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상의 마법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의지의 승리'를 통해 본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

by 김형범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영상에 노출됩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고, 출근길에는 전광판 광고를 보며, 퇴근 후에는 TV나 유튜브로 여가를 즐깁니다. 이처럼 영상은 우리 일상의 공기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이 '영상'이라는 공기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요?

sapak19750849_Crowded_seoul_subway_car_during_rush_hour_multi_3615f46e-1dfb-411c-b3f2-8840c34244d4_3.png 우리는 미디어에 중독되어 있다. (미드저니 이미지)

1935년에 제작된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 영화 '의지의 승리'는 영상의 강력한 힘과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의 사상을 조작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레니 리펜슈탈 감독의 이 영화는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당 전당대회를 다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나치즘을 미화하고 히틀러를 신격화하는 강력한 프로파간다 도구였습니다.

Ff6Ooi0I_J0eXJzUgQDvKFSHVolSPSUNFTJSV20tDEycEQ2PFp7QeIqf0K6mcFjrJQT9Doo_WRECqRc0-n2tG6Ti8DIQnXqw5B59yw-Jg8iuJ7oiqYTWFQKWUgOH2FF8cdPc95k3otUAeB3Ui7ZW3A copy.jpg 영화 의지의 승리(1935)_포스터

'의지의 승리'는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장면들의 연속입니다. 구름 위에서 내려오는 듯한 히틀러의 모습, 정연하게 정렬된 수만 명의 나치당원들, 끝없이 펄럭이는 깃발들. 이 모든 요소들이 웅장한 음악과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나치 독일의 힘과 단결을 과시합니다. 리펜슈탈의 혁신적인 촬영 기법과 편집 기술은 이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저각도 촬영으로 히틀러를 우러러보게 만들고, 군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하며,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으로 장면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C9408-11.jpg 대규모 군중이 히틀러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

'의지의 승리'의 진정한 위험성은 그것이 나치즘의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대신, 영화는 감성적이고 미학적인 접근을 통해 관객들의 무의식에 나치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줍니다. 히틀러는 영웅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 묘사되고, 나치당은 질서와 단결의 상징으로 그려지며, 독일 국민들은 열광적이고 행복해 보입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관객들의 논리적 판단을 우회하여 직접적으로 감성에 호소합니다.


이처럼 '의지의 승리'는 영상이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미화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의 '의지의 승리'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선거 영상, 기업들의 광고, 심지어 우리가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모든 영상은 특정한 메시지와 가치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영상의 힘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주체적인 영상 읽기' 능력입니다. 주체적인 영상 읽기란 영상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 영상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가?", "어떤 기술적, 미학적 요소들이 사용되었으며, 그것들은 어떤 효과를 노리는가?", "영상이 보여주는 것은 현실의 전부인가, 아니면 선택적으로 편집된 일부인가?", "영상 속 메시지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관점은 무엇일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주체적인 영상 읽기 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는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생존 기술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지의 승리'를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현대의 모든 영상 미디어를 더 현명하게 소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미디어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우리의 생각을 확장하는 주체적인 개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상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예리한 눈과 더 깊은 사고입니다. 주체적인 영상 읽기를 통해, 우리는 영상의 마법에 걸리지 않고 그 힘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의지의 승리'는 우리에게 경고하는 동시에 희망을 줍니다. 그것은 영상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 힘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몰입은 양날의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