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커피 하나 시키는데 왜 이렇게 어렵죠?

발음이 아니라 억양과 문맥의 차이, 그리고 구조적 언어 습관에 대하여

by 김형범

블랙커피 하나 시키는데 주문창 앞에서 몇 번을 말해야 했다.

미국 여행 중, 혹은 유학이나 출장 중 영어로 뭔가를 말했는데, 상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Sorry?”라고 되물었을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 그런 경험, 아마 한두 번쯤은 다들 있을 것이다.

그게 딱 요즘 화제가 된 유튜브 채널 ‘올리버쌤’ 영상 속 이야기다. 한국인 아내가 미국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블랙커피를 주문하려는데, 직원들이 못 알아듣고 계속 되묻는다. 남편인 올리버쌤이 대신 말해주는 일 없이, 아내는 끝내 자력으로 주문에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번 위축되고 주눅이 든다.
“내가 말한 게 그렇게 이상했나…?”

https://youtu.be/OI6r5B0wNk0?si=0e1kddOP7l71KfLy&t=167


단어는 맞는데 왜 못 알아들을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제는 ‘발음’이다.
“내 발음이 안 좋아서 그런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발음보다 억양(intonation)과 리듬(rhythm)이 더 큰 문제다.

예를 들어 ‘Black Coffee’라는 단어를 우리는 정직하게 ‘블랙 커피’라고 발음하지만, 원어민들이 듣기엔 너무 딱딱하고 어색한 리듬으로 들린다.
미국식 억양으로는 "블래↘ 커피↗"처럼 리듬이 물 흐르듯 흘러야 한다. 음절 하나하나를 힘줘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강세와 흐름이 맞아야 그 단어가 그들의 귀에 "익숙한 영어"로 들린다.

이건 ‘맥도날드’를 ‘믹더널즈’라고 읽는 것과도 비슷하다.
우리는 일본식 ‘마그도나르도’를 이상하게 느끼지만, 정작 미국인에겐 ‘맥도날드’조차도 익숙하지 않은 억양이면 이해가 안 된다.


그럼 이게 인종차별일까?

반복적으로 못 알아듣고, 무표정한 반응이 이어지면 당연히 차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어떤 경우는 똑같이 발음이 이상한 백인 관광객에겐 웃으면서 응대하면서, 아시아인에겐 차갑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모든 상황을 ‘차별’이라고 단정짓기 전에,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들이 정말 차별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언어 구조와 문화의 차이 때문일까?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 문맥 vs 구조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한국어와 영어는 애초에 작동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어는 문맥 중심 언어다.
많은 정보를 생략해도, 말하는 사람의 표정, 상황, 전후 맥락만으로도 의미를 유추하는 데 익숙하다.
“그거요.” “있잖아요, 어제 그거.” 같은 말을 해도 한국인은 이해한다. 머릿속에서 퍼즐을 맞춰주는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어는 문장 구조 중심 언어다.
주어, 동사, 목적어가 명확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 언어다.
"Black Coffee."라는 단어만 떨어뜨렸을 때, 그 억양이나 문장 구조가 어색하면 그들은 "아, 커피를 말하는구나"라는 판단 자체를 못 하게 된다.

이건 차별이라기보단 언어 습관의 차이이고, 우리가 영어권에서 겪는 의사소통의 벽은 상당 부분 이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위축되지 말자

우리는 종종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자책한다.
반대로, "쟤 왜 나를 무시하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둘 다 절반만 맞다. 문제는 당신의 잘못도, 상대의 악의도 아닐 수 있다.

그저 익숙하지 않은 억양과 문장 구조가 소통을 어긋나게 만든 것일 뿐이다.

이럴 땐 위축되기보다, "아, 이건 억양 문제구나"라고 인지하고 리듬을 바꿔 말해보는 연습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들이 못 알아듣는 건 당신의 영어가 엉망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청취 경험이 당신 억양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어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다

‘외국어는 틀리면서 배우는 것’이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중요한 건 발음 하나하나보다, 관계 맺으려는 태도와 맥락을 이어가는 감각이다.
그리고 그건 반복된 민망함을 뚫고 나와야만 얻을 수 있다.

블랙커피 하나 시키는데 이렇게 많은 걸 배우게 될 줄이야.
다음에 또 못 알아들으면, 한 번 더 말하면 된다.
그리고 이번엔 리듬을 조금 바꿔서 말해보면, 의외로 단번에 통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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