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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 호랑이에게 사로잡힌 혼령

호환의 공포가 만들어낸 전설

by 김형범

깊은 산속 어둠이 깔린 밤,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올 때 누군가의 흐느낌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면 그것은 단순한 바람 소리가 아닙니다.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고 떠도는 혼령, 창귀가 울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창귀는 단순한 귀신이 아닙니다. 그는 호랑이의 노예가 되어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나선다고 합니다.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이 생전의 기억을 유지한 채 호랑이를 위해 길을 안내하는 존재가 된다는 전설은 동아시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중국에서는 ‘위호작창’이라는 고사성어가 이를 반영하는데, 이는 호랑이를 위해 창귀가 되어 악행을 돕는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조선 시대 문헌에서도 창귀는 단순한 망령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박지원의 『호질』에서는 창귀가 호랑이에게 붙어 행동을 돕는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희생자는 굴각이 되어 호랑이의 겨드랑이에 붙어 집을 안내하고, 두 번째 희생자는 이올이 되어 호랑이의 광대뼈에 붙어 함정을 피하도록 돕습니다. 세 번째 희생자는 육혼이 되어 호랑이의 턱에 붙어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속삭입니다. 이는 호랑이가 한 번 인간을 먹으면 점점 더 대범하게 인간을 사냥하게 된다는 생태학적 현상을 반영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맹수가 인간을 사냥 대상으로 삼으면 이를 멈추기 어렵습니다.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식인 맹수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한 마리의 호랑이나 사자가 수십, 수백 명을 해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한 번 인간을 손쉬운 먹잇감으로 인식하면, 계속해서 인간을 목표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전근대의 사람들에게는 호랑이가 함정을 피해가며 인간을 집요하게 사냥하는 것이 신비롭고도 두려운 현상이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창귀라는 개념이 만들어져 희생자가 또 다른 희생자를 불러온다는 공포스러운 이야기가 전승되었습니다.


창귀를 막기 위한 방법도 여러 가지로 전해집니다. 창귀는 신맛을 좋아한다고 하여 매실이나 소귀나무 열매를 뿌려 두면 거기에 정신이 팔려 길 안내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창귀는 늘 서럽게 울며 사람들을 홀린다고 전해지는데, 만약 누군가 이유 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거나 흐느낀다면 창귀에 씌인 것이라 하여 그를 멀리해야 한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창귀를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호랑이를 처치해야 한다는 믿음도 강했습니다. 창귀의 희생자가 된 집안에서는 장손이 나서서 호랑이를 잡고, 그 심장을 먹어 복수를 완성해야 창귀가 해방된다고 합니다. 이 같은 풍습은 조선 시대의 여러 기록에도 남아 있으며, 실제로 호환이 잦았던 지역에서는 호랑이 사냥이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또한, 창귀가 희생자를 찾아 나선다는 믿음으로 인해 호랑이에게 희생된 집안과는 혼인을 맺지 않는다는 금기가 존재하였습니다. 호환을 당한 가족이 또 다른 호환을 불러온다는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금기는 단순한 미신이라기보다,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위험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창귀의 존재는 단순한 전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충돌하면서 생겨난 공포의 기록이며, 생태적 경험이 신화로 변형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호랑이를 두려워하고, 호환을 피하려 애쓰던 흔적이 창귀라는 이야기 속에 녹아 있습니다. 우리는 창귀를 통해 과거 사람들의 공포와 생존 본능을 엿볼 수 있으며, 동시에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대응해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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