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영어인가

표준 영어에 숨겨진 인종과 계층의 선별 기준

by 김형범

영어를 배우다 보면 ‘정확한 영어를 써야 한다’, ‘표준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방송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의 말투, 시험 문제 속 대화문, 교과서 속 문장을 ‘모범적인 영어’로 여기게 되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표준 영어’라는 것은 과연 누구의 말투일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그것을 ‘표준’이라 불러야만 했을까요?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점은, 영어 구사의 표준이라 여기는 발음이 누구의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영어는 단일한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쓰이고 있고, 그에 따라 발음 역시 제각각입니다. 영국식, 미국식, 호주식, 캐나다식 영어는 물론이고, 필리핀, 인도, 나이지리아처럼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에서도 발음과 표현 방식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직 ‘한 가지 영어’만이 정답인 것처럼 여겨왔습니다. 바로, 미국식 영어—그 중에서도 특정 지역과 계층의 언어입니다.


미국에서 ‘Standard English’, 특히 ‘General American English’라고 불리는 영어는 실제로는 아주 특정한 사람들의 언어에서 출발합니다. 이 말투는 대체로 20세기 중반, 미국 동북부 지역에서 태어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백인 중산층 남성의 언어 습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신뢰받는 계층으로 간주되었고, 그들의 말투가 방송, 교육, 행정 언어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결과, 다양한 억양과 표현을 가진 수많은 미국인들의 말은 이 기준에서 벗어난 ‘비표준’으로 분류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언어 차별로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흑인 영어로 불리는 AAVE(African American Vernacular English)는 독자적인 문법 체계를 갖춘 일관된 언어적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틀린 영어’나 ‘비속어’처럼 취급받습니다. 히스패닉 영어, 남부 억양, 뉴욕 억양 등도 ‘고쳐야 할 말투’처럼 간주되며, 그 사람의 학력, 신뢰도, 심지어 인격까지 추정하는 데 사용되곤 합니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의 말투를 들었을 때 그것이 ‘표준 영어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는 이미 특정한 언어 계급에 익숙해져 있는 셈입니다.


이런 현상은 단지 언어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표준 영어는 채용 면접, 전화 응대, 방송 출연, 학교 수업 등 다양한 상황에서 일종의 ‘사회적 통행증’처럼 작용합니다. 표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무능력해 보이거나, 교육을 덜 받은 사람처럼 여겨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인종적 편견과 결합되어, 특정 집단이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문제를 낳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표준 영어가 마치 기술처럼 ‘배우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언어는 오랜 시간 사회적으로 ‘가장 믿을 만한 계층의 말투’를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 영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단지 언어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회적 위치로 진입하기 위한 ‘문화적 통과 의례’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잃어버리거나, 스스로를 낮추며 교정당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의 표준 영어는 겉으로 보기에는 중립적이고 기능적인 언어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인종적, 계층적 선별 기준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표준’이라는 단어가 붙은 순간, 그 언어가 마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적 권력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지 문법을 익히고 단어를 외우는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영어를 배우고, 어떤 억양을 닮아가려는지를 인식하는 순간, 그 안에 숨어 있는 권력 구조와 차별의 역사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언어를 깊이 있게 배우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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