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가 만든 색의 고정관념을 넘어서
사람의 피부색을 보며 우리가 떠올리는 인종의 구분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일까요? 백인, 흑인, 황인이라는 분류는 마치 과학적 진실처럼 여겨지지만, 그 기원과 맥락을 살펴보면 단순히 생물학적인 차이를 넘어서는 서구 사회의 시각이 깊게 반영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은 피부색에 담긴 과학적 이야기와 함께, 이를 둘러싼 역사적·문화적 고정관념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는지 탐구해 보겠습니다.
피부색은 인간이 살아온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진 진화의 산물입니다. 자외선이 강한 적도 지방에서는 멜라닌의 양이 많아져 피부가 짙어졌고, 자외선이 약한 지역에서는 비타민 D 합성을 위해 멜라닌의 양이 줄어들며 피부가 옅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진화적 과정은 사람들의 사고 속에서 단순히 생물학적 특성으로 남지 않았습니다. 피부색은 점차 문화적·사회적 의미를 부여받으며 특정 집단을 구분하고 평가하는 기준으로 변모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흔히 '백인'이라 불리는 유럽인의 피부색이 실제로는 하얗다기보다 분홍빛이나 붉은빛을 띠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멜라닌이 적어 피부 아래의 혈관이 드러나면서 생기는 특징입니다. 반면, 동아시아인의 피부는 멜라닌 분포가 비교적 균일하고, 자외선 차단을 위해 적당한 농도를 유지하면서도 더 맑고 하얗게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16세기 유럽의 탐험가들은 동아시아인의 피부를 '백인처럼 하얗다'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유럽 중심의 분류학에서 동아시아인은 '황색'이라는 틀에 가두어졌고, 유럽인은 스스로를 '백색'으로 정의하며 이상적 피부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백인, 흑인, 황인이라는 분류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유럽 사회가 만든 상징적 구분이었습니다. 18세기 유럽의 분류학자들은 인간을 피부색으로 나누며 유럽인을 '백색', 아시아인을 '황색', 아프리카인을 '흑색'으로 분류했습니다. 이 체계는 과학적 발견이라기보다는 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한 인위적인 체계였습니다. 백색은 문명과 고상함을 상징하고, 황색은 이국적이며 신비로운 동시에 모호한 위치에 놓였습니다. 흑색은 문명화되지 않은 야만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도구가 되었죠.
그렇다면 왜 이런 분류가 가능했던 걸까요? 이는 피부색이라는 생물학적 특성이 서구 제국주의 시대에 권력과 우월성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피부색의 다양성을 단순화하고 위계를 만드는 것은 서구 중심의 가치관을 정당화하기 위한 편리한 도구였습니다. 이런 시각은 19세기의 황화론으로 이어졌고, 동아시아인을 위험한 존재로 묘사하며 서구의 지배 논리를 강화했습니다.
결국, 피부색에 대한 고정관념은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서구 사회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산물입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다양성과 평등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피부색은 단순한 환경 적응의 결과일 뿐, 그 자체로 우열을 가리거나 사람을 구분할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피부색을 단지 외형의 차이로 볼 것이 아니라, 그것에 덧씌워진 편견과 고정관념을 함께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나면, 피부색은 더 이상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왔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