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남과 건어물녀가 말하는 현대의 연애 풍경
2000년대 중반, 일본 사회에 '초식남'과 '건어물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 잠깐의 유행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징후는 사람들은 더 이상 특별한 신조어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일상에 녹아들어간 용어가 되었죠. 사랑은 더 이상 삶의 전제조건이 아니며, 연애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치 혹은 선택지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 결혼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예외가 아닙니다. '초식남'과 '건어물녀'는 그런 변화를 가장 먼저 보여준 상징이었습니다.
초식남은 2006년 컬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가 처음 명명한 말로, 연애나 성적 관계에 큰 관심이 없고, 능동적으로 구애하지 않는 젊은 남성을 지칭합니다. 이들은 감수성이 섬세하고, 자기계발이나 취미 생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통적 남성상과는 거리를 둡니다. 반면, 건어물녀는 2007년 드라마 ‘호타루의 빛’을 통해 대중에게 각인된 개념으로, 퇴근 후에는 사회생활의 모든 피로를 내려놓고 집에서 홀로 휴식을 취하며 연애를 외면하는 여성상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연애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에 쏟을 에너지와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일본 사회의 장기 불황, 고용 불안정, 고립된 도시 생활, 그리고 경쟁 대신 평화를 선택한 가치관의 변화가 깔려 있습니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남성에게 요구되던 경제력과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점점 무거운 짐이 되었고, 여성 또한 결혼을 통해 안정된 삶을 확보하는 기대보다는 자신의 커리어와 자유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연애와 결혼이 점차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인식되면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리듬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반드시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초식남도 건어물녀도 “기회가 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지만, 그 기회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나서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수동성은 게으름이 아니라, 연애를 둘러싼 과도한 사회적 기대와 스트레스에서의 방어적 선택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을 우선순위에서 내린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때때로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초식남은 남자다움을 상실한 존재로, 건어물녀는 개인주의에 빠진 이기적인 여성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고 있는 개인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낙인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과거의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랑조차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세대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비혼, 비연애 선언, 모태솔로와 같은 말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일본이 먼저 겪은 흐름 속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데이팅 앱이 일상화되고, 스펙이 매력을 대신하는 시대에, 초식남과 건어물녀의 등장은 단지 일본적인 현상이 아닌,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교차하는 동아시아 도시 사회의 공통된 문제이자 질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사랑 없이 얼마나 더 잘 살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삶은, 우리 모두가 정말 원하는 삶일까요?
우리는 지금, 생존을 위해 사랑을 미루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