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는 현대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며, 깊이 있는 주제와 아름다운 영상미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2023년에 발표된 그의 최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또다시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작품은 개봉 즉시 일본 박스오피스를 석권했으며, 해외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더불어 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며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_포스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년 마히토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미야자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 해석합니다. 작품 속 '세계를 세우는 것'은 미야자키의 예술 세계를 상징하며, 주인공이 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에 대한 미야자키의 메시지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해석은 작품의 표면적 내용과 잘 부합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더 깊은, 그리고 어쩌면 의도치 않은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전쟁 책임과 역사 인식에 관한 것입니다. 작품의 중심에 있는 '탑'은 일본의 근대화와 제국주의적 팽창을 상징합니다. 이 탑이 "메이지 유신 직전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설정은 일본의 근대화가 마치 하늘에서 주어진 것처럼 묘사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탑 안의 세계는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 몰락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본은 주체적인 행위자라기보다는 '시대에 휩쓸린' 피해자로 그려집니다. 탑의 붕괴, 즉 제국의 몰락은 '탑의 돌이 지닌 악의' 때문이라고 설명됩니다. 이는 전쟁 책임을 외부의 요인으로 돌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일본 사회에 만연한 '피해자 코스프레' 현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피해자 코스프레'란 가해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피해자로 포장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아시아 여러 국가를 침략하고 식민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자신들을 전쟁의 피해자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먼저, 전쟁 당시 일본은 천황제 국가였습니다. 전후 많은 일본인들은 "우리는 천황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개인의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또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피해를 강조함으로써, 일본의 가해 행위보다는 피해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의 교과서는 종종 자국의 침략 행위를 축소하거나 미화하는 경향이 있어, 많은 일본인들이 자국의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전쟁의 책임을 일부 군국주의자들이나 외부 세력의 압박 탓으로 돌리는 경향도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훌륭한 예술 작품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은 일본 사회의 역사 인식, 특히 '피해자 코스프레' 현상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예술가의 개인적 견해를 넘어, 일본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 박힌 인식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작품을 감상할 때, 단순히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역사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와 화해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일본 사회, 그리고 우리 모두가 역사를 직시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