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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Dec 10. 2024

장, 한국인의 삶을 맛으로 엮다

간장과 된장, 고추장이 전하는 전통과 이야기

조용히 감아둔 장독대의 뚜껑을 열면, 그 안에서 퍼져 나오는 짙은 향이 코끝을 스칩니다. 짭조름한 감칠맛의 간장, 구수한 된장, 칼칼한 고추장은 단순히 음식의 맛을 내는 조미료를 넘어 우리 밥상의 중심이자 한국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장을 담그고 발효하는 그 과정에는 한국인의 삶과 자연, 그리고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장 문화는 한국의 음식 문화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장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 기원을 살펴봐야 합니다. 장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사용된 발효 소스의 하나로, 고대로부터 음식의 간을 더하고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장은 단순한 소금물이나 양념을 넘어서, 메주라는 독특한 재료와 방식을 통해 간장과 된장, 그리고 고추장이라는 독창적인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메주를 활용한 장 담그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교해졌고, 장독대와 같은 발효 환경을 마련하며 한국만의 독특한 장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간장은 장의 액체 부분에서 얻어지며, 그 깊고 짭조름한 맛은 한국 요리의 기본을 이루는 중요한 재료입니다. 나물 무침부터 국물 요리까지 간장이 들어가지 않는 요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간장은 그 자체로 한국인의 밥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된장은 또 다른 고체 부분으로, 구수한 맛과 깊은 풍미를 더해주는 재료입니다. 찌개와 나물 요리에 사용되며, 그 맛은 단순히 음식의 간을 맞추는 것을 넘어, 우리가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시간을 담은 결실입니다. 그리고 고추장, 매콤한 맛과 향으로 한국 요리를 세계적으로 알린 장입니다. 고추가 한국에 전래된 이후 만들어지기 시작한 고추장은 간장의 짭조름함과 된장의 구수함, 그리고 고추의 매콤함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결과물로, 비빔밥이나 양념 요리에 빠지지 않는 재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이 단순히 음식의 맛을 내는 역할을 넘어서는 것은 그 담그는 과정과 유지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가을에 메주를 띄우고, 이듬해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키는 과정은 단순한 조리 과정을 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으로 평가됩니다. 장독대에 금줄을 치고, 매일 아침 뚜껑을 열어 볕을 쬐어주는 일은 단순히 발효를 돕는 것이 아니라 장을 통해 공동체 정신과 세대 간의 연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유네스코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유도 이처럼 장 담그기가 단순한 음식의 제작 과정을 넘어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는 중요한 문화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장 담그기 문화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장독대와 함께 전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간편한 공장제 장류가 많아졌지만, 직접 담근 장이 주는 깊은 맛과 전통을 잇는 의미는 변함없이 소중합니다.


장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음식을 넘어 자연과 시간, 그리고 사람을 이어주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그릇의 찌개 속에서 느껴지는 구수함, 나물 위에 뿌린 간장의 감칠맛, 비빔밥에 얹은 고추장의 매콤함은 모두 우리의 전통과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장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사람들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삶의 한 조각입니다. 장을 맛보는 순간, 우리는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함께 맛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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