지금 그런 흥미진진한 시대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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