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 체계에 숨겨진 사람들의 흔적
뉴스 속 일기 예보를 볼 때마다 등장하는 익숙한 기호 '℃'와 '℉'. 우리는 보통 '섭씨 몇 도'라고 말하고, 미국 드라마에서는 '화씨 몇 도'라고 말하는 장면을 자주 접합니다. 그런데 이 '섭씨'와 '화씨'라는 단어가 김씨, 이씨 같은 성씨처럼 들리지 않나요? 혹시 온도를 만든 사람이 '섭씨', '화씨'라는 성을 가졌던 걸까요?
놀랍게도, 그 추측은 크게 틀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섭씨는 스웨덴의 물리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에서, 화씨는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Daniel Gabriel Fahrenheit)에서 유래했습니다. 다만 이들이 직접 '섭씨'와 '화씨'라는 이름을 붙인 건 아닙니다. 이 용어들은 서양의 과학 지식이 동아시아로 전파되던 시절, 중국에서 그들의 이름을 음차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셀시우스를 攝爾思(섭이사)로, 파렌하이트를 華倫海(화륜해)로 표기했는데, 이것이 각각 '섭씨(攝氏)'와 '화씨(華氏)'로 줄어들며 오늘날의 명칭이 된 것입니다. 이 과정이 마치 김씨, 이씨처럼 사람의 성을 따온 것처럼 보이게 만든 거죠.
온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먼저 등장한 것은 화씨 온도입니다. 18세기 초, 파렌하이트는 얼음, 물, 염화암모늄을 섞어 영하의 온도를 만들고 이를 기준으로 화씨 0도로 정했습니다. 물이 어는 온도를 32도, 사람의 체온을 96도로 설정하며 그 사이를 180등분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화씨 온도는 당시 일상생활에 꽤 유용했습니다. '춥다'고 느낄 만한 날씨는 0도 이하, '덥다'고 느낄 만한 날씨는 100도에 가깝게 설정했으니, 날씨의 추위와 더위를 숫자로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화씨의 편리함은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불편함으로 바뀌었습니다. 냉장고의 냉동실 온도는 화씨 0도보다 낮고, 전자레인지의 온도는 100도를 훌쩍 넘기니, 애초에 파렌하이트가 고안한 "0도에서 100도 사이의 직관적 감각"이 잘 들어맞지 않게 된 것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는 더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섭씨 온도를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섭씨 온도는 1742년, 파렌하이트의 화씨 온도보다 18년 뒤에 등장했습니다. 안데르스 셀시우스는 물의 어는 점을 0도, 끓는 점을 100도로 정하고 그 사이를 100등분했습니다. 물이 얼고 끓는 지점을 기준으로 하니 개념이 간단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온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화학적 혼합물도 필요하지 않았으니 과학자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훨씬 명료했습니다.
이러한 단순함 덕분에 섭씨 온도는 세계 표준이 되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기온이나 과학 실험에서 섭씨 온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 마셜 제도 같은 일부 국가는 여전히 화씨 온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화씨 온도의 직관성을 강조하며, 쉽게 바꾸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미국인들은 "화씨 100도는 더운 날씨, 0도는 추운 날씨"라는 감각이 익숙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사용하는 섭씨 온도와의 차이 때문에 기온을 설명할 때마다 매번 화씨와 섭씨를 변환해야 하는 불편함이 발생합니다.
결국, 섭씨와 화씨의 차이는 단순히 기호의 차이가 아니라, 과학자의 철학과 문화적 선택이 결합된 산물입니다. 파렌하이트는 사람들이 "마이너스 온도"에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화씨 0도를 설정했습니다. 반면 셀시우스는 물의 어는 점과 끓는 점이라는 명확한 자연 현상을 기준으로 삼아 과학적 정확성을 높였습니다. 두 사람의 접근 방식의 차이가 현재의 온도 체계를 만들었고, 이 두 온도 체계를 선택한 국가들의 문화와 생활 방식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날씨 예보에서 '섭씨 10도'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안데르스 셀시우스를 떠올리고, 미국 드라마 속 "오늘 기온이 80도야"라는 대사를 들을 때마다 다니엘 파렌하이트를 떠올리는 셈입니다. 어쩌면 기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과거 과학자들의 이름을 매일 불러주는 작은 인사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