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서 왜 기훈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줬나

현장에서 피어난 배우의 놀라운 창의력

by 김형범

[고양이를 구하라]는 작법서적으로 유명한 책입니다. 제목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귀여운 고양이가 매달려 있는 표지 사진도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비록 제목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있어 '고양이를 구하라'는 중요한 첫 단추라 할 수 있죠.

[고양이를 구하라]는 관객이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입니다. 고양이를 구하는 행위를 통해 주인공의 따뜻한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호감을 얻게 되는 것이죠. 작법서에서는 반드시 고양이일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건 주인공이 호감을 얻기 위해 어떤 행동을 보여주느냐는 거죠. 심지어 나쁜 성격의 주인공일지라도 이런 장면을 넣으라고 조언합니다.


Savethecat1 copy_upscayl_5x_ultramix_balanced.png 작법서 [고양이를 구하라]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오징어 게임'에서도 이런 장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 성기훈은 백수에 노모의 돈까지 가져다 경마에 쓰는 인물입니다. 이혼 후 엄마에게 맡긴 아이의 생일 선물조차 사줄 형편이 못 됩니다. 당연히 성기훈은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주기 어려운 인물이죠. 아이 생일 선물 살 돈마저 다른 데 쓰려는 장면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주인공을 응원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그저 주인공이기에 응원할 뿐이죠.


그런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기훈은 길고양이와 마주칩니다. 그리고 방금 전 생선가게에서 산 생선을 고양이에게 나눠줍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문득 [고양이를 구하라]가 생각났습니다. 노골적으로 작법서의 내용을 활용한 거죠. 작가가 의도적으로 세팅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시청자들이 주인공을 응원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정말 영리한 설정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오징어 게임' 코멘터리를 보니 이 장면은 감독이 아닌 성기훈 역의 배우 이정재가 제안했다고 하더군요. 순간 머리가 띵 했습니다. 감독이 아닌 배우의 제안이라니요!


알고 보니 이정재는 성기훈을 연기하면서 초반에 비호감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득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사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길고양이에게 생선을 나눠주는 장면을 넣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네요. 이정재가 작법서를 봤을 리는 만무하죠. 오랜 연기 경험에서 우러나온 촉이 그런 제안을 하게 만든 겁니다.


저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좋은 작품은 모두가 힘을 보태 완성해나가는 것이구나 싶었죠. 그리고 배우뿐 아니라 오랜 시간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필요한 장면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영화 현장에는 배우 외에도 많은 스태프들이 있습니다. 촬영, 조명, 의상, 분장, 미술, 소품은 물론 카메라 움직임을 담당하는 그립과 지미집, 제작 전반을 관리하는 제작부, 배우와 스태프 간 소통을 중재하는 연출부 등 각자의 분야에서 프로 의식을 갖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합니다.


영화뿐 아니라 세상 모든 분야에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묵묵히 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프로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엔 수많은 '프로'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배우로, 누군가는 스태프로, 또 누군가는 제각기 다른 분야에서요. 모두가 '프로 근성'을 갖고 맡은 바 소임을 다 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걸작을 만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이 모든 이들의 노력이 하나로 어우러졌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 국한된 얘기는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서건 우리는 '프로'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만 합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프로 정신'을 갖고 임한다면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걸작은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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