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장에서 밀려나는 사람들, 그리고 기술이 바꾼 짝짓기의 법칙
우리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말을 인간적인 언어로 포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점점 더 기계화된 연애 시스템 속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만남’의 구조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속히 이동하면서,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고, 교감하고, 냄새 맡고, 웃음을 공유하는 경험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연애 시장’이라는 무형의 거래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최근 등장한 개념 중 하나인 ‘포르쉐 폴리거미(Porsche Polygamy)’는 온라인 데이팅 플랫폼이 만들어낸 극단적인 연애 불평등 현상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말입니다. 마치 포르쉐 한 대를 여러 사람이 돌려 쓰듯이, 상위 10%의 매력적이고 경제적 자원이 풍부한 남성에게 모든 여성의 관심이 집중되며, 나머지 90%의 남성은 사실상 연애 시장에서 배제되는 구조를 뜻합니다.
이는 단순히 ‘인기 많은 남성’이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구조는 데이팅 앱이라는 알고리즘 기반 매칭 시스템이 가져온 극단적인 집중화 현상, 즉 연애의 승자 독식화를 상징합니다.
여성은 진화적으로 임신과 양육에 훨씬 더 많은 위험과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짝을 고를 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게 됩니다. 미국의 온라인 데이팅 플랫폼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부, 사회적 지위, 외모 등 특정 조건을 갖춘 소수의 남성에게만 관심을 보입니다. 그 결과, 많은 남성들은 매칭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연애에서 소외됩니다. 실제로 미국 통계에 따르면, 30세 이하 남성 세 명 중 한 명은 지난 1년간 단 한 번도 성적 접촉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모태솔로’ 현상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연애와 성적 교류는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결합과 유대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 유대가 단절된다는 것은 곧 사회적 고립과 해체를 의미합니다. 연애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고, 이는 우울감, 분노, 혐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고립된 젊은 남성들은 여성 혐오, 음모론, 극단주의 사상에 빠질 위험이 높아지고, 결국 사회의 균열을 촉진하는 요소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미국만큼 극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경향이 서서히 감지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비혼’, ‘모태솔로’, ‘연애 포기 선언’과 같은 현상이 점점 더 흔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데이팅 앱은 한국에서도 이미 일상화되었으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상위 10~20%의 남성에게만 기회가 몰리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앱에서의 성공은 소득, 직장, 외모, 거주 지역 등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며, 더 이상 성격이나 유머, 따뜻함 같은 인간적인 요소는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데이팅 앱이 좋은가 나쁜가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인간이 서로를 직접 만나고, 표정을 살피며, 냄새를 맡고, 말투나 웃음 속에서 정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점차 퇴화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화면을 통해 사랑을 만나고, 알고리즘에 의해 짝을 고르게 된 순간부터, 우리는 점점 생물학적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결국 느끼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사랑을 선택하고, 소비하고, 필터링하고, 스와이프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랑이 더 이상 냄새나 분위기로 기억되지 않고, 픽셀과 데이터로 구분되는 지금,
과연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