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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Nov 06. 2024

실사 영화 [백설공주]와 당사자성 논란

다양성 추구 속 놓친 또 다른 평등의 문제

디즈니가 실사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백설공주 역할로 라틴계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영화는 인종적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전통적으로 백인 이미지로 고착된 백설공주 캐릭터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점에서 디즈니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고전적인 이미지와 다르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일곱 난쟁이' 캐릭터에서 당사자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작 왜소증 배우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는, 보다 근본적인 평등의 문제가 여기에 숨어있습니다.

백설공주 애니메이션(좌)와 실사판 백설공주(우)

이번 논란은 왜소증 배우이자 왕좌의 게임의 배우인 피터 딘클리지의 발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딘클리지는 난쟁이 역할이 왜소증을 가진 배우들에게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고 비판하며, 그런 배역을 맡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혀왔습니다. 디즈니가 백설공주 캐스팅에서 다양성을 자랑하면서도 난쟁이 캐릭터의 전통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에 대해 그는 “위선적”이라고 표현하며 실망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의 발언 이후, 디즈니는 난쟁이 캐릭터를 다양한 체형과 인종의 배우들로 캐스팅했고, 이는 정작 왜소증 배우들에게 주어졌던 드문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딘클리지의 비판 이후 제작된 스틸컷에서는 다양한 배우들이 일곱 난쟁이 역할을 연기하는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하지만 예고편이 공개된 후 많은 사람들은 일곱 난쟁이들이 모두 CG로 표현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는 왜소증 배우들이 맡을 수 있었던 역할이 기술적으로 대체된 것이며, 그들만의 무대가 실질적으로 사라진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딘클리지의 발언이 긍정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왜소증 배우들에게는 중요한 기회를 빼앗는 모순적인 상황이 되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

실사판 백설공주 예고편에서 나온 일곱 난쟁이_과연 이 모습이 딘클리지의 말이 이행이 된 것일까?

이 사건은 왜소증 배우들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냅니다. 대부분의 역할에서 소수자들이 캐스팅될 기회가 적기 때문에, 난쟁이와 같은 캐릭터는 왜소증 배우들에게 희귀한 기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캐릭터들이 고정관념을 반영할 수 있지만, 다양한 개성과 성격을 지닌 일곱 난쟁이 캐릭터는 단순한 전형성을 뛰어넘어 다층적으로 재해석될 여지가 충분합니다. 이로써 왜소증 배우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무대가 확장될 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더 깊은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다양성이란 단순히 외모나 배경의 차이를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데 있습니다. 왜소증 배우들뿐만 아니라 특정 인종이나 신체적 특징을 가진 소수자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시각과 경험을 반영해 캐릭터를 표현할 기회를 얻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의 필수 요소입니다. 이는 곧 모든 소수자들이 자신을 대변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최근 영화 산업에서는 CG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표현 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이는 때로는 소수자 배우들의 배역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디즈니가 CG를 통해 난쟁이 캐릭터를 표현한 것은 예산과 제작 효율성 면에서는 유리했을 수 있지만, 정작 배우들이 자신만의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관객들 역시 CG와 실제 배우의 표현 사이에서 느껴지는 차이를 감지하며, 배우의 당사자성을 반영한 캐스팅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영화 제작에서는 외형적 다양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넘어서, 각 역할이 담고 있는 의미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당사자성은 단지 캐릭터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진정한 평등의 문제입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더 다양한 삶의 경험과 시각을 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다양성과 당사자성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영화 제작이야말로 예술적 가치를 창출하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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