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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Dec 09. 2024

수박, 치킨, 관짝밈…우리가 정말 사과해야 할까?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2024년, 한국 문학계는 그 어느 때보다 큰 감동과 환희로 가득 찼습니다. 바로 소설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문학 역사상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인터뷰와 일화도 자연스럽게 주목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잔잔한 울림과 감동을 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강 작가는 과거 결혼 후 아이를 낳을지 고민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는데, 그녀의 고민은 이랬습니다. "아이를 잔혹한 세상으로 데려오는 것이 옳은 일일까?" 당시 그녀는 주변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며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건넨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는데, 남편의 말은 이러했습니다.


"여름엔 수박이 달잖아. 그런 맛있는 걸 아이에게도 맛보게 하고 싶지 않아?"


이 말에 한강 작가는 문득 미소를 지었다고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여름의 수박이 달다는 건 분명한 진실로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아이에게 인생의 고통뿐만 아니라, 달콤한 수박의 맛과 같은 소소한 행복도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그녀의 결심을 바꾸게 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수박의 맛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만약, 이 이야기를 놓고 누군가가 "수박은 인종차별의 상징이니 이런 발언도 문제다"라고 비난한다면, 우리는 그 비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한국 사람들에게 수박은 그저 여름의 대표 과일일 뿐입니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냉장고에서 꺼낸 수박 한 통을 가족과 나눠 먹는 모습은 한국의 여름을 대표하는 풍경 중 하나입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잘라 주신 수박을 들고 마당에서 뛰어놀던 기억, 바닷가에서 먹는 차가운 수박의 맛은 한국인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수박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자급자족을 위해 수박을 재배했고, 이를 본 백인들은 흑인들을 "게으르고 더러운 존재"로 묘사하기 위해 수박을 고정관념의 상징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흑인과 수박을 연결시키는 이미지 자체가 인종차별의 요소로 간주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논란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한국에서의 수박과 미국에서의 수박의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한국에서 수박은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이자 행복과 즐거움의 상징입니다. 수박을 떠올릴 때, 한국인은 해변, 피서지, 가족의 웃음소리를 떠올립니다. 한강 작가의 이야기 속 수박도 "삶의 달콤함과 기쁨"을 상징하는 매개체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수박은 인종차별의 상징"이라고 비난한다면, 우리는 그 비난을 수용해야 할까요? 한국의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이 누군가에게는 차별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수박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수정해야 하는 걸까요?


비슷한 논란이 치킨에서도 일어납니다. 미국에서는 프라이드 치킨이 흑인 비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노예제 시대에 백인들은 닭의 몸통 부위만 먹고, 날개와 다리 같은 잔여 부위를 흑인 노예들에게 주었고, 흑인들은 이 부위를 튀겨 먹는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오늘날 미국에서는 흑인과 치킨을 연결짓는 이미지가 인종차별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치킨은 그와 전혀 다릅니다. 한국의 치킨은 1970년대에 독자적으로 발전한 한국의 음식 문화입니다. 양념치킨과 간장치킨이 탄생하며 전 세계로 퍼진 한국의 자부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의 치킨은 K-푸드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치킨은 맛있고 즐거운 음식입니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치킨을 나눠 먹는 것은 일상의 행복이자 문화적 체험입니다. 치킨을 먹는 행동 자체에 인종차별의 의도가 전혀 없으며, 한국의 치킨 문화는 독립적인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외국인이 한국 치킨에 대해 "치킨은 흑인 비하의 상징이니 먹지 말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비난을 수용해야 할까요? 한국의 치킨 문화는 한국의 독자적 의미를 가지며, 누군가의 해석에 의해 부정될 이유가 없습니다.


의정부고등학교의 졸업사진 사건은 이 논의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당시 학생들은 인터넷 밈으로 전 세계에 유행했던 "관짝댄스"를 패러디했습니다. 관짝댄스는 가나의 전통 장례문화로, 죽음을 축하하며 관을 들고 춤을 추는 모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의정부고 학생들은 단순히 인터넷 밈을 재현했을 뿐이었으나, 논란이 야기가 되었고 사람들은 이를 블랙페이스를 이용한 인종차별로 몰아갔습니다. 블랙페이스란, 흑인을 조롱하기 위해 백인 배우들이 흑인 분장을 한 연극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그러나, 관짝댄스는 미국의 문화가 아니라 가나의 전통입니다.


왜 한국의 학생들이 미국의 기준으로 비난받아야 할까요? 한국 학생들이 재현한 것은 가나의 전통 문화였지, 흑인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스탠다드는 미국의 기준일 때가 많습니다. 이 기준이 수박, 치킨, 관짝댄스 논란에 적용되면서 우리는 "글로벌 스탠다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국제적 기준이란 단 하나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국제화는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해답의 공존"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면서도 다른 문화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질 때입니다. 우리의 수박, 치킨, 관짝댄스를 지키되, 서로의 고통과 역사를 이해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국제화의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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