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리다 -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재발견
역사 속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이 남긴 작품만큼이나 찬사를 받으며 기억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시대와 사회가 가진 편견과 무지로 인해 평가받지 못한 채 잊혀지거나, 잘못된 평가로 묻혀버리기도 합니다. 특히 여성 예술가들에게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은 예술가, 힐마 아프 클린트를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는 현대 추상 미술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든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1862년 스웨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부터 예술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스톡홀름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화가로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초기에는 전통적인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리며 활동했지만, 점차 영적인 세계와 신지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작품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1906년, 클린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자연의 형태, 기하학적 도형, 상징 등을 결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그녀의 대작 시리즈인 "열 점의 대형 그림"은 세상을 떠난 여동생을 그리워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신지학과 같은 영적 탐구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고, 클린트 역시 그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시대를 너무 앞서간다고 생각하여, 사후 20년이 지나기 전에는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로 인해 클린트의 작품은 오랜 시간 동안 창고에 보관된 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그녀의 작품들이 대중에게 공개되기 시작했고, 그 독창성과 선구성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그녀의 회고전은 6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모으며 미술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사례는 예술의 평가와 기록 과정에서 성별과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클린트보다 늦게 추상을 시작한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은 현대 추상 미술의 선구자로 인정받았지만, 클린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술사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이 오늘날 재평가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독창성과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감각 덕분입니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예술 세계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존의 예술사 기록을 수정하고, 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다양한 목소리가 인정받을 수 있는 공정한 예술 환경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술은 그 자체로 진실하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술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시선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잊혀진 예술가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합니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예술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